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준비 안 됐다?’.. 기업 핑계 대는 정부
법 이행 전 ‘효과 없다’ 주장하는 기업

지난 10년간 50인 미만 사업장 산재 사망 노동자 12,045명.
최근 3년간 중대재해 80%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

이런 심각성을 정치권만 모르는 듯하다.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유예가 도마에 올랐다. 정부가 노리는 게 단순 ‘적용 유예’일까?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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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등이 모여 고위당정협의회를 열었다. 다음 달 27일부터 상시 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 기업까지 확대 적용될 중대재해법을 ‘2년 유예’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적용 유예’ 내용을 담은 개정안은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이 발의했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1월 27일 전 법이 개정되어야 중대재해법 적용 유예가 가능하다.

‘아직 준비 안 됐다?’.. 기업 핑계 대는 정부

정부여당은 적용 유예 이유로, “83만여 곳에 이르는 대상 사업장들(중소기업)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는 걸 내세웠다. 그러나 사실과 다르다.

지난 3월, 고용노동부가 직접 한국안전학회에 의뢰해 50명 미만 사업장 1,442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가 그 증거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의무 준수를 위해 필요한 사항을 갖췄느냐’는 질문에 22%가 “이미 모두 갖췄다”, 59%가 “준비 중”이라고 응답했다. ‘준비하지 않고 있다’는 응답은 18%였다.

또, 50인 미만 기업의 91%가 ‘안전교육을 실시’했고, 75%가 ‘종사자에게 안전 활동을 보고 받고 있다’고 답했다. ‘종사자로부터 의견을 청취하고 있는 사업장’도 89%에 달했다.

중소기업중앙회(중기)도 올해 4월 스스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 대상 사업장의 59.2%가 ‘법 준수가 가능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법 준수 전혀 불가능’은 3.2%에 그쳤다.

정부는 준비 안 된 사업장들을 서둘러 지원하는 것이 아닌, 법 시행을 미루는 데 고심했다.

그렇게 법 적용 유예 얘기가 흘러나오는 사이, 중기가 내놓은 설문 결과까지 바뀌었다. 8월 나온 실태조사 결과엔 ‘준비하지 못했다’가 80%, ‘아무 준비하지 못했다’가 29.7%였다. 같은 기관에서 의뢰한 조사에서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다. ‘법 준수가 가능하다’고 답한 중소기업들은 어디로 갔을까?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애초 설계 자체가 ‘적용 유예 연장을 요구하기 위한 설계가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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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은 뒷전, ‘효과 없다’ 주장하는 기업들

중대재해법의 ‘효과성’을 운운하는 재계의 주장도 어불성설이다.

중대재해기업 적용 1호 사업장인 삼표(2022년1월 중대재해 발생)의 재판 결과도 아직 나오지 않았고, 법 시행 후 7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해 8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디엘 이앤시(옛 대림산업)의 경우 첫 번째 중대재해가 기소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간, 법 적용 대상에서 450건 이상의 중대재해가 발생했지만 기소 30건 미만, 판결 10건 미만이다. 솜방망이와 같은 법 집행 상황을 두고 ‘효과’를 거론하기 섣부른 상황이다.

기업들은 또 ‘중대재해법이 모호하다’며 중대재해법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하기도 한다. 이 또한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난달 3일, 창원지방법원은 두성산업이 제기한 위헌법률 심판 제청을 기각했다. 법원은 중대재해법 입법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했고, “명확성 원칙, 평등의 원칙에 위배 되지 않음”도 인정했다. 기업들의 주장이 근거 없음을 판결한 것이다.

즉, 정당한 입법목적에 맞게 법을 제대로 시행하면 된다는 결론과 다르지 않다.

▲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중단 촉구 민주노총 결의대회 ⓒ뉴시스
▲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중단 촉구 민주노총 결의대회 ⓒ뉴시스

윤석열 정부가 노리는 것

2021년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준비 기간을 거쳐 지난해 1월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행 중이다.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이후 2년의 준비 기간을 더 거치기로 한 바 있다.

이렇게 총 3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정부가 한 것은 없다. 시행 날짜가 두 달이 채 남지 않자 시행 유예만 꺼내 들었다. 정부 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

민주당은 적용 유예안에 대한 조건부 협상안 중 하나로 ‘적용 유예 기간 지난 2년간 아무 준비하지 않은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의 공식 사과를 수용한다는 건 정부 실패를 인정하는 꼴이 된다. 쉽게 인정할 정부가 아니다.

윤석열 정부의 의도는 ‘중대재해법 무력화’다.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에도 644명의 노동자가 산업 현장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 가운데 6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난 사고였다.

이런 현실에서 적용 유예 연장은 △중대재해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수립 △정부 시정조치 이행 △안전점검 △안전교육에 대한 경영책임자 의무 전체를 적용 유예 하는 것으로 5년간(3년 적용 유예, 2년 연장) 법의 실종 상태나 다르지 않다.

정부는 친재벌, 친기업 기조 아래 대기업엔 ‘봐주기’ 수사로 일관하며 중소기업엔 유예 기간동안 ‘버티라’고 주문한다. 애초부터 법안이 잘못된 것이라면, 그래서 법안을 무력화한다면 윤석열 정부는 책임에서 가벼워질 수 있다. “중대재해법을 통째로 무력화시키는 것”이라는 규탄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 2020년 12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 중인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씨(왼쪽). ⓒ뉴시스
▲ 2020년 12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 중인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씨(왼쪽). ⓒ뉴시스

2018년 12월 10일 새벽,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 세상을 떠난 청년 김용균 노동자의 5주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2020년 겨울, 그의 어머니 김미숙 씨와 동료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단식이 2021년 1월 법안 제정으로 이어졌다. 1,000인 동조 단식까지 뒤따랐다.

그리고 3년이 된 2023년, 중대재해법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를 반대하는 서명운동엔 한 달 만에 6만여 시민이 참여했다. 민주노총은 5일 국회 앞 농성투쟁을 시작했다.

중대재해법은 정기국회 종료(9일)까지, 혹은 이후 이어질 임시국회까지도 쟁점이 될 전망이다. 노조법 2·3조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 후 윤석열 정부를 향한 노동자들의 투쟁 불씨가 또 한 개 점화될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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