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주69시간' 장기 근로 길 터
대법원과 고용노동부의 짜고 치는 고스톱?

대법원이 ‘주69시간제’를 주창한 윤석열 정부의 ‘장시간 근로’에 길을 텄다.

대법원이 ‘주52시간제’의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판결을 내놨고, 이에 발맞춰 고용노동부는 노동시간 개악에 발 빠른 시동을 걸었다.

▲ 지난달 13일,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로시간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와 향후 정책 추진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 지난달 13일,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로시간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와 향후 정책 추진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대법원, 무슨 짓을 한 건가

현행 근로시간은 ‘주 52시간제’다. 근로기준법 50조가 정한 ‘법정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1일 8시간, 1주 40시간’이다. 여기에 더해 근로기준법 53조 1항은 “근로자가 동의하면 1주간에 총 12시간을 연장근로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그동안 하루 8시간을 초과하는 근무를 ‘연장근로’로 규정해, 연장근로가 12시간을 넘으면 주간 단위 근로시간이 52시간을 넘지 않아도 법 위반으로 적용해 왔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 판결로 이 기준이 허물어졌다.

대법원은, “하루에 8시간을 초과한 ‘연장 근로’의 주간 합산이 12시간을 넘어도 1주일간 총 노동시간이 52시간만 넘지 않으면 근로기준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쉽게 말해, 주간 단위로 52시간 이하 근무를 유지한다면, 하루에 얼마를 근무해도 법 위반이 아니라는 뜻이다.

‘주중 야근과 밤샘을 반복하는 집중 노동(일명, 크런치 모드)’이 합법이 된다. 노동자가 하루 15시간씩 3일을 내리 일할 수도 있고, 하루 최장 21.5시간(1일 24시간 중 2.5시간 휴게시간 제외)까지도 일할 수 있다.

‘이틀 연속 21.5시간 노동’과 같은 극단적인 초과노동도 합법이 된다. 1주일간 이틀을 43시간 일하는 것이지만, ‘연장근로 주 12시간 한도’를 넘지 않아 위법이 아니다.

2018년 노동자의 건강권과 휴식권 보장을 위해 도입된 주52시간제의 취지를 대법원이 정면으로 역행한 것이다.

하루 8시간 노동은 1919년 국제노동기구(ILO) 출범 당시 1호 협약일 정도로 가장 기본적인 근로조건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1년에 최소 500명이 과로사하는 이때,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고 장시간 과로 노동을 부추겼다.

민주노총은 “제조, 경비, 병원, 게임, IT 등의 현장에 ‘크런치 모드’, ‘압축’, ‘압박’ 노동의 지옥이 합법적으로 열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건‧의료, 연구‧공학, 야간 경비, 물류, 운수 노동자 등 주야를 막론하고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고, 과로 노동을 우려해야 한다.

대법원과 고용노동부의 ‘짜고 치는 고스톱’?

기우가 아니다. 대법 판결에 따라 고용노동부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상반기 주69시간제를 내놔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윤석열 정부가 여전히 장시간 근로시시간제에 집착하고 있는 와중에 대법 판결이 나왔고, 고용노동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장을 밝혔다.

26일 고용노동부는 대법 판결과 관련해 “근로시간 개편 관련 노사정 사회적 대화 시 이번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반영해 근로시간의 유연성과 건강권이 조화를 이루는 충실한 대안이 마련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바쁠 때 더 일하고, 덜 바쁠 때 충분히 쉴 수 있도록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합리적인 판결로 판단한다”면서 근로시간을 유연화를 위한 개편을 예고했다.

민주노총의 “(대법 판결로 인해) 윤석열 정부 노동시간 개악의 근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우려가 현실이 됐다. 대법 판결을 근거로 벌써부터 경제지 등 보수언론과 사용자단체들은 노동시간 개악 요구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7월, 윤석열 정부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발족하며 본격적인 노동개악에 시동을 걸었다. 연구회는 같은 해 11월 노동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는데, 이미 짜여진 정부 정책 방향이 담긴 안이었다. 주 단위로 12시간을 넘지 못하던 연장근로시간을 월이나 분기 또는 연 단위로 관리하겠다는 것. 역시 기업의 필요에 따라 일이 몰릴 땐 더 많이 일하고, 그렇지 않을 땐 적게 일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었다.

지난 상반기엔 주69시간제를 내놓고도 비난의 화살을 피하지 못했고, 지난 6월엔 근로시간 제도 개편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를 실시해 노동시간 개악에 명분을 찾으려 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장에서 ‘설문조사 문항만이라도 공개하라’는 야당 의원들의 요구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먼저 제출되면) 일부가 왜곡되거나 잘못 오해돼 혼선을 야기할 수 있어 제도 개선에 도움이 안 된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결국, 이후 공개된 설문조사조차도 주52시간제의 문제점 및 애로사항을 설명하고 ‘그래서 정부가 추진하는 연장근로 단위기간 확대 방안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고용노동부는 법원 판결을 뒷배 삼아 근로시간 개악에 속도를 낼 참이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이미 방향은 정해졌다. 정부 추천 대법관이 대법원 자리에 하나하나 늘어나고 있다. 하다 하다 사법부까지 장악한 윤 정부의 노동개악. 노조법 거부권 행사, 중대재해법 적용유예 등 윤석열 정부를 향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연말연초 더욱 달아오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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