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국가, 조선]을 읽고

추석 연휴를 맞이해 친척들이 모였다. 아시안게임이 한창 진행 중인지라 몇몇 가족들이 남북 여자 축구 8강전을 시청하며 응원전을 펼쳤다. 전반 10분경, 한국 선수가 찬 공이 북 선수의 몸에 맞고 그대로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북 선수의 자살골이었다. 골 장면을 재생하는 느린 화면이 나올 때쯤, 경기를 지켜보던 한 친척이 나지막이 한마디를 했다. “아이고, 저 선수 아오지 탄광 끌려가겠네” 순간 내 귀를 의심했지만 나이가 제법 많은 분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며 생각하던 중, 골 소식을 듣고 안방에 있던 조카가 TV 앞으로 다가오면서 “아오지 탄광 가겠네”하며 혀를 찼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친척과 조카에게 “요즘 세상에 무슨 아오지 탄광 얘기냐”며 타박을 주고 말았지만,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스포츠 경기에 나온 실수 때문에 해당 선수가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가야 한다는 발상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반공교육이 낳은 상징적인 사고가 아닐까? 반공, 반북, 혐북으로 일관된 북에 대한 인식이 머릿속을 지배하는 한, 북에서는 노동의 신성함이 강조되고 너나없이 국가건설에 몸소 땀 흘려 참여하고 전민 노동 계급화 운동이 시행되고 있다는 팩트는 당연히 파고들 틈이 없다. 아니 오히려 북을 미화한다는 역풍에 말릴 가능성이 높다.

계속해서 축구 경기를 보던 중, ‘대한민국 : 북한’이라는 득점판에 눈이 멈췄다. 국가 간의 스포츠 대항전인 아시안게임 중계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정식 국가 명칭은 찾아볼 수 없다. 문득 북한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정명(正名)으로 불러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이 떠올랐다. 저자는 ‘김광수의 통일담론 - 통일로 평화를 노래하라’는 저서에서 왜곡과 편견의 상징 ‘북한’이라는 용어는 버리고, 원래의 이름으로 바로잡힌 ‘조선’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야 반공, 반북, 혐북의 태도에 기반한 북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북을 대한민국과 같은 하나의 민족성에 근거한 독자적인 자주독립국가로 인정하고 그 토대 위에서 북의 실상을 이해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강조해 왔던 김광수 박사가 2년 만에 새 저서를 출간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전략국가, 조선>이다. 저자가 지적한 대로 말 그대로 정면돌파다. 저자는 이제껏 단 한 번도 남쪽 사회에서 시도해 보지 못한 북의 ‘생경한’ 모습을 북 그들의 시각인 내재적 접근법과 함께, 우리 민족을 중심에 놓는 주체사관 및 민족사적 관점에서 서술했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반공, 반북 사고에 머무르는 사람은 물론이고, 북에 대해 그나마 열린 시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도 좀 불편한 내용이 더러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좀 불편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북의 실체를 파헤치면서 우리 스스로가 북을 몰라도 너무나 몰랐냐는 반문과 함께, 알게 모르게 체질화되어 있는 체제 우월적 사고에 포획된 사고를 성찰하는 계기로 삼자는 제안도 덧붙인다. 북 바로알기를 향한 한 발짝 ‘나아가기’를 시도하자는 것이다.

저자의 저서는 북은 과연 어떤 나라인지를 살펴보는 총론적 이해(Ⅰ장)로 책을 연다. 저자는 북에 대한 총론적 이해를 위해 북의 역사(항일무장투쟁), 주체사상, 3대 이념(이민위천, 일심단결, 자력갱생)이라는 3종 세트를 완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먼저 항일무장투쟁은 조선의 이념 뿌리이며 항일무장투쟁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다양한 국가적 재생장치를 생산, 유지하고, 전체 국가구성원이 국가와 똑같은 하나의 기억만을 갖는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렇게 항일무장투쟁은 북에서 역사와 신화로 재해석된다. 또한 북은 국가와 인민이 하나의 사상이념인 주체사상으로 대변되는 국가지도 이념으로 똘똘 무장해 있고, 이민위천, 일심단결, 자력갱생이라는 3대 이념으로 무장해 정치적으로 수령-당-인민대중의 하나의 유기체적으로 결합해 하나의 ‘사회주의 대가정’이라는 유일무이 국가개념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Ⅱ장에서 저자는 지금까지 숨겨져 왔고 갇혀있던 불편한 진실을 과감히 파헤친다. 지난 저서에서 분명하게 바로 잡아져야 할 몇 가지(북한이 아니라 조선으로 불러야, 북 붕괴론에 대한 거짓과 진실, 북핵 비핵화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에 더해 6.25 전쟁이 아니라 ‘조선반도(한반도)에서의 전쟁’이라 부르자, 가난하지 않은 북, ‘우상’ 수령은 없다, ‘세습’ 후계는 없다 등 그동안 필자가 축적해온 자료와 근거를 갖고 새로운 논리를 전개한다. 앞서 얘기했듯이 논리의 전개는 그야말로 ‘정면돌파’다. 그동안 우리를 억눌러왔던 국가보안법과 체제 대결적 적대 의식, 묻지마식 ‘무조건 싫다’는 혐북의식을 극복하는 긴 여정이자 해답 찾기라 할 수 있다.

마지막 장(Ⅲ장)은 전략국가, 조선에 대한 이해다. 북은 미 제국주의와의 한판 대결을 벌이고 있고 전반 정세를 북이 주도하고 있으며 북의 승리는 확정적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또한 북의 핵보유의 정치적 의미를 설명하면서 전쟁억지력이라는 군사적 무기, 미국과 담판을 위한 정치적 수단이며 경제강국 건설의 추동력이자 수령의 위대성을 입증할 수 있는 정치사상적 무기라고 규정한다. 마지막으로 북은 여태껏 그 어느 국가도 상상해내지 못한 사회주의 강성대국이라는 목표를 세웠고, 이를 2030년 중반까지 이루어 내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며 앞으로의 시간이 북의 시간인지 아닌지 오롯이 북에 달렸다며 글을 마무리한다.

80년대 후반 황석영의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책이 출판되면서 북 바로알기가 시작된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북에 대한 생활 모습을 소개하는 글이 쏟아지고 북 방문이 가능해지면서 북의 실상에 접근하는 게 점점 용이해졌다. 있는 그대로 북을 이해하자는 의식도 그나마 높아져갔다. 이에 더해 저자는 평소 강의와 담화, 책 출판을 통해 낮은 차원에서의 북인식-동포애적 관점과는 과감하게 결별하고 ‘체제와 제도로서 북 바로알기 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꾸준히 강조해왔고, <전략국가 조선>은 저자의 그러한 고민과 사색이 집약된 저서다. 북을 제대로 깊이 있게 이해하고 북 바로알기가 평화와 통일의 디딤돌을 놓는 시금석이라고 믿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