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광복절 경축사 4대 궤변
1. 공산 세력과의 싸움이 독립운동?
2. 공산전체주의 세력, 민주‧인권‧진보로 위장?
3. 유엔사 제공 일본 후방 기지, 남침 최대 억제 요인?
4. 한·일 양국은 안보 파트너?

78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세인의 귀를 의심케 하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독립운동을 ‘공산 세력과의 싸움’으로 왜곡하고, 일본과의 안보 파트너를 강조했다.

촛불항쟁과 민주화 운동을 ‘반국가세력의 준동’이라고 억설하며, 반공주의를 부활해 반일운동에 재갈을 물린다.

마치 해방정국에 미군정과 이승만이 친일 경찰을 앞세워 독립운동가를 빨갱이로 몰아 처단하던 때를 연상케 한다.

예나 지금이나 퇴행의 목적은 명백하다. 독재권력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더욱 소름 돋는 현실은 해방정국 친일파의 반공주의가 전쟁으로 이어졌던 것처럼 윤 정권의 민주주의 퇴행도 전쟁을 향해 직진한다는 사실이다.

윤석열 경축사의 4대 궤변

1. 공산 세력과의 싸움이 독립운동?

윤 대통령은 “우리의 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었다”며, “공산 세력과 맞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것으로 이어졌다.”라고 말했다. 이는 궤변일 뿐만 아니라 사실관계도 틀렸다.

우리의 독립운동은 전범국 일본의 강점에 맞선 조국 해방 운동이었다. 당시 독립운동의 최대 우군은 2차대전 연합군이던 소련. 이 때문에 해방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사회‧공산주의를 지지한다는 결과가 77%에 달했다.

▲1946년 8월 13일 동아일보가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사회주의 찬성이 70%, 공산주의 7%였으며 자본주의는 14%에 그쳤다.
▲1946년 8월 13일 동아일보가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사회주의 찬성이 70%, 공산주의 7%였으며 자본주의는 14%에 그쳤다.

독립운동은 좌우를 불문하고 일본에 빼앗긴 조국을 되찾는 데 동의하는 전 민족의 단결된 힘으로 전개되었다. 연합군의 구성도 마찬가지. 소련, 미국, 영국, 중국으로 구성된 2차대전 연합군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힘을 합친 반파쇼 전선이었다.

이런 초보적인 상식을 대통령이 몰랐다면 경악할 일이고, 알고도 그랬다면 “(미국과 일본을)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에 해당한다.

윤 대통령이 사실관계를 왜곡하면서까지 독립운동을 굳이 반공주의와 연결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뒤이은 연설 내용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2. 공산전체주의 세력, 민주‧인권‧진보로 위장?

윤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라고 진단하고,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라며 탄압을 예고했다.

윤 대통령이 지적한 민주‧인권 운동가와 진보 행동가는 군부독재에 맞서 이 땅의 민주화를 일구어 온 87년 세대와 그 토대 위에서 성장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를 의미한다. 이들이 민주시민과 힘을 합쳐 박근혜 퇴진 촛불을 들었고, 이들이 윤석열 정권을 검찰독재라 규정하고 퇴진투쟁을 벌이고 있다.

윤 대통령이 이들을 표적으로 지목한 이유는 단순하다. 독재권력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우리 현대사는 민주주의 발전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전히 민주화 세력이 한국사회의 주류다.

그러니 독재 권력을 부활시키려는 윤석열 정권으로선 이들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이들을 탄압할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윤 대통령은 이들을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세력’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마치 해방정국에 미군정과 이승만이 친일 경찰과 극우 세력을 앞세워 독립운동가를 빨갱이로 몰아 구속한 때와 마찬가지 경우다.

이승만 정부 수립 100일만에 국가보안법이 제정(1948년 12월 1일) 된다. 이후 1949년 한 해 동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1만4천여 명이 투옥된다. 이들 대부분은 독립운동가 출신의 사회주의자였다. 반면 1949년 6월 6일 ‘반민족행위자처벌을위한특별위원회’(반민특위)는 테러를 당해 해산된다.

반민특위 해산으로 일제강점기 친일 경찰은 대한민국 정부에서 경찰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들 친일 경찰에 의해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 구금되는 뼈아픈 역사가 시작되었다.

윤 대통령이 이날 경축사에서 민주인사를 반국가세력에 비유한 것은 총선을 앞두고 대대적인 공안몰이를 예고한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3. 유엔사 제공 일본 후방 기지, 남침 최대 억제 요인?

윤 대통령은 “일본이 유엔사령부에 제공하는 7곳 후방 기지의 역할은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 최대 억제요인”이라고 평가했다. 날조와 억측이다.

우선 유엔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군은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1950년 7월 24일 도쿄에서 유엔사령부를 설립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유엔 안보리는 유엔사를 창설할 권한이 없다. 유엔사 창설은 오로지 유엔 총회에서만 의결할 수 있다. 1975년 11월 유엔 총회에서 이 사실이 지적되면서 해체 결정이 내려졌다. 당시 미 국무부장관 키신저는 1976년 1월 1일부로 유엔을 참칭한 한국 주둔 유엔사 해체를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유엔사는 아직도 해체하지 않았다.

일본이 후방 기지 7곳을 제공했다는 유엔사가 바로 유엔을 참칭한 가짜 유엔사이다.

다음으로 윤 대통령은 일본 기지가 남침의 최대 억제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런 언급은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 및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꼴이되고 말았다.

일본은 지난해 12월 안보관련 3대 문서를 개정하면서 ‘반격능력’을 확보한 상태다. 반격능력이란 유사시 적의 미사일 발사기지 등에 선제타격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결국 윤 대통령의 이날 발언으로 일본은 북 미사일 기지를 선제타격할 명분을 얻었다. 또한 일본이 최근 영유권을 주장하는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일본은 중국 본토를 향해 미사일을 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독도에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은 일본 후방기지가 남침을 차단하는 최대 억제요인이라고 했지만, 되려 최대 전쟁 발화 요인이다. 왜냐하면 북은 일본을 100년 숙적으로 여기고, 일본은 군국주의를 부활해 대륙 진출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4. 한·일 양국은 안보 파트너?

윤 대통령은 “일본은 이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안보와 경제의 협력 파트너”라고 추켜세웠다. 위안부와 강제동원, 독도 영유권 주장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정작 이날 기시다 일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했다. 특별히 사과의 메시지는 없었다.

일본은 지난해 12월 안보관련 3대 문서를 개정하면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공식 표기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도 관련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일본은 과거 조선을 강점할 때 독도가 자기네 땅이었는데, 독도를 한국에 돌려준 적 없기 때문에 영유권을 주장한다. 윤 대통령이 광복절에조차 독도 문제를 명확히 하지 않음으로써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긍정적 신호를 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한편 미국은 지난 2월 동해상에서 한미일 훈련을 실시하며, 훈련 장소를 ‘동해’ 대신 ‘일본해’라고 표기했다. 한국은 미 측에 그러한 사실을 수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훈련이 끝날 때까지 우리 입장은 반영되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은 앞으로 동해상에서 훈련할 때 일본해 명칭을 고수할걸로 확인됐다. 미 국방부는 “‘일본해’가 공식표기가 맞다”며 “‘일본해’라고 쓰는 건 미 국방부 뿐 아니라 미국 정부 기관들의 정책”이라고 답한 것으로 JTBC가 16일 보도했다.

‘동해’를 ‘일본해’라고 공식표기한 미국이 만약 독도 관련 한일 간 분쟁이 발생할 경우 어느쪽 손을 들어 줄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윤석열, 궤변 쏟아낸 이유?

윤 대통령의 이날 경축사를 보수 정권의 의례적 행태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경축사 내용이 너무 집중적이고 노골적이다.

윤 대통령이 굴욕을 감수하면서까지 궤변을 쏟아낸 결정적인 이유는 한미일 동맹을 강조한 미국의 요청 때문이다.

미국이 펼치는 신냉전 전략의 핵심은 북중러 악마화를 통한 고립압박이다. 이를 위해 미-일-한 군사동맹이 선차적 과제로 나섰다. 하지만 한일관계 개선은 한국 역대 어떤 정권도 풀지 못한 난제였다. 왜냐하면 한일관계는 일본의 진정어린 사죄가 전제이며, 위안부, 강제동원, 독도 등 현안에 대한 일본의 적극적인 배상과 해명 없이는 풀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역대 보수 정권조차 지지율을 의식해 이런 전제를 허물 수 없었다. 일본도 과거 전쟁범죄를 인정하면 군국주의를 부활시킬 수 없기 때문에 사죄 요청을 외면해 왔다.

평행선을 달리던 한일관계에 조건 없는 개선을 먼저 제안한 쪽은 윤석열 정부다. 지지율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며 미국의 요청을 모두 수용한 것. 처음 기시다 총리는 윤 대통령의 적극적인 구애 요청이 믿기지 않아 머뭇거렸지만, 바이든 미 대통령의 중재에 힘입어 한일관계 개선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결국 일본은 과거사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재무장을 통한 군국주의 부활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은 북중러를 상대할 전쟁동맹인 미-일-한 군사동맹을 체결하고, 3국의 군사훈련까지 정례화하기에 이르렀다.

18일 예정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일본해’ 표기에 대한 문제 제기나 독도 영유권을 분명히 할 가능성은 없다. 한미일 전쟁동맹 구축이 순조로울 것이란 뜻이다.

한미일 전쟁동맹이 구축된 조건에서 미국은 미 본토만 위협 받지 않는다면 언제든 동북아에서 전쟁의 불씨를 지필 수 있다. 대만, 댜오위다오, 한반도 그 어디든 가능하다. 이중 가장 유력한 곳은 한반도다.

대만은 내년 1월 총통선거 전까지는 전쟁위기를 부추길 가능성은 낮다. 친미 성향의 민진당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댜오위다오도 마찬가지. 일본이 섣불리 중국과의 무력충돌을 결정할 리 없다.

결국 대선 때부터 선제공격 운운하던 윤 대통령만 남는다. 제 나라 국민 50만 명 이상이 죽어도 마치 전쟁 영웅이라도 된 양 화보까지 찍으며 국제사회에서 각광 받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보면서 윤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전쟁 까짓것 할만 하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78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윤석열 퇴진이야말로 한반도를 전쟁 위기에서 구하는 길이며, 피땀으로 일구어 온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독재로의 회귀를 막는 길임을 똑똑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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