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와 의사들이 떠난 공공병원
임금까지 체불인데.. ‘코로나 끝났으니 각자도생하라?’
보건의료 정부예산 어디로 갔는가

“덕분에”

지독한 감염병 코로나19와 싸우는 동안 국민들은 의료진들 앞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자신의 감염은 염두 할 겨를 없이, 자기 목숨보다 환자의 목숨을 더 귀중히 여겼던 그들은 코로나 시기 숨은 ‘영웅’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재난 시기에 공공의료가 더욱 빛을 발한다”는 말이 들렸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감염병 전담병원 역할을 한 공공병원의 헌신과 희생은 이미 잊은 듯하다.

▲ 코로나 중증 환자 돌보는 간호사 ⓒ뉴시스
▲ 코로나 중증 환자 돌보는 간호사 ⓒ뉴시스

“코로나와 묵묵히 싸워온 대가를 ‘임금체불’로 돌려받아야 하는가?”
“공공병원 역할에 최선을 다했던 결과가 결국 존폐위기란 말인가?”

전국의 지방의료원, 국립중앙의료원, 서울시 산하 공공병원(동부·북부·서남병원), 대한적십자사 등의 공공병원들의 처지가 이렇다.

코로나 초기, 신종 감염병 바이러스에 대한 기초정보조차 없이 공포만이 끝없이 확산하던 때에, 정부의 지침에 따라 누구보다 앞장서 감염병과 싸워왔던 병원들. 2년 반 동안 감염병 대응에 전념한 결과 병원은 ‘존폐위기’에 내몰렸다.

의사와 환자가 이탈하고, 적자는 넘쳐나고, 의료진 임금까지 체불 상태로 “붕괴 직전에 다 달았다”는 말은 볼멘소리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나 몰라라’다.

환자와 의사가 떠난 자리

감염병 전담병원 지정 기간 동안 코로나 치료와 관련 없는 수많은 의사들이 병원을 떠났다. 필수 진료과도 문을 닫았다. 코로나 진료과 역시 과도한 업무 탓에 버티다 버티다 떠난 의료진도 다반사다. 80% 수준을 유지하던 병상이용률은 기껏해야 40% 안팎 수준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진료받을 해당 과 의사가 없으니,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기도 하고, 의사들이 적어지니 예약은 점점 길어지고, 남은 의사는 혼자서 진료와 수술까지 감당하다 보니 ‘불안해서 못하겠다’며 다른 병원을 찾아 떠났다. 공공의료 공백이 심각하다.” 박윤희 경기도의료원 의정부병원 지부장(보건의료노조)의 말이다.

코로나 종식과 함께 ‘전담병원’은 해지됐지만, 그 이후에도 환자 유입은 원활하지 못한 실정이다. 코로나 치료체계가 기본 ‘격리치료’이기 때문에, 전담병원(공공병원)에 있던 환자들은 소개(분산)가 이루어졌고, 이렇게 다른 병원에서 진료와 치료를 받던 환자들이 코로나 해지 이후 다시 공공병원으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입원환자는 급속히 감소하고, 병상이용률은 줄었다.

2023년 8월 병상이용률은 평균 53%에 불과하다. 2019년 평균 병상이용률(78.4%)에 비해 25.4% 감소한 것으로, 같은 해 3분의 2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게 보건의료노조의 설명이다.

병상가동률을 올리기 위해 중증도가 높고 돌봄이 많이 필요한 환자들을 돌보곤 있지만, 신규 직원들 역시 노동강도를 버티지 못하고 병원을 떠나는 악순환만 반복되는 중이다.

코로나 끝났으니.. 각자도생하라?

환자의 감소는 의료수익에 큰 적자를 가져왔다. 병원 경영악화로 대부분의 지방의료원은 임금체불을 우려해야 할 상황이다.

35개 지방의료원의 2023년 입원수익은 약 5,400억 원으로, 2019년 입원수익 7,200억원에 비해 1,700억 넘게 감소했다.

“2023년 상반기, 35개 지방의료원은 매달 평균 11억 6천만원 가량의 순손실이 발생했다. 6월까지 총 1,469억에 이른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이렇게 가다간 올해 연말까지 약 2,900억 원의 적자가 발생할 것이 예측된다. 공공병원 역할을 다한 결과가 ‘존폐위기’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35개 지방의료원의 평균 적자가 84억원에 이르지만 정부의 역할은 없는거나 마찬가지다. 공공의 역할을 수행하다 발생한 공공병원의 위기. 이를 책임져야 할 정부는 ‘각자도생하라’ 한다.

정부는 코로나 전담병원 운영 종료 후 회복기 동안의 진료비 손실보상을 최대 6개월까지만 차등 보상했다. 현재 추가 지원은 계획조차 없다.

노조는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의 23년 적자분 해소를 위해선 최소 3,500억 원이 넘게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2024년 정부 예산안에는 한 푼도 반영하지 않았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 중, 감염병 전담병원 ‘회복기’ 지원 예산은 ‘0원’이다. 정부 명령에 따라 일한 결과가 ‘나 몰라라’인 격이다.

적십자병원에 지급했던 지원금은 환수 중이다. 통영적십자병원에도 환수 조치 통보서가 도착했다. 향후 공공병원에 대한 무더기 환수 조치 가능성이 예상된다. 보건의료노조는 “코로나 이후 경영악화 상황을 알면서도 환수한다는 건 공공병원 정상화에 아무런 관심조차 없다는 뜻”이라고 규탄했다.

상황이 이러니, 의료기관들은 자금 사정 해결을 위한 자구책으로 채권을 발행하거나, 약재비 등 대금의 지급 시기를 미루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그것도 모자라 임금도 체불했다.

▲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감염병 대응 공공병원 회복기 지원 예산 촉구’ 보건의료노조 결의대회 ⓒ뉴시스
▲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감염병 대응 공공병원 회복기 지원 예산 촉구’ 보건의료노조 결의대회 ⓒ뉴시스

노조는 공공병원의 암울함은 2025년까지 계속 이어질 거라 내다보고 있다. 코로나 전담병원이 되면서 병원들은 급성기 진료 및 입원 병동을 운영하지 않고 응급실을 폐쇄해야 했다. 의료진 이탈에 따른 진료시스템도 상당 수준에서 훼손될 수밖에 없었다. 감염병 전담병원 해지 이후 병상이용율, 입원외래환자 증가 추이 등을 고려할 때 지방의료원만 21개소 이상의 병원이 2019년 수준의 모습을 찾으려면 2025년 이후가 되어야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 많은 정부예산은 어디로 가는가

회복기 지원 예산에 돈 한 푼을 반영하지 않은 것만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지역·필수의료 제공을 위한 핵심예산인 ‘지역거점병원 공공성 강화’ 사업도 전년대비 95억원이나 감액 편성했다. 감염병 대응 예산을 포함해 보건의료부문 예산도 전년대비 2조 6천억원으로, 37.8%나 삭감한 것이다. 나라 살림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정부는 “공공병원에 대한 지자체 책임 강화를 위해 재원 조성은 전액 국비가 아닌 지방비 부담 등의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지방정부에 떠넘기기다. 정부와 지방정부와의 ‘핑퐁게임’이 시작될 조짐이다. 그러나 2024년 정부예산 중 지방교부세도 11조원이나 감소했다. 지자체 재원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지방교부세가 2년 연속 대규모로 감액돼 편성된 것이다.

회복기 지원금 0원, 보건의료 예산 대폭 삭감, 지방교부세까지 삭감... 공공의료 확충 정책은 후퇴만 하는데, 그 많은 돈은 어디로 갔을까?

윤석열 정부는 ‘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시범사업’이라고 해서 신약·의료기기 개발 사업을 신규 편성하는 등 R&D 사업 예산만 대폭 늘려 놨다.

▲ 4일, 국회 앞에서 열린 ‘공공병원 회복기 지원 예산 촉구’ 현장 대표자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 ⓒ뉴시스
▲ 4일, 국회 앞에서 열린 ‘공공병원 회복기 지원 예산 촉구’ 현장 대표자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 ⓒ뉴시스

감염병 대응에 누구보다 헌신했던 공공병원을 대하는 태도로 볼 때나, 이전 정부 탓을 해오던 모습으로 봐서나 윤 정부가 “코로나 감염병 도래했던 이전 정부에서 발생한 일이니, 우리가 내놓은 대책이 아니니 나는 모르는 일”이라 할 가능성을 예상하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코로나 대응의 영웅들에게 ‘덕분에’라고 치켜세울 땐 언제고, 정부의 이런 태도라면 또다시 국가재난 상황이 닥쳤을 때 그 어떤 병원과 의료진이 정부를 신뢰하고 정부 명령을 따르게 될까.

보건의료노조 나순자 위원장과 감염병 최일선에 있던 공공병원지부장 등 28명은 “더 이상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제 역할을 다하겠다”면서 모두를 살리는 공공병원을 위해, ‘감염병 대응 공공병원 회복기 지원 예산’을 요구하며 지난 4일 국회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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