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중대재해로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정부와 여당이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적용 유예안을 내놓으며 법안 무력화를 시도하는 가운데, 대법원이 이에 맞장구를 쳤다.

7일, 대법원은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어난 고 김용균 청년노동자 사망 사고와 관련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 지난 4일,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김용균 사망 원청 한국서부발전 대법원 엄정 처벌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 지난 4일,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김용균 사망 원청 한국서부발전 대법원 엄정 처벌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재판부는 김 전 대표가 “대표이사로서 업무상 주의 의무를 위반했으며 고의로 방호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김 전 대표는 “사고 현장을 몰랐다”고 변명해 왔다. 그러나, 사고는 대표이사 취임 이후 9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발생한 사고였다.

그러나 1심도 무죄, 2심도 무죄, 대법원도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와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했지만, 처벌은 하지 않았다. 즉 “책임은 있으나 처벌은 없다”였다.

“몰랐다”는 말에 동조한 대법원은 스스로 엄격한 법 적용은커녕 중대재해 처벌을 위해 만들어진 법의 입법 목적에 한발도 가닿지 않았다.

정부여당도 모자라 법원까지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니, 재벌과 대기업은 ‘법의 실효성’ 운운하며 적용 유예를 주장하는 등 생떼를 부리는 형국이다.

재벌 대기업의 ‘생떼’로 아까운 노동자들 목숨, ‘생때’같은 노동자들만 일터에서 퇴근하지 못하고 죽어 나가는 것이다.

물론 예상치 못한 판결은 아니다. 정부와 여당이 재벌 대기업의 눈치를 보며 수정안(적용유예안)을 제출하는 등 중대재해법 무력화에 안간힘을 쓸때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정부와 여당의 호흡은 그렇다 치고,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조차 중대재해법 적용 유예안을 두고 국민의힘과 조건부 협상에 나서있다.

▲ 2021년 12월,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고 김용균 3주기 추모 사진전’을 찾아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씨(김용균재단 이사장)와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 2021년 12월,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고 김용균 3주기 추모 사진전’을 찾아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씨(김용균재단 이사장)와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통령 후보 시절 종종 김용균 노동자를 소환했다. 이 대표는 그의 죽음을 빗대어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마저 비용으로 취급해 온 노동현장의 후진성을 드러낸 비극이었다”면서 “후진적 산재 사망과 ‘위험의 외주화’ 고리를 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또, 김용균의 어머니인 김미숙 씨를 비롯해 중대재해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 앞에서, 어린 시절 소년공으로 일하다 팔을 다쳐 여전히 팔이 휘어진 상태에 있는 자신을 가리키며 “제 몸에도 (재해가) 각인돼 있다”면서 “국민들 먹고살게끔, 최소한 죽지 않게끔 살피겠다”는 약속도 했다.

민주당은 지금 중대재해법을 손바닥 뒤집듯 가벼이 여기는 정부여당을 상대로 정치적 거래를 하며 뭉그적거릴 때가 아니다.

최근 3년간(2022~22년) 산재사망 노동자는 6,375명이나 된다. 그러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중대재해법 적용 1호 사업장인 삼표(2022년1월 중대재해 발생)의 재판 결과 역시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젠 처벌까지 ‘유예’되거나 ‘면죄부’를 주는 상황이다. 여기에 또 2년 ‘법 적용 유예’에 힘을 보태는 것이다. ‘약자 보호’하겠다는 민주당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어떻게 만들어진 중대재해법인가. 2018년, 김용균이 떠나고 2년이 넘는 투쟁이 이어졌다. 당시 10만이 넘는 국민이 “살인기업 처벌해야 한다”며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동참했다. 2020년 겨울,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며 29일 단식까지 했다. 그렇게 해서 2021년 1월 만들어진 법이다.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살인기업 처벌,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 지난 4일,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김용균 사망 원청 한국서부발전 대법원 엄정 처벌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 지난 4일,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김용균 사망 원청 한국서부발전 대법원 엄정 처벌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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