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건설노조 죽이기’로 상징되던 윤석열 정부의 노조탄압에 새로운 카드가 등장했다.

건설현장 특별단속 기간 4,829명을 검거하며 탄압 성과를 만든 정부가 다음 노조탄압 명분으로 ‘근로시간 면제(타임오프) 제도’를 빼든 모양새다.

타임오프제, 즉 노동자가 노조 활동을 위해 근로시간을 면제받고, 노조 전임자로서 급여를 지급받는 것에 ‘불법’ 딱지를 붙이겠다는 것. “일 안 하고 돈 받는다”, “불법임금을 받는다”는 여론을 형성해 또 한 번 노동조합의 도덕성을 흠집 내기 시작했다.

▲ 8월28일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열린 노동개혁 추진 점검회의 ⓒ뉴시스
▲ 8월28일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열린 노동개혁 추진 점검회의 ⓒ뉴시스

타임오프제를 걸고 드는 탄압 방식은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투쟁이 한창일 때 이미 예견됐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는 건설노조 기획탄압도 모자라 단체협약과 타임오프제 등을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3일, 고용노동부가 3개월간 자체 조사한 ‘근로시간면제 제도’ 운영실태 결과를 발표했다.

1천명 이상 사업장 521곳 중 타임오프제를 적용하는 480곳을 조사해 “타임오프 한도를 위반한 사업장 63곳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도를 위법하게 운용하는지에 대한 상시근로감독을 실시하겠다”며 노사관계 개입과 노조탄압 의도를 드러냈다.

조사 결과가 도출되기도 전, 조사를 시작한 때부터 고용노동부의 의도는 다분했다. 사용자만을 대상으로 편향적인 질문을 준비해 조사를 진행한 것.

고용노동부 조사는 지방노동관서를 통해 사용자에게 조사표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조합원 수’와 ‘근로시간면제 한도’라는 단편적인 기준으로 조사한 후 “법정한도를 초과한 위법한 사업장이 많다”는 결론을 내렸다.

민주노총은 “근무시간 중 유급으로 보장되는 노동자의 활동은 노조법에 규정된 노동조합 활동만 있는 게 아니”라며 반박했다. 근로자참여법에서 정한 노사협의회위원, 고충처리위원, 남녀고용평등법상 직장내성희롱 조사 관련 업무,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업안전보건위원 등 다양한 활동이 노동관계법상 유급으로 보장된다는 것.

이러한 노사자치 활동, 노사공동 활동을 근로시간면제 제도가 다 담지 못하고 있음에도 고용노동부는 ‘법정한도’만을 강조한 채 ‘한도를 초과했다’며 위법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타임오프제는 노사 간 이해가 엇갈리는 사안이다. 근로시간을 면제받는 노조전임자를 몇 명까지 둘 수 있는지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회사로서는 전임자를 적게 두는 게 좋고, 회사 일을 하지 않는 전임자에게 월급을 주는 건 싫을 게 뻔하다. 고용노동부는 이 타임오프 전수조사를 사용자 중심으로 진행해 불법 노동조합을 만들고, 위법 사례 수를 부풀렸다.

타임오프제 조사는 관례적인 일이 아니다. 2010년 타임오프제 도입 후, 명확한 사유가 있을 경우 조사를 시행했다. 단 세 차례다. 타임오프 한도를 재설정하는 등의 사유가 그 예다. 2021년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현장의 노사 모두를 대상으로 타임오프 설문조사를 실시해 실태를 파악했는데, 당시에도 ‘편향적 설문조사’, ‘불투명한 조사과정’이 논란이 돼 보고서가 폐기되는 일까지 있었다.

‘불법·부당’ 딱지의 속내

노조법에서 규정한 ‘부당노동행위’는, 노동조합의 조직 운영과 활동에 사용자가 불이익을 주거나 지배·개입하는 행위를 말한다. 사용자로부터 자주적인 노조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노조법은 사용자가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초과하여 급여를 지급’하는 걸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 ‘사용자’의 범죄를 불법 범죄로 규정한다(81조1항4호). 법으로만 봐도 노동자는 급여를 지급받고 근로시간을 면제받는다고 해서 ‘불법’의 행위자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에서 이 ‘부당·불법’의 딱지가 향하는 곳은 노동조합이다.

국제노동기구(ILO)도 전임자 급여지급, 근로시간면제는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국가가 법으로 규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조 활동을 위해 근로시간을 면제받고, 노조 전임자로서 급여를 지급받는 게 불법행위가 아님에도 정부는 근로시간면제 제도에 대한 ‘상시적 근로감독’을 내세워 노사관계에 개입하려 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근로감독’은 노동조합을 옥죄는 방안으로 활용돼왔다. 건설노조를 탄압했던 기획감독 사례만 봐도 그렇다.

근로시간면제 한도 범위 내에서만 노조 활동을 할 수 있게 하고, 그 이상의 활동을 제약하며 노조활동을 통제하겠다는 정부 속내는 노조 전임자를 축소하고,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노사가 자율로 합의한 타임오프 관련 단체협약에 시정명령을 내리거나, 정부 지시에 따라 타임오프 한도에 대한 재논의가 이뤄지면 노사갈등이 불거질 터. 투쟁이 필요한 와중에 노조활동을 약화시켜 노조의 단결까지 파괴하려는 일명 ‘노조죽이기’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 지난 4월,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찾아온 고용노동부의 회계자료 미제출 노동조합 현장조사. 금속노조는 자료비치 의무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으며 자료 제출 또한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행했다며 고용노동부의 현장 조사를 거부했다.
▲ 지난 4월,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찾아온 고용노동부의 회계자료 미제출 노동조합 현장조사. 금속노조는 자료비치 의무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으며 자료 제출 또한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행했다며 고용노동부의 현장 조사를 거부했다.

윤석열 정부는 건설노조 죽이기와 함께 노동조합의 회계를 공격해 민주노조의 도덕성과 자주성을 흠집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젠 조합비를 공시하지 않으면 조합원에게 적용하던 조합비 세액공제를 올해 10월분부터 인정하지 않겠다는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했다. 애초 내년 1월1일부터 시행하려던 것을 석 달이나 앞당겼다. 노조 회계장부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양대노총 노동자위원들을 정부위원회에서 배제한 데 이어, 노조 회계공시를 빌미로 조합원들의 연말정산 혜택을 주물럭거리며 노조 흔들기에 나섰다.

지난 상반기 주69시간제를 내놔 여론의 뭇매를 맞고 한발 물러섰던 윤석열 정부. 근로시간 개편 수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공개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정부의 노동개악이 다시 속도를 내는 시기에 맞춰, 노동개악에 제동을 걸고 투쟁할 민주노조에 대한 탄압도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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