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이 일하다 다치고 죽는 것에 뒷짐만 진 윤석열 정부. 피해자들이 제때 치료와 보상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 국정감사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여야를 막론하고 산업재해(산재) 관련, ‘하세월 하는 역학조사’와 ‘중대재해 대기업 봐주기’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또한 산업재해지정 의료기관은 700곳이나 휴업‧폐업해 산재환자들이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 박종길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박종길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질병재해 처리 기간, ‘평균 209.2일’

이은주 정의당 의원에 따르면, 2014년 9,211건에 불과하던 업무상 질병재해의 산재보상 신청은 2022년 28,796건으로 9년간 3.1배 증가했다. 승인 건수도 4,391건에서 18,043건으로 4.1배 늘었다. 그러나 치료와 보상은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

2023년 8월 기준 모든 질병재해의 처리 기간은 평균 209.2일로 집계된다. 근로복지공단 지사에 재해보상 신청일로부터 승인‧불승인 결정일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2014년 평균 80.2일이 소요된 것과 비교해 2.6배나 더 걸렸다.

업무상 난청부터 근골격계질환, 과로질환에 해당해 최근 쿠팡 택배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뇌심혈관계까지, 업무상 재해신청은 늘고 있지만 처리는 ‘세월아 네월아’다. 심지어 직업성 암에 대한 처리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질병재해 처리 기간이 늘어난 원인은 현재 질병재해 보상 절차의 중복성과 복잡성 때문이다. 현재의 절차는, 질병재해자가 공단 지역 지사에 의사소견서와 신청서를 제출하면 공단이 서면 등으로 재해조사를 실시한다. 이후 공단 자문의사 평가, 근골격계의 질환 등의 경우 특별진찰, 직업성 암 등은 역학조사 등 자문을 거쳐,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업무관련성을 판정한다. 그리곤 재차 상병 확인을 하는 등 의사의 상병진단만 세 차례를 실시해야 한다.

“죽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거냐”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진경 노동자의 산업재해 사례를 예로 들었다. 최 씨는 삼성전자 기흥연구소에서 일하다 유방암에 걸린 뒤 산업재해 신청을 했지만 4년여 만에 역학조사가 진행됐다. 그리곤 산재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우 의원은 “4년을 기다렸는데, 4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다가 조사 시작 두 달 만에 불승인 처리했다. 부실 조사, 보여주기식 조사”라고 지적했다.

삼성 LCD에서 근무했던 산재 피해자(2009년 산재 신청자)는 10년을 기다려 산재 승인을 받았다. 대법원에서 관련 암질환에 대해 산재라는 판결이 난 후다. 우 의원은 “대법원이 판결해 줘야 산재를 인정하고, 근로복지공단은 도대체 뭘 하는 거냐, ‘역학조사’라는 이름으로 사람 죽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거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역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 다닌 또 한 명의 노동자는 갑상선암, 자궁종양을 진단받고, 출산한 아이까지 선천성 거대결장이라는 병을 얻어 자녀까지 포함해 산재를 신청했다. 그러나 800일이 지난 현재까지 역학조사 중이다. 국감장에선 “국가가 있긴 있는거냐”는 목소리가 일었다.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조차 “2018년에 (산재가) 1만 2,975건이었는데 지금은 2만 8,796건이다. 기존에 직원 1명당 처리 중인 사건이 20~30건이었다면, 지금은 70~80건이 된다는 것”이라며 “제도와 시스템적으로 뒷받침을 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물었다.

산재 근로감독.. 대기업 봐주기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산재 근로감독 태만과 ‘대기업 봐주기’도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1월부터 현재까지 8명의 산재사망 사고가 난 DL 이앤씨(옛 대림산업)가 그 예다. DL이앤씨 건설 현장에선 모두 7번의 사고가 났고, 8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건설업체를 대상으로 ‘자체심사 및 확인업체 지정제도’가 운영된다. 건설공사의 안전성을 위해 사업주 스스로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작성하고, 공단에 제출토록 하여 그 계획서를 심사하고 공사중 계획서 이행여부를 주기적인 확인을 통해 노동자의 안전·보건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다.

단서 조항으로, ‘동시에 2명 이상의 사망재해 발생 또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경우 자체심사 및 확인업체에서 즉시 제외’된다. DL이앤씨가 이에 해당하지만 DL은 이 제도에서 제외되지 않았다. 공단이 제도를 책임있게 관리, 운영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사고가 많은 현장에 더 많은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는 박 정 환노위 위원장(더불어민주당)의 지적에도 안종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고가 많이나 그곳들 점검을 더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관리감독 부실 지적에 대한 해명이었으나 “그건 대기업 봐주기 아니냐”는 질타만 되돌아왔다.

그러나 산업재해로 인정받아도 정작 산업재해를 치료해야 할 병원은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문을 닫고 있는 실정. ‘근로복지공단이 관리에 손 놓은 거 아니냐’는 비판을 피해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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