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개 시민사회단체 연명, 대통령실 앞 기자회견 진행
접경 지역 곳곳에서 위기감 느껴

지난 13일 남북 접경지역의 주민들과 종교, 시민사회가 한자리에 모여 <평화와 연대를 위한 접경지역 주민, 종교, 시민사회 연석회의>를 결성하고, 정부가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한반도의 전쟁 종식과 평화를 실현할 것을 호소했다.

윤석열 정부는 11월 22일 임시 국무회의에서 북의 군사 정찰 위성 발사를 이유로 9.19 남북군사합의 일부 효력 정지를 결정했고, 북은 이에 대응하여 군사합의 무효화를 선언했다. 효력이 정지된 합의 사항은 군사분계선 일대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대한 것으로, 국방부는 즉시 군사분계선 일대의 감시와 정찰 활동을 복원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헌법재판소는 대북 전단 금지법으로 불리는 ‘남북관계발전법 24조 1항 3호’ 등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국방부가 9.19 남북 군사합의 일부 효력까지 정지한 후 접경지역의 긴장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기자회견에는 접경지역 주민들이 체감하고 있는 위기감과 불안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개성공단으로 향하던 다리에는 매일 수십 대의 탱크가 지나다녀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로 9.19 군사합의 무력화를 우려하며, 군사 충돌을 부르는 적대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철원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김용빈 씨는 “접경지역 주민들은 전쟁과 불안보다 평화롭게 삶을 유지하기를 원한다”라며,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는 대북 전단이 아니라 철원에서 농사지은 우리 쌀을 북과 나눌 수 있기를 희망했다.

▲ 철원에서 농사짓는 김용빈 씨가 발언했다.
▲ 철원에서 농사짓는 김용빈 씨가 발언했다.

기자회견 참석을 위해 세 시간 반을 달려왔다는 강화 교동도 주민 김영애 씨는 북과 가장 가깝게 마주하고 있는 접경지역의 주민이다. 김 씨는 정부가 평화를 원하는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며, 남과 북이 교류 협력해서 전쟁이 아닌 평화로운 한반도를 함께 일궈가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 강화 교동도 주민 김영애 씨가 발언했다.
▲ 강화 교동도 주민 김영애 씨가 발언했다.

경기북부지역 평화시민행동 활동가 최희신 씨는 9.19 남북 군사합의 무력화는 접경지역뿐 아니라, 가장 북쪽에 배치된 미군 기지가 있는 도시에도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 필요한 것은 군사합의의 무효화와 군사 행동이 아니라 적대행위의 중단과 통제’라며, ‘평화의 한반도를 위해 접경지역에서의 군사적 충돌은 절대 없어야 하며, 충돌을 조장하는 어떠한 정책도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 경기북부지역 평화시민행동의 최희신 씨가 발언했다.
▲ 경기북부지역 평화시민행동의 최희신 씨가 발언했다.

가장 빈번하게 대북 전단이 살포되던 파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겨레하나 파주지회 이재희 집행위원장은 최근 들어 마정리, 운천리 일대에 수십 대의 탱크가 지나다니고 있는 지역 상황을 전하며, 주민들끼리 ‘이러다 전쟁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할 정도라고 우려를 표했다. 같은 지역에서 참가한 헤이리예술마을 안재영 이사는 작은 무력 충돌로도 외부인의 발길이 끊기곤 한다며 남북 관계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설명했다.

▲ 겨레하나 파주지회 집행위원장 이재희 씨가 발언했다.
▲ 겨레하나 파주지회 집행위원장 이재희 씨가 발언했다.

군사합의서 파기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없어... 군사합의 복원하는 대화를 시작해야...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과 안전, 한반도의 전쟁 종식과 평화 실현을 위한 시민사회의 호소도 이어졌다.

한국YMCA전국연맹 김경민 사무총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미 연합훈련,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한반도 평화에 대한 전망이 어두워지는 것을 우려하며, 접경지역에 사는 주민들과 종교, 시민사회의 여러 조직들이 함께 접경지역의 평화를 지키고 9.19 남북 군사합의 무력화와 우발적 군사 충돌을 막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겠다고 연대의 뜻을 밝혔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이태호 소장은 9.19 남북 군사합의 효력 정지에 대해 우발적인 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어떠한 적대행위, 군사적 행동도 강행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군사합의서 파기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없다며, 군사합의를 다시 복원하는 대화를 시작하라고 촉구했다.

긴장된 남북 관계... 서해에서 조업하던 중국 어선들마저 사라져

기자회견의 사회를 맡은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최은아 사무처장은 군사합의 일부 효력 정지 이후 서해에서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들마저 철수하는 상황이라며, 극도로 긴장된 서해 5도 인근 해역의 분위기를 전했다.

남북 관계가 경색된 가운데 우발적인 군사 충돌을 예방하고 있던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무력화되고, 접경지역의 평화를 위협하는 정책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군사분계선 인근의 비행금지구역이 사라진 상황에서, 접경지역 상공에 한미 정찰 자산의 감시 활동에 이어 공격적 성격의 공중 훈련이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바람의 방향이 남에서 북으로 바뀌는 내년 2월 말~3월 초 사이 대북 전단이 다시 군사분계선을 넘기 시작한다면 한반도의 운명은 어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미일 군사동맹 추진, 역대급 전쟁 연습 등으로 한반도 전쟁 위기는 지속하여 고조되었다. 국방부는 9.19 효력을 정지한 이후 “즉시, 강력히, 끝까지 응징”을 주문하고 있다. 이제 한반도 전쟁 위기는 또 하나의 변곡점을 넘어 우발적 충돌마저도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윤석열 정부가 유지되는 한 한반도 평화는 요원하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된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