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재세와 금융 공공성

1. 이자 장사로 최대 수익 올린 한국 시중은행

한국 시중은행을 장악한 외국인들은, 집값 상승 국면에서 주택담보대출 위주의 영업으로 천문학적 이자이익을 올렸다. 은행들은 중소기업이나 서민 대출을 축소하고, 신용이 있는 부유층 위주의 담보대출로 부실 위험을 줄이면서 높은 이자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취약계층들은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고 제2금융권이나 이자 20%인 사채 시장으로 밀려났다. OECD 국가에서 한국처럼 시중은행을 외국인들이 장악하고 주택담보대출로 높은 예대마진을 챙긴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조건에서 시중은행들의 2023년 1~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19.5조원으로 전년동기대비 40% 증가하였고, 이자이익은 44조원으로 전년동기대비 8.9% 증가해 역대 최대를 기록하였다.

▲ 국내은행 1~3분기 누적 이자이익 현황 (조원, 자료 : 금융감독원)
▲ 국내은행 1~3분기 누적 이자이익 현황 (조원, 자료 : 금융감독원)

고금리로 서민들은 빚더미에 앉았는데, 은행들이 독과점 구조에서 손쉬운 이자 장사로 막대한 이익을 올리자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10월 은행들의 성과급 잔치를 비판하며 ‘자영업자들이 죽도록 번 돈을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쳐 은행의 종노릇을 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금융 공공성 강화’라는 해법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 실질적인 경쟁시스템을 도입하여 금융회사의 독과점 구조인 금산분리 해소로 접근한다. 이는 결국 인허가 산업인 은행의 규제를 풀고 재벌(산업자본)에게 은행업을 허용하게 된다.

은행은 국민의 돈을 빌려 예대마진으로 수익을 올리고, 신용 창출로 유동성을 공급하므로, 공공재로 취급하여 금융당국의 엄격한 감독과 규제를 받는다. 이렇게 은행이 정부로부터 독과점 지위를 부여받고 파산 위험시에는 공적자금을 지원받으면서 공공서비스 제공의 의무에 소홀히 하고 과도하게 사적 이윤을 취했다면, 이에 대한 사회 환원을 검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 횡재세의 기원과 정의

최근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횡재성 초과수익을 얻은 정유회사와 은행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며 횡재세를 도입하고 있다. 2022년 UN 사무총장이 이를 주장한 이후 빠르게 확산 중이다.

횡재세(windfall tax)란, 바람이 불면 과일이 떨어진다는 뜻으로 별다른 노력 없이 얻은 막대한 이익에 세금을 물려 사회에 환원하자는 제도이다. 횡재성 초과이익은 기업 혁신, 기술개발, 설비투자 등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금리 인상, 전쟁으로 인한 유가상승 등 외부적 요인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금융회사의 초과수익은 횡재세 정의에 가장 부합한다. 실제 금융회사들은 외환위기 때 파산 직전 국민혈세로 회생한 경우가 많았다. 이후 호황 때 천문학적 수익을 올렸으나 국민의 희생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나 사회 공헌은 미미하고 자체 배당과 성과급 잔치만 이어갔다.

3. 횡재세를 둘러싼 이해집단들의 입장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법정부담금 형태의 횡재세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 대표는 코로나 사태와 경제위기 덕분에 금융·에너지 기업들이 과도한 이익을 얻었다며, 고금리와 고에너지 물가로 고통받는 국민의 삶을 개선하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횡재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민주당은 11월 14일 금융회사가 최근 5년 평균의 120%를 넘는 순이자수익을 거뒀을 경우 이를 초과이익으로 보고 최대 40%를 상생금융 기여금으로 내는 ‘횡재세법’을 대표발의하였다.

이에 정의당, 진보당, 기본소득당도 지지 의사를 표명했고, 민주노총과 참여연대는 작년부터 기자회견과 토론회에서 이를 주장해 오기도 했다. 올해 상반기 순이자수익을 고려할 때 횡재세로 은행권에서만 약 1.9조원이 걷힐 예정이다. 마련한 기여금은 장애인·청년 등 금융취약계층의 금융부담 완화에 쓰겠다고 한다.

반면, 금융당국은 횡재세 등 금융권에서 출연하는 기금 방식보다는, 이자감면 방식의 자발적인 상생안을 주장하였다. 법정부담금과 자율상생 방안을 비교했을 때 후자가 유연하고 효과가 더 크다는 입장이다. 금융회사들이 자발적으로 부담금을 내서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이 납부한 이자를 돌려주는 방안으로 2조원 규모를 검토하고 있다.

나아가 금융위원회는 야당 주도로 발의된 은행법 개정안에 명확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대출금리 산정 방식을 법제화하고, 가산금리 세부 항목 공시를 의무화하는 것은 사실상 ‘원가내역 공개’라며 과도한 ‘경영 개입’이라는 것이다.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횡재세를 총선용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일축하면서, 시장경제에 역행하고 위헌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금융회사들과 금융당국의 협의를 통해 자율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수언론들은 법인세를 누진적으로 적용하는데 횡재세를 또 걷는 것은 이중과세라고 지적하고, 이미 은행들이 기여금을 내서 상생금융을 하고 있으므로 이를 유도하면 횡재세가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횡재세는 강압적으로 자유경제를 훼손할 수 있고 외국 투자자들이 이탈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나아가 과도한 상생금융은 ‘은행 수익성 악화’, ‘자금중개 기능 축소’, ‘주주배당 감소’ 등을 불러온다고 우는 소리를 하고 있다.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이 주장하는 횡재세가 도입되면, 은행들이 부담한 재원은 사채를 이용하는 금융소외계층과 원리금 상환이 어려운 청년 및 영세 중소상공인들을 지원하는 데 쓰일 수 있다.

반면 국민의힘과 보수언론들이 주장하는 자발적 상생안에는 납부한 이자를 돌려주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이미 은행을 이용하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은 비교적 신용이 높고 자산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금융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은 배제된다. 또한 은행 자율적 상생금융은 일회성으로 그치거나, 규정력이 없으므로 홍보만 하고 실행은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크다.

4. 금융 공공성 강화 방안

신자유주의 금융정책은 부동산, 주식 등 자산가격 상승을 추진하며, 금융주주들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한다. 민영화된 민간은행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국채 발행 시 중앙은행이 정부로부터 직접 국채를 매입하지 못하게 하고 시중은행에서 국채를 매입하게 한다. 민영화된 시중은행에서 정부와 시민이 돈을 빌려 쓰고 이자를 내게 하여, 민간은행의 이익을 보장한 것이다.

특히 한국의 금융시장은 외국인이 시중은행을 장악하면서 공공성을 상실하고 단기 이윤추구 영업이 고착되었다. 이에 따라 외환위기 직후에는 론스타, 칼라일 등 외국 사모펀드가 국내은행을 인수합병하여 차익을 실현하였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저금리 상황에서 외국인 소유의 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로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이자 수입을 극대화하였다.

공적 기능을 상실한 금융정책으로 인해 시중의 유동성이 부동산과 주식에 집중되고, 불로소득에서 더 많은 이익이 발생하면서, 노동소득의 상당 부분은 금융 이자, 부동산 임대료 등 지대수익으로 흘러가 가계소득이 정체되었다. 반면, 2022년 고금리 가계부채 위기와 경기침체에도 한국의 금융기관들은 사상 최대의 수익을 올렸다.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정부의 특혜로 독과점 지위를 누려온 시중은행들이 이자 장사로 천문학적 이익을 올렸다면, 횡재세를 도입하여, 고금리로 고통당하는 서민들에게 이익의 일부를 환원하는 것은 공동체 사회의 유지를 위해 절실하다.

은행은 기간산업으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므로, 주주 이익만이 아닌 공익 목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중은행에 대한 외국인 소유를 제한하고, 국채 수익률 이상의 주주 배당을 금지하며, 이자 상한제 등을 도입하여 모든 국민이 저렴하게 은행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투기적인 대출을 제한하고 생산적인 곳에 자금이 투입되도록 감독 기능을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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