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가톨릭대학교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제리 멀러가 쓴 <성과지표의 배신The Tyranny of Metrics>이라는 책이 있다. 두 해 전 성과급제의 문제점에 대한 강의를 준비하면서 이 책을 꼼꼼하게 읽었다. 저자는 공공부문에 성과지표를 도입했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여러 각도로 분석하며 비판을 수행했는데, 주요한 비판지점 중 하나가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는 ‘목적 전치 현상’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대학에서 교수 및 연구원의 학문적 성과를 평가할 때 출간된 논문 편수 그리고 논문의 인용 횟수 등을 주요한 측정지표로 사용하게 되자, 장기간을 요구하는 깊이 있는 연구는 기피하고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가벼운 주제의 연구를 선호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용 점수를 높이기 위해 비공식적인 모임을 결성해서 서로의 논문을 알음알음 인용해주는 폐단도 벌어졌다.

뉴욕에서 외과 의사의 성과지표로 관상동맥 우회술 이후 사망률, 즉 수술 경과 30일 후에도 생존하는 환자의 비율을 기록했다. 이 측정지표가 도입된 후 사망률이 실제로 감소했다. 하지만 실상은 의사들이 성과지표를 의식해서 중증 환자를 거부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관상동맥 우회술 이후 사망률’이 하락하게 된 것이다.

뉴욕경찰청에서 경찰 간부의 성과지표로 범죄 발생률을 측정하고 활용하기 시작하자, 자신의 진급이 달려 있다고 생각한 경찰 간부들은 아랫사람들에게 수치 개선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중범죄를 경범죄로 바꾸는 축소 보고가 발생했다. 예를 들어 가택 침입은 무단출입으로, 절도는 분실물로 바꾸는 식이다. 이 때문에 뉴욕경찰청은 보고받은 내용을 감사하고 잘못 보고한 경찰관을 처벌하는 데 상당한 인력을 투입해야 했다.

저자는 측정지표와 연동된 성과급은 조립 라인의 표준화된 제품 생산 같이 업무가 단순하고 반복되는 일일 경우 금전적 유인을 통해 유의미한 성과를 불러올 수도 있지만, 업무 자체에서 내적인 동기부여와 보람을 느끼는 전문직의 경우는 성과급을 도입할 경우 오히려 직업윤리와 자부심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지적한다. 전문직의 경우 업무가 복잡하고 고도의 판단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단순한 수치의 측정과 연계된 성과급을 도입하게 되면 업무 자체가 성과급에 의해 왜곡되어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책을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화폐 보유량을 성과지표로 하는 하나의 거대한 성과급제이며 그 안에서 사람들은 목적 전치 현상으로 왜곡된 삶을 살게 되는 건 아닐까. 모든 것이 화폐로 환산되는 이 시스템 속에서 대다수는 통장 잔액과 자산을 불리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을 경주하게 된다. 설사 그 과정에서 타인을 착취하고 환경을 오염시키고 이웃과 공동체에 이런저런 민폐를 끼치더라도 머뭇거리거나 망설이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는 어마어마한 빈부격차, 무분별한 환경파괴와 생명 경시 풍조, 인간성과 공동체성의 붕괴라는 부작용에 몸살을 앓고 있다.

호주의 브로니 웨어라는 사람은 호스피스 간호사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에 비슷한 후회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그녀는 죽어가는 사람이 가장 많이 하는 후회 다섯 가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2. 내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았더라면

3. 내 감정을 표현할 용기가 있었더라면

4. 친구들과 계속 연락하고 지냈더라면

5. 나 자신에게 더 많은 행복을 허락했더라면

제일 많은 후회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이다. 통장 잔액을 더 늘리지 못한 것, 근사한 대저택에서 살아보지 못한 것, 명문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 화폐라는 성과지표에 얽매여 살다가 다 잃어버린 ‘시간’을 후회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강요한 성과지표에 매몰되어 인생을 모조리 허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정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사회, 과도하게 일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회, 친구 및 지인들과 즐겁게 교류할 수 있는 사회, 나 자신에게 더 많은 행복을 허락할 수 있는 사회. 그래서 각 개인이 자신의 삶을 마감할 때 후회와 미련이 적은 사회. 그것은 더 많은 자본주의적 정책이 아니라, 더 많은 사회주의적 정책이 도입된 복지사회에서나 가능할 것임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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