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총선을 앞두고 ‘노동자 직접정치’를 선언한 많은 노동자가 예비 후보 등록을 마쳤다. 20만 금속노조를 이끈 윤장혁 위원장도 그중 한 명이다.

2년 전, 그는 현대·기아 등 대공장 출신이 아닌 지역 중소사업장 출신으로 위원장에 당선돼 큰 주목을 받았다. 금속노조에서도 산별노조 탄생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런 그가 다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한다. 내년 총선에서 ‘제2의 고향’인 울산 울주군에서 노동자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것. 공직선거 첫 도전장이다.

▲ 19일, 금속노조 위원장실에서 만난 윤장혁 위원장 ⓒ김준 기자
▲ 19일, 금속노조 위원장실에서 만난 윤장혁 위원장 ⓒ김준 기자

35년, 노동자 직접정치를 위한 역사

그는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노동자가 직접정치에 나선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 직후 1988년 총선에 현대중공업 김진국 해고 노동자가 출마했다. 옥중 출마였음에도 2만 2,641표를 얻어 전체 30.6%라는 유의미한 득표율을 기록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첫 시도였다. 폭압적인 노조탄압을 자행한 재벌기업가 정몽준과의 대결이었다는 것 역시 당시엔 큰 의의가 되고도 남았다.

“2000년 총선에선 세종공업노조 최용규 위원장(당시 금속연맹)의 최초 노동자 국회의원 탄생이 점쳐지며 국내외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기도 했다. 아쉽게 근소한 차이로 낙선했다. 이후 민주노동당 건설 후 단병호, 심상정 의원이 의회에 진출했고, 현대차 공장에서 컨베이어벨트 탔던 윤종오 의원 등이 있다.” 금속노동자를 중심으로, 이렇게 노동자 직접정치는 1988년 이후 35년의 역사를 보냈다.

선배들의 바톤을 이어받아 윤 위원장이 노동자 국회의원 후보에 나선 이유는 “민주노조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금속노조의 위원장 출신이 총선에 출마하면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새로운 계기와 각성을 줄 것”이라 생각해서다.

 ⓒ김준 기자
ⓒ김준 기자

조선소 하청노동자 유최안이 본 윤장혁

금속노조 위원장에 출마할 때 윤 위원장은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위원장에 나선다는 걸 많이 상상해 본 적은 없지만, 중소사업장 출신 위원장 당선이 불가능할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세간의 관심을 받으며 시작한 활동이 눈 깜짝 할 사이 2년 임기가 지났다. “아쉬움도 많지만, 후회 없는 2년을 보냈다”는 윤 위원장이 임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투쟁은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투쟁’이다.

이 투쟁은 노조법 2·3조 개정 투쟁에서 자타가 공인할 만큼 가장 큰 동력을 만든 투쟁이었다. 윤 위원장이 출마 결심을 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 투쟁도 바로 이것이다.

지난달 9일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유최안 부지회장(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이 윤 위원장에 전화를 걸어왔다. 유 부지회장은 지난해 여름 대우조선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며 0.3평 감옥에 스스로를 가둔 노동자다. 윤 위원장은 지난해 겨울 노조법 개정을 위해 유 부지회장 등과 함께 30일 단식 투쟁을 벌였다. 생애 첫 단식이었다.

유 부지회장은 윤 위원장과 통화하며 “너무 기쁘다”고 했고, 윤 위원장을 향해 “어느 위원장보다 가장 진정성이 있던 위원장이었다”고 말했다. 윤 위원장은 부끄러우면서도 뿌듯했다.

▲ 2022년 여름, 0.3미터 감옥에 스스로를 가둔 조선하청 노동자 유최안과 만나 악수하는 윤장혁 위원장 ⓒ금속노동자
▲ 2022년 여름, 0.3미터 감옥에 스스로를 가둔 조선하청 노동자 유최안과 만나 악수하는 윤장혁 위원장 ⓒ금속노동자
▲ 노조법 개정을 위해 30일 단식했던 윤장혁 위원장. 지난해 12월27일(단식 28일차) 국회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확대간부 결의대회 ⓒ노동과세계
▲ 노조법 개정을 위해 30일 단식했던 윤장혁 위원장. 지난해 12월27일(단식 28일차) 국회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확대간부 결의대회 ⓒ노동과세계

윤석열 폭정 심판하는 노동자 국회의원

그러나, 노조법 개정은 미완으로 끝났다. 노동자가 목숨을 걸고 단식해도, 70%가 넘는 국민이 노조법 개정을 요구해도 거부권 정치로 민심을 배신하는 윤석열 정부. 윤 위원장이 출마 결심을 굳힌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윤 위원장은 내년 총선이 “윤석열 정권의 폭정을 심판하는 선거”라고 소리 높였다.

“윤석열 정권의 폭정으로 화물연대, 건설노조가 초토화되었고, 끝내 양회동 열사를 잃었다. 정권의 탄압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노조 회계장부 공시, 노조법 2·3조 거부, 타임오프 시정명령 등 전방위적으로 민주노조를 짓밟고 있다. 민주노조와 윤석열 정부는 양립할 수 없다.”

윤 위원장은 금속노조 위원장 2년 차인 올해 7월 윤석열 정권 폭정에 맞서 금속노조 정치총파업을 시도하고 실행했다. 이 역시 금속노조 위원장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투쟁’ 중 하나다.

그는 “야권의 연대로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고 국민의힘을 100석 밑으로 괴멸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를 장악해야 탄핵도 가능하고, 한국사회를 새로운 체제로 바꾸기 위한 개헌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은 “진보정치세력의 도약과 진출이라는 교두보가 되어야 한다”는 점도 빼놓지 않는다.

“촛불혁명 이후 더불어민주당에 대통령 권력, 지방권력, 국회 180석 권력까지 쥐어졌지만, 촛불혁명의 과제를 실현하는 건 먼 얘기였다. 여소야대 국면에서도 민주당은 다수당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

윤 위원장은 “기득권 보수양당 정치에 환멸을 느낀 무당층이 많고, 기회주의 세력들은 제3지대론을 들고나오고 있다”면서 “그들의 면모와 비전은 새 정치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고 단언했다.

진보정당이 선명 야당의 면모를 갖추고 국회에 대대적으로 진출해야 할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진보정당이 총선판을 흔들어야 윤석열을 심판할 수 있고, 한국사회 보수양당 체제를 혁파하고 정치를 교체해야 새 정치를 구현할 수 있기”에 노동자가 직접 후보에 나서겠다는 결심을 세웠다.

▲ 지난 6월26일, 윤장혁 금속노조 위원장이 ‘노동기본권, 민중생존권 쟁취, 노동·민생·민주·평화파괴 윤석열 정권 퇴진, 금속노조 7.12 총파업’을 선언하고 있다. ⓒ금속노동자
▲ 지난 6월26일, 윤장혁 금속노조 위원장이 ‘노동기본권, 민중생존권 쟁취, 노동·민생·민주·평화파괴 윤석열 정권 퇴진, 금속노조 7.12 총파업’을 선언하고 있다. ⓒ금속노동자

공개하지 않은 호소문.. 노동자 국회의원이 되려는 이유

위원장 후보에 나설 당시, 중소사업장 출신 위원장 당선이 불가능할 거라 생각하지 않은 것처럼, “노동자 정치세력화 역시 불가능하지 않다”고 윤 위원장은 확신한다.

윤 위원장은 민주노동당 창당 발기인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진보정당 당원이 아닌 적이 없다. 울주군에서 지역위원회 위원장을 하는 등 진보정치 발전과 도약을 위해 어느 자리에서든 힘을 보탰다.

“진보정당이 분열된 조건, 아직 노동자 직접정치의 모범을 창출하지 못하고, 노동자 정치운동이 무기력해지면서 조합원들의 마음이 떠나 있어 안타까운 심정”일 수밖에 없다.

올해 민주노총은 각고의 노력 끝에 지난 9월 대의원대회에서 정치방침, 총선방침을 수립했다. 토론에 어려움이 생겼을 때 윤 위원장은 자신을 바칠 결심까지 했다. 당시 윤 위원장에겐 금속노조 위원장 재출마, 민주노총 임원 선거 출마 등의 제안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노조 임원의 자리가 아닌 다른 고민을 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호소문 하나를 준비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노동중심 진보정당 건설’이라는 민주노총 정치방침 토론에 난관이 생겼을 때, 윤 위원장은 “노동중심 진보정당이 만들어진다면 나부터 험지에 출마해, 노동자의 직접정치,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기수가 되겠다”는 결심을 밝히려고 했다. ‘정치·총선 방침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절실함을 담아 호소문을 작성해 두었다. 호소문은 정치방침이 통과되면서 공개하진 않았다.

노조법 2·3조 개정을 위해 30일 단식농성을 하면서 국회의 담장이 너무 높다는 사실을 절감했고, 윤석열 정부의 거부권까지 지켜봐야 했다. 그래서 그는 한국사회 절반이 넘는 노동자들에게 호소한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계급은 정치권력까지 독점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생산 현장에서 현장 권력을 쟁취하는 투쟁과 병행해 정치권력을 쟁취하는 투쟁을 해야 한다”고. 

▲ 울산지역 국회의원 후보들과 함께 한 기자회견 ⓒ진보당 울산시당
▲ 울산지역 국회의원 후보들과 함께 한 기자회견 ⓒ진보당 울산시당

“노동자 직접정치 ‘불씨’ 될 것”

그는 23살부터 울산 울주군에 있는 ‘고강알루미늄’이라는 중소사업장에서 32년간 일해온 노동자다. 제2의 고향이자 정치적 고향이기도 한 울주군에서 노동자 국회의원이 되어 노동법안을 제1호 법안으로 내놓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다. 온산국가산업단지가 있는 울주군은 노동자가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울주군에 생활거점을 두고 가까운 울산 동·북구로 출퇴근하는 노동자들도 많다.

윤 위원장은 금속노조 위원장 역할과 노동운동 경험이 정치활동에 있어 충분한 자양분이 될 거라 믿는다.

그는 위원장에 당선된 후에도 첫 일정으로 간접고용 비정규 대표자 회의에 참가했다. 위원장이 직접 참가해야 할 회의는 아니었다. 그러나 위원장으로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었고, 그들을 만나 “비정규직 투쟁이 당사자들만의 투쟁으로 되지 않게 하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리곤 비정규직 노동자대회에 전조직적 결합을 실행했다. 그렇게 노조의 주인인 조합원들 속에 있었고,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 노동자, 전체 노동계급의 문제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조합원을 주인으로 세웠던 노조활동을 할 때처럼, 정치도 주민들, 민중들의 힘을 모아 그들이 주인이 되는 정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윤 위원장은 위원장이 되기 전, 금속노조 울산지부에서 활동하며 2,700여 명이었던 조합원을 7,500여 명으로 확대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조직사업’의 전문가 경험을 살려 “노동자와 주민 속에서 이들의 자주적 의지와 창조적 힘을 모아 나가면 반드시 한국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금속노동자를 대표해서 총선 출마를 결심했다”면서 금속노동자들에게, 그리고 전체 노동자들에게 “노동자 직접정치 전면화의 불씨가 되겠다”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 직접정치 실현의 가능성과 희망을 함께 꿈꾸자”고 당부했다.

▲ “노동자 직접정치 전면화의 불씨가 되겠다”는 윤장혁 위원장 ⓒ김준 기자
▲ “노동자 직접정치 전면화의 불씨가 되겠다”는 윤장혁 위원장 ⓒ김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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