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 혁신위가 분주하다. 지난 한 달간 4개 혁신안을 발표했다. △이준석 전 대표 등에 대한 징계 철회, △중진·친윤 험지 출마, △비례대표 당선권에 청년 50% 할당, △용산 참모들의 전략공천 배제 등이 그것이다.

이중 국민의힘 당 지도부가 수용한 안건은 징계 철회 하나뿐이며, 나머지 안은 개인의 결단에 맡기거나 공천관리위원회로 넘겼다. 혁신위를 통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던 결기가 무색해 보인다.

이에 국민의힘이 혁신에 실패했다는 분석이 많지만, 일각에선 오히려 성공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왜 그럴까? 애초 혁신위 목표는 혁신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이미지 세탁’과 그에 따른 보수확장을 통해 ‘총선을 대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혁신위를 통한 쇄신 시늉을 통해 국민의힘은 충분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중진 험지 출마론’ 운을 띄움으로써 부산경남(PK), 대구경북(TK) 등 보수 텃밭인 영남권에 용산 대통령실 출신 정치 신인들을 심을 명분을 확보했다.

9월부터 대통령실에선 수석비서관부터 행정관급까지 총선 준비를 위해 차례로 사직했고, 지난 22일 YS 추도식에 단체로 공식 참석하는 등 점차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중 김인규 행정관은 부산 서·동구 출마를 예고했고, 이병훈 행정관은 경북 포항남·울릉 출마를 예고했다. 주진우 법률비서관은 부산 수영에 도전하며, 전광삼 시민소통 비서관은 대구, 임종득 국가안보실 2차장은 경북 영주, 조지연 행정관은 경북 경산을 노린다.

이 외에도 허성우 전 비서관과 이부형 전 행정관은 일찌감치 각각 경북 구미을과 경북 포항북에서 지역구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혁신위의 ‘중진 험지 출마론’은 대통령실 출신 정치신인들의 당선을 보장하는 영남 출마에 명분을 주는 일이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용산발 낙하산들이 영남을 노린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도 이해할만하다.

언뜻 험지 출마 대상에 ‘친윤’이 포함된다는 점은 윤핵관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제스쳐로 읽히지만, 실은 정반대다.

현재 친윤계 의원 중 험지 출마로 입지가 곤란해질 이들은 장제원(부산 사상), 윤한홍(창원 마산회원), 주호영(대구수성), 김기현(울산 남을) 등 수 명에 불과하지만, 용산발 ‘윤핵관 키드’ 수십여 명이 일제히 PK, TK 출마로 국회에 입성한다면 결과적으로 윤핵관의 파이는 커진다.

결국 혁신위 활동의 핵심은 중진 험지 출마론에 있다. 이는 혁신위의 강조점에서도 드러난다.

그간 중진 험지 출마론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구두로 발표하는 데 그쳤지만, 23일 혁신위 회의에서는 “중진 험지 출마 방안을 공식 문서로 당 최고위원회에 송부할 것”이라며 고삐를 한결 세게 쥐었다. 여러 안건 중 험지 출마론을 유독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런 점에서 인요한 혁신위는 윤석열의 바람잡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당 대표가 대통령의 내시처럼 움직이는 행태나, 야당 대표를 만나지 않는 대통령의 독선은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윤석열 키드들을 국회에 무혈입성 시키는 것으로 혁신을 대신했으니 말이다.

결국 인요한 혁신위는 혁신에는 실패했으나, 본래의 목적에 충실했던 만큼 한편으론 성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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