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세를 물리친 고구려
당나라와 손잡은 신라의 민족 배신
고구려는 신라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은 좀체 떨쳐지지 않는다.

외세의 힘을 빌려 동족을 친 신라는 광활한 고구려 땅까지 당나라에 넘겨줬다. 이 때문에 1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신라는 두고두고 후대의 원망을 샀다.

문제는 지금도 한반도가 외세의 각축장이며, 어디와 동맹을 맺느냐에 따라 국운이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특히 미군을 등에 업고 일본군 자위대를 끌어들여 동족인 북을 치자는 주장이 난무하는 작금의 현실은 아득한 옛날 신라의 잘못을 재현할 것만 같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신라의 삼국통일’에서 우리 민족은 어떤 교훈을 찾아야 할까?

당나라와 손잡은 신라의 민족 배신

신라가 당나라와 동맹을 맺고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정복했다. 이때가 676년이다.

648년 신라는 김춘추를 당나라로 보내 공동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치자고 제안한다. 김춘추는 대동강을 경계로 ‘이남은 신라가 차지하고 이북 땅은 당나라가 차지한다’는 비밀협약을 맺고 돌아온다.

신라 김유신은 당나라 소정방으로 하여금 계백 장군이 이끈 백제를 치게 한다. 이렇게 백제를 정복한 나‧당 연합군은 고구려를 협공한다.

당나라 이세적이 30만 원정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한다. 이에 맞서 싸우던 연개소문 장군이 안타깝게 전사(665년)한다. 이 틈을 타고 당나라는 평양성 정벌에 나섰고 신라군도 이에 호응해 남쪽에서 공격하니 고구려는 더 버티지 못하고 멸망(668년)한다.

당나라는 옛 고구려의 그 광활한 영토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해 지배력을 행사한다.

뒤늦게 정신 차린 신라는 고구려 잔존세력과 함께 국토회복에 나서지만(나당전쟁), 겨우 평양 북부지역 일부를 되찾는 데 그쳤다.

고구려는 신라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나당 동맹을 체결하기 전 신라 김춘추는 백제를 치자며 고구려에 원병을 요청했다. 하지만, 당나라와의 전쟁에 여념이 없던 고구려는 응하지 않았다. 이에 신라는 당나라 군대와 연합해 백제와 고구려를 침공했다.

고구려는 이런 신라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민족을 배신하고 외세와 연합한 신라. 하필이면 고구려가 혈전을 벌이던 당나라와의 동맹. 더구나 고구려 땅 대부분을 갖다 바친 굴욕까지.

민족 내부 문제에 외세를 끌어들이면 결국 이런 사단이 난다.

북미 간 군사대결이 첨예한 정세에서 미국과 동맹을 맺고 대북 선제공격 운운하는 것은 민족 배반 행위 아닌가? 대북 군사동맹에 일본 군국주의를 끌어들였다가 장차 어떤 후과를 치를지 상상해 봤는가?

오늘날 윤석열 정권의 이런 행태가 그 옛날 신라 김춘추의 매국배족 행위와 무엇이 다른가. 단재 신채호 선생은 김춘추를 외세의존적인 음모가라고 비판했다. 

최근 북은 윤석열 정부를 "미국에 무조건적으로 굴종하는 노복국가"라며 적대국으로 규정했다. 어쩌면 북은 과거 고구려가 신라를 보듯 지금 윤석열 정부를 대하는지도 모른다.

덧붙임

만약 신라시대가 그대로 유지됐다면 고구려의 을지문덕, 연개소문 그리고 백제의 계백 장군 등은 적군의 수괴로 남았을지 모른다.

외세와 손을 잡고 민족을 배반한 반역행위를 감추기 위해서라도 신라는 지독하게 이들을 악마화하지 않았을까.

다행히 우리 민족은 후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조선 1000년의 역사를 통일국가로 살았다. 이 덕분에 삼국시대 모든 장수가 5000년 민족사를 빛낸 위대한 장군으로 기록돼 있다.

문득 남북이 통일되면 양 적국의 지도자를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지 몹시 궁금해진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