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왜 이렇게까지..?”…국민이 묻고 싶은 말
피의자 이종섭, ‘도주의 재구성’
출국금지된 피의자를 해외로 빼돌린 대통령
‘도주 대사’의 이례적 행태 5가지

이종섭 “왜 이렇게까지..?”…국민이 묻고 싶은 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기어코 출국했다. 출국 금지 조치가 확인된 지 불과 이틀만이다. 이 전 장관은 해병대 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의 핵심 피의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국기 문란 사건”이라며 “윤석열 정권이 이 전 장관을 ‘도주 대사’로 임명하고 개구멍으로 도망시켰다”라고 날 선 비판을 가했다.

해병대 예비역 단체 정원철 회장은 “호주에 대한 외교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이 전 장관뿐이냐”라며 “왜 꼭 그 사람이어야 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몰래 출국검색대를 통과하려던 이 전 장관은 취재진이 나타나자, “왜 이렇게까지 해야돼?”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 질문은 정작 국민이 묻고 싶은 말이다.

윤석열 정권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사건의 재구성을 통해 도주 이유를 알아본다.

피의자 이종섭, ‘도주의 재구성’

3월 4일, 외교부는 주호주 대사에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이 임명됐다고 밝혔다.

3월 6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지난 1월 이 전 장관을 출국금지 조치한 사실이 밝혀졌다.

대통령실은 “출국금지 사실을 몰랐다”고 했고, 공수처는 “보도를 보고 임명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3월 7일, 이종섭 전 장관이 공수처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당시 외교부는 이종섭에게 외교관 여권을 이미 발급한 상태였다.

3월 8일 오전, 당일 출국 예정이었던 일정을 연기하고 부임 시기를 다시 조율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이 전 장관이 출국금지 이의신청을 제기했으며 절차와 기준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수처는 “이 전 장관이 앞으로 진행될 수사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라며, 이례적으로 수사 대상자의 입장을 공개했다.

3월 8일 오후, 이종섭에 대한 출국금지 조처가 해제됐다.

법무부 출국금지심의위원회는 “이의신청이 이유 있다”고 판단했다.

3월 10일, 이종섭은 대사 신임장 ‘사본’을 들고 대한항공의 인천발 브리즈번행 KE407편을 타고 출국했다.

주 호주대사관은 수도 캔버라에 위치한다. 가까운 시드니공항을 놔두고 차로 12시간 가량 걸리는 브리즈번 행을 택한 것은 교민이나 기자들의 눈을 피할 목적으로 보인다.

이날 이종섭의 출국 예정 사실이 알려지자 해병대 예비역 단체 회원들과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이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출국장에 집결해 규탄 농성을 벌였다. 하지만 이종섭은 이들과 취재진의 눈을 피해 미리 면세구역에 입장한 뒤였다.

그러나, 미리 탑승권을 구해 면세구역에서 기다리고 있던 MBC 취재진에게 덜미가 잡혔다. 이종섭은 MBC 기자가 접근하자 “왜 이렇게까지 해야 돼...”라고 반말투로 말하곤 서둘러 탑승해 버렸다.

출국 소식이 전해지자, ‘시드니촛불행동’ 소속 호주 교민들은 호주 소녀상 앞에서 이종섭의 주호주 대사임명을 규탄하는 집회를 가졌다.

출국금지된 피의자를 해외로 빼돌린 대통령

주호주 대사 임명권자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출국금지’ 사실을 몰랐다는 대통령실의 해명이 맞다고 해도, 대통령이 연루된 사건의 피의자를 해외로 발령한 것은 공범에 의한 범인 은닉에 해당한다.

피의자의 출국을 단순 도주가 아닌 대통령이 ‘도망시킨’ 국기문란 사건이라고 판단하는 이유는 도주 과정에 드러난 이례적 행태 때문이다.

첫째, 출국금지된 피의자를 대사로?

이종섭 당시 국방부장관은 '임성근 1사단장 등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를 적용해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를 최종 결재한다. 그러나, 뒤 하루 만에 이를 뒤집고 언론 브리핑 취소,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공수처는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지난해 이 전 장관이 언론브리핑 취소를 지시하기 직전, '대통령실'의 전화를 받았던 사실을 확인했다. 박정훈 전 수사단장은 진술서를 통해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으로부터 "VIP(대통령)가 격노하면서 국방부 장관과 통화한 뒤 이렇게 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윤 대통령이 '수사 독립성'을 침해했을 수 있다는 중대한 의혹이다. 그리고 그 핵심 피의자는 이 전 장관이다. 그런데 혐의가 인정돼 출국금지된 피의자를 사건 관련자인 대통령이 해외발령을 냈다? 공범에 의한 명백한 해외 도피다.

둘째, 출국금지가 이렇게 쉽게 풀린다고?

법무부령에 규정된 출국금지 대상자는 “범죄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이거나 “출국 시 국가안보 또는 외교관계를 현저하게 해칠 염려가 있다고 법무부장관이 인정하는 사람”이다.

"범죄 혐의로 수사를 받고"있어서 출국을 금지당한 사람이, 국가를 대표해 외국으로 파견된다면 그건 '외교관계를 현저히 해칠 염려'가 있는 자가 되는 것 아닌가? 출국 금지된 자에게 외교관 신분을 부여해 출국시키는 것은 일종의 권력 남용이다.

출국 금지 조치를 하는 과정도 엄격하다. '별장 성접대' 사건의 김학의를 긴급출국금지한 법무부 관리와 검사들이 '절차 미비'로 줄줄이 엮여 재판정에 서는 치욕까지 겪었다. 인신을 제한하는 출국 금지는 함부로 아무나에게 조치하지 않는다. 이를 해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외교부는 출국금지된 이 전 장관에게 어떤 명분으로 외교관 여권을 발급했을까? 또 법무부 장관은 무엇때문에 돌연 출국금지를 해제했을까? 대사를 임명하고 장관에게 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다.

셋째, 신임장 원본 대신 ‘사본’만 들고?

이 전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부터 출국까지 외교 관례와 상식은 제대로 지켜진 것이 없다. 이 전 장관은 대통령의 신임장 수여식도 하지 않은 채 원본도 없이 신임장 사본을 들고 부임길에 올랐다. 피의자 신분인 이 전 장관을 다급하게 출국시키느라 외교부도 경황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통상 부임한 대사는 신임장 원본을 제출해야 주재국의 입법, 사법, 행정 수장 등 3부 요인을 만날 수 있다. 외교부는 이 대사의 신임장 원본을 조만간 외교행낭으로 호주 현지에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이를 두고 ‘개구멍 출국’이라 비난하며, 외교부·법무부 장관에 대한 탄핵을 예고했다. 시민단체는 윤 대통령과 박성재 법무장관 등을 공수처에 고발했다.

넷째, 장관급을 호주대사에?

‘격’에 맞지 않다. 현재 한국에 주재하고 있는 주한 호주 대사관의 제프 로빈슨 대사는 부임하기 전 ‘차관보’(Assistant Secretary)가 최종 경력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한국은 호주 주재 대사로 ‘차관급’도 아니고 두 단계 높은 ‘장관급’을 보낸 셈이다. 현직인 김완중 호주 대사도 외교부 재외동포영사실장(1급) 출신이다.

그 자리는 ‘전 국방부장관’에게 적격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전 장관이 호주 전문가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그의 경력 어디에도 호주는커녕 외교관 이력도 없다.

다섯째, 이종섭의 영어 실력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이 전 장관은 1984년 소위 임관 이후 제21보병사단 GP소대장을 시작으로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을 두루 거쳐 2010년 별을 달았다. 제7기동군단장과 합동참모차장을 역임하고 2019년 중장으로 전역한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를 거쳐 국방부장관이 됐다. 그의 경력 어디에도 외교관 이력은 없다. 그러므로 이 전 장관은 이번에 초임대사로 주호주 대사에 임명됐다.

외교부는 2006년 마련된 ‘공관장 적격심사 강화방안’에 따라 초임대사는 영어시험을 쳐 적격여부를 판단한다. 적격심사에 영어시험을 도입한 첫해 24명 중 2명의 탈락자가 생겼다. 이번에 이 전 장관은 영어시험을 통과했을까?

따지고보면 국방부장관 교체가 발표된 지난해 9월부터, 윤석열 대통령의 뜬금없는 호주대사 임명까지 뭔가 짜인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것같다. 지난해 야당은 이 전 장관 탄핵 소추를 추진했다. 그러자 대통령은 이 전 장관을 전격 교체했다. 그리고 공수처가 수사망을 좁혀오자 꼬리를 자르듯 해외 도주를 결행한 것. 나머지 지휘계통에 있던 신범철 국방차관과 임종득 국가안보실 2차장은 총선 후보로 공천해 입막음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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