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년 전 겨울. 대우조선 하청노동조합(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간부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난 여름,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투쟁 사진을 모아 새해(2023년) 달력을 만들려고 하는데, 필자가 촬영한 사진 원본을 받을 수 있냐는 요청이었다. 흔쾌히 원본을 전달했다.

지난해 7월 2일, 서울과 거제에서 동시에 열린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 투쟁 승리 결의대회’에서 하청노조 대표 김형수 지회장이 무대 앞에서 두 손으로 지회 깃발을 잡고 힘껏 펄럭이고 있는 사진이다. 올해 달력은 하청노동자 투쟁과 이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의 사진으로 꽉 채워졌다.

벌써 1년 반이 지난 얘기다. 지난해 여름, 한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는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며 0.3평 감옥에 스스로를 가뒀다. 이들 하청노동자의 51일간에 걸친 총파업 투쟁은 한국사회에 큰 이슈가 되고도 남았다.

‘진짜 사장’과 교섭할 수 있는 권리, 수천 수백억에 달하는 손해배상 폭탄을 방지하는 법안인 ‘노조법 2·3조’ 개정에 다시 한번 불을 지핀 투쟁,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 투쟁이다.

2023년은 달력은 모두 넘어갔다. 그러나 하청지회는 아직도 467억 원에 달하는 손배 폭탄 해결을 위해 투쟁 중이다. 원청이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외면하는 하청노동자, 원청이 인정하지 않는 하청노조의 파업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수백억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조선업 호황 속에 원청의 이윤은 늘어가지만, 하청업체 대표는 빚에 허덕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하청노동자 월급 줄 돈이 줄고, 노동자들의 임금체불은 다시 늘고 있는 현실이다.

2023년, 1년 달력이 다 넘어가도록 노조법 개정은 지지부진하다가, 지난 1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예상했던 대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은 노동자들이 엄동설한에 단식 농성해도, 77%가 넘는 국민이 노조법 개정을 요구해도 눈 깜짝 하지 않았다. 반대로, ‘파업조장법’, ‘국가경제에 숨통을 죄는 법’이라는 경제단체의 왜곡·과장 여론을 쫓으며 거부권을 남발했다.

1년 반 동안 이어진 노조법 개정 투쟁을 ‘거부권’으로 단번에 무력화시켰다.

그러나, 노조법 개정 투쟁의 역사는 1년 반 동안의 투쟁이 아니란 걸 누구나 알고 있다.

1년 전 겨울, 노조법 개정을 위해 한 달 넘은 단식투쟁을 벌인 윤장혁 금속노조 12기 위원장. 얼마 전 만난 윤 위원장은 두산중공업의 손배가압류에 저항해 분신한 배달호 열사를 언급했다. 윤 위원장이 중소사업장 지회장이던 2003년 1월 9일, 열사의 분신 소식을 듣고 조합원들과 함께 창원으로 달려가 투쟁했다. 벌써 20년이 지난 얘기다.

▲ 금속노조 위원장실에 놓여진 2022년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투쟁 사진 ⓒ김준 기자
▲ 금속노조 위원장실에 놓여진 2022년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투쟁 사진 ⓒ김준 기자

올 한해 모든 노동자가 ‘노조법 개정’을 말했다.

지난 1월 서울행정법원은 ‘CJ대한통운이 원청 사용자로 택배노조와 교섭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사법기관의 판단이 이어졌다. 법원은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했고, 사용자 범위를 원청 사용자까지 확대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했지만, 윤 대통령만 묵살했다.

노조법뿐이겠는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무력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로 대변되는 노동운동의 시간을 한 번에 뒤엎으려는 ‘주69시간제’, 노조 회계 공시를 빌미로 한 민주노조 탄압 등 노동자의 분노를 부르는 정책이 한둘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윤석열 퇴진’ 투쟁으로 귀결되었던 이유다.

노조법 개정을 위한 투쟁, 그리고 정당한 노조 활동을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20년 전에도, 그리고 20년이 흐른 지금도 계속되는 중이다.

지난 5월 양회동 열사는 ‘정당한 노조활동’이 ‘윤석열 검찰 독재’ 정치에 탄압받고 있다며 ‘윤석열 정권을 무너트려 달라’고 유서에 호소했다. 윤석열 정권 퇴진을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 달력 첫 장이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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