러시아에서 수백 명이 죽고 다치는 테러가 지난 3월 22일 발생했다. 테러가 발생한 곳은 크로커스 공연장, 모스크바 북서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 크라스노고르스크시(市)에 위치한 음악 공연장이다. 무장 괴한들이 공연장 1층에 난입하여 자동무기로 총격을 가하고, 수류탄과 소이탄 등을 던져 행사장에 불이 붙는 참사가 발생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테러가 발생한 시각은 모스크바 시각 금요일 저녁 8시 경이다. 두 번째 콘서트가 끝나고 세 번째 콘서트가 시작되기 전인 휴식 시간이었다.

4명의 테러 용의자가 러시아 당국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있다. 이들이 체포된 곳은 러시아-우크라이나 국경 근처인 브랸스크주(州)이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ederal Security Service) 발표에 따르면 용의자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을 의도였으며, 우크라이나 측과 접촉했다. 또한 용의자 중 한 명은 테러 사실을 시인했고, 사람 한 명 죽이는 데 50만 루블을 제안받았다고 한다.

누가 배후인가 진실 공방 가속

테러 용의자들이 우크라이나 측과 접촉하여 우크라이나로 도주를 시도했다는 러시아 연방보안국 발표가 사실이라면 이번 테러 사태에 우크라이나가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러시아 정부 역시 이 점을 강조하며 우크라이나가 이번 테러의 배후라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는 이에 반박하는 성명을 냈다. 자신들은 모스크바 테러와 무관하며, 오히려 모스크바 테러는 “러시아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한다. 모스크바 테러 배후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좀 더 시간이 지나야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미국이 개입하고 나서면서 진실 공방 양상은 더욱 가열되는 분위기다. 미국은 테러가 발생한 즉시 우크라이나의 소행이 아니라는 성명을 냈다. 러시아 외무부는 “우크라이나의 결백에 대한 근거는 무엇인가”라고 물으며,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갖고 있다면 즉시 러시아에 전달”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그런 근거 데이터가 없다면 백악관은 누구에게도 면죄를 줄 권리가 없다”라고 주장했다.

미국, 3월 7일 테러 가능성 시사

이 과정에서 또 하나의 사실이 밝혀졌다. 3월 7일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이 테러 공격을 암시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그 성명에 따르면 “극단주의자들이 가까운 미래에 모스크바에서 콘서트를 포함해 대규모 모임을 공격할 계획이라는 보고를 주시하고 있다”면서 “(러시아 주재) 미국 시민들은 앞으로 48시간 동안 대규모 모임을 피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이런 정보 역시 러시아 측에 전달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러시아는 반박한다. 미국이 러시아 측에 준 정보는 구체적인 정보가 아닌 일반적 테러 위험을 경고했다는 것.

이처럼 미국 측이 테러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러시아가 하는 가운데, 미국은 테러의 배후는 ISIS라는 새로운 주장을 내놓았고, ISIS 역시 자신이 이번 테러의 배후라면서 관련 동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미국 주장 베끼기 일관하는 한국 언론

주말을 지나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러시아-미국 사이의 공방이 국제 사회의 쟁점이 되었고, 우리 언론에도 모스크바 테러와 관련한 보도가 쏟아졌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진실 공방 속에서 드러난 러시아의 합리적 의심 즉 우크라이나와 미국이 이번 테러와 관련되어 있지 않는가에 대한 보도는 거의 없다. 보수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한겨레, 한국일보 등도 “IS가 저지른 테러인데... 우크라로 총구 겨누는 푸틴”(한겨레), “테러 경고 무시했다 초대한 참사.... 궁지 몰린 푸틴 ”우크라이나가 배후“”(한국일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놓기 바빴다. 미국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이미 다른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인도의 국방 전략 전문가인 카마르 아가(Qamar Agha)는 “우크라이나는 절박하다. 우크라이나 군대 안의 러시아에 극도로 적대적인 일부 그룹은 러시아에서의 불안을 원할 수 있다. 이것이 우크라이나가 이번 사건에 연루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이유”라고 지적했다. 또한 “백악관 대변인이 우크라이나 개입 사실을 거의 즉시 부인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면서 미국의 태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란의 한 전문가 역시 우크라이나와 미국의 역할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 테헤란 대학교 교수 세이예드 모하마드 마란디(Seyed Mohammad Marandi)는 미국이 “테러 위험 정보의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러시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정보를 주지 않았다. 이것은 뭔가 매우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라면서 미국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테러 조직인 ISIS가 테러에 책임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을 언급하면서도 그런 보도가 “우크라이나와 ISIS 간의 협력 가능성이나 미국의 잠재적 역할을 배제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ISIS는 미국의 적을 공격하는 데 집중해 왔고, ISIS가 나토 국가나 서방과 동맹을 맺은 국가를 공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한신대학교 교수 이해영 역시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테러 후 도주로를 우크라이나로 잡았다는 점에서 누구든지 모종의 연계를 추측할 수 있을 일”이라고 적었다. 또한 “테러로 인해 다시금 대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에서 전쟁으로 즉 정식 선전포고를 하자는 주장이 (러시아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이 경우 우크라이나에서 대규모 전면전이 벌어질 것이고, (그럴 경우) 젤렌스키는 살 것”이라며, 이 테러로 ‘누가 이익을 볼 것인가, 그자가 범인이다’라는 추론 필요성을 언급했다. “현재로서는 ISIS의 단독 범행설은 설득력을 잃어 가고 있다. 그리고 조금씩 우크라이나 기획설이 힘을 얻고 있다”라는 지적이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