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로 만난 윤석열과 한비자 (5)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채형복 교수는 검찰주의자 윤석열 대통령이 제왕을 꿈꾸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일까? 전국시대 법치주의를 주창한 한비자를 소환했다. 연재 ‘법치로 만난 윤석열과 한비자’를 14편으로 나누어 싣는다. 윤석열 검찰독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편집자]

순자의 성악설

한비자의 법술세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고 악하므로 선(善)한 행위는 후천적 습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보는 순자의 성악설을 따른다. 이 학설은 인간은 선천적으로 한없는 욕망을 가지고 있어 그대로 두면 싸움만이 일어나 파멸하기 때문에 예(禮)로써 바로잡아야 한다고 하였다. 순자의 성악설에 따라 한비자는 인간의 일반적 성질은 타산적이고 악에 기우는 것으로 설혹 친한 사이에 애정이 있다 해도 그것은 무력(無力)한 것이므로 정치를 논할 기초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한비자는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고 악하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아래와 같은 사례를 들고 있다.

[사례 1]

하루는 위나라에 사는 어느 부부가 기도를 할 때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비나이다. 저희가 공짜로 삼베 5백 필을 얻게 해 주십시오!”

남편이 힐난했다.

“어찌 그리 적은가?”

아내가 대답했다.

“그것보다 많으면 당신이 앞으로 첩을 들이겠지요!”(한비자 내저설 하 31:18)

[사례 2]

수레를 만드는 사람은 수레를 제작하면서 사람이 부귀해지기를 바라고, 관을 만드는 사람은 관을 짜면서 사람이 요절하기를 바란다. 이는 수레를 만드는 사람이 어질고, 관을 짜는 사람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부유해지지지 않으면 수레가 팔리지 않고, 사람이 죽지 않으면 관을 팔 수 없기 때문이다. 관을 짜는 사람이 마음속으로 사람을 증오해서 그런 게 아니라 사람이 죽어야 이익을 볼 수 있기에 그런 것이다. (한비자 비내 17:2)

[사례 3]

부모가 자식을 대할 때 아들을 낳으면 서로 축하하고, 딸을 낳으면 죽여 버린다. 다 같이 부모의 품안에서 나왔는데 아들이면 축하하고, 딸이면 죽이는 것은 훗날의 편의를 생각하고 먼 장래의 이익을 헤아린 결과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조차 이처럼 이해타산을 계산하는 마음이 작용한다. 하물며 군신관계처럼 혈연의 애정도 없는 경우이겠는가? (한비자 육반 46:1)

[사례 1]과 [사례 2]는 현실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고,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사례 3]의 부모가 아들을 낳으면 축하하고, 딸을 낳으면 죽여 버린다는 설명은 현대인의 인식과 인권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시대를 떠나 법과 법치를 맹목적이고 기계적으로 이해하고 적용할 때 일어날 수 있는 극단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성악설은 사람의 본성은 선천적으로 착하나 나쁜 환경이나 물욕(物慾)으로 악하게 된다는 성선설과 전적으로 대비되는 학설이다. 성선설의 근거로 맹자는 사람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네 가지 마음이 있다는 사단(四端)을 주장하였다. 맹자가 말하는 사단이란, 인(仁)에서 우러나오는 측은지심, 의(義)에서 우러나오는 수오지심, 예(禮)에서 우러나오는 사양지심, 지(智)에서 우러나오는 시비지심을 이른다.

이처럼 순자의 성악설과 맹자의 성선설은 사람의 본성을 전적으로 상반되게 보고 있다. 전자는 법가의 패도정치, 후자는 유가의 왕도정치의 이론적 논거로 원용되었다. 한편 노자를 비롯한 도가는 무위사상을 바탕으로 무위지치를 주장하였다. 이는 성인의 덕이 지극히 커서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천하가 저절로 잘 다스려진다는 도치(道治)로 이어졌다. 한비자는 법치를 행함에 일체의 사사로움이 없다는 무사법치(無私法治)를 주장하였으며, 이는 노자의 도치(道治)와 그 맥락이 닿아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도치를 최상의 통치라고 평가하였다.

유가(儒家)와 묵가(墨家)에 대한 비판

한비자는 인의에 바탕을 두고 인간사회를 파악하는 것은 공론(空論)에 불과하다며 유가의 덕치를 부정하고, 법치를 강하게 주장한다. 현명한 사람을 숭상하는 것은 좋은데 그것을 정치규범으로 할 수는 없다. 법이 아닌 인간은 우연적 요소이므로 위험하기 때문에 현명한 사람보다는 능력 있는 사람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한비자는 유가의 허례허식과 묵가의 지나친 검약을 아래와 같이 신랄하게 비판한다.

묵가는 장례를 지낼 때 사자에게 겨울에는 겨울옷, 여름에는 여름옷 수의를 입힌다. 또 오동나무로 만든 두께 3촌의 관을 쓰고 상복은 3달만 입는다. 세상의 군주들은 이런 검소한 박장(薄葬)을 칭송하며 이들을 예우한다. 유가는 이와 달리 가산을 탕진하며 성대한 후장(厚葬)을 치른다. 3년 동안 상복을 입는 탓에 몸이 수척해져 지팡이에 의지해야만 한다. 세상의 군주들은 효성이 지극하다며 이들을 예우한다. 무릇 묵가의 검소한 행보가 옳다면 유가의 사치를 반대해야 하고, 유가의 효성이 옳다면 묵가의 박정(薄情)을 반대해야 한다. 효성과 박정, 사치와 검소의 상반된 얘기가 모두 유가와 묵가의 주장 속에 있다. 그런데도 군주는 이들을 모두 예우하고 있다. (한비자 현학 50:2)

한비자는 간사한 거짓을 일삼으며 사사로운 이익이나 챙기는 무익한 6개 부류의 선비가 있는데, 세인들은 오히려 이들을 칭송한다고 한탄한다. 이들이 바로 유가와 묵가를 믿고 따르는 선비들이다. 이들과는 정반대로 열심히 농사짓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유익한 6개 부류의 백성이 있으나 세인들은 오히려 이들을 폄하한다. 한비자는 옳고 그름이 뒤바뀌었다며 이를 ‘육반(六反)’이라 불렀다(한비자 육반 46:1).

법가는 기본적으로 농업생산을 장려하고 공상업을 억제하는 중농경상(重農輕商)을 국가산업정책의 근간으로 삼으며, 유가와 묵가 및 상공인에 대해서는 아주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한비자도 동일한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학자, 유세객, 협객, 정객 및 상공인과 같은 다섯 가지 부류는 나라의 기둥을 좀먹는 두충과 같은 존재라며 ‘다섯 마리 좀벌레’라는 뜻에서 ‘오두(五蠹)’라 부르고는 이들에 대해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에 대해 한비자는 말한다.

“이 다섯 가지 두충과 같은 자들을 제거하지 않고 경전(耕戰)에 뛰어난 경재지사(耿介之士)를 양성하지 않으면, 패망하는 나라와 복멸(覆滅)하는 조정이 나타날지라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한비자 오두 49:18)

육반의 유가와 묵가의 선비들과 다섯 마리 좀벌레 같은 부류가 끼치는 사회적 병폐와 해악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일까. 법으로 다스리는 법치다. 한비자는 말한다.

“법으로 다스리는 길은 처음에는 고달프나 나중에는 크게 이롭고, 인의로 다스리는 길은 처음에는 이로우나 나중에는 크게 궁색해진다.”

만일 성인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한비자는 법과 인의의 경중을 잘 헤아려 이로움이 큰 쪽을 택한다고 보고 있다. 성인은 법치 아래서 어려운 상황을 견디는 쪽을 택하는 까닭에 서로 깊이 동정하며 아낌없이 베푸는 인의의 길을 버린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유자들은 ‘형벌을 가볍게 하라’고 입을 모아 비판한다. 유자들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한비자는 “나라를 어지럽게 하고 끝내 패망으로 이끄는 술책”이라며 맹공을 퍼붓는다(한비자 육반 46:4).

이형거형으로 대표되는 엄벌주의에 의거한 강력한 법치를 주장하고, 유자들이 가지는 가치관념을 비판하면서 한비자는 유가의 스승 공자와 노애공(魯哀公)의 사례를 든다.

한비자가 보기에 백성은 본래 권세에 복종하지만 의로움을 품고 따르는 사람은 적다. 이를테면, 공자는 천하의 성인으로 수행을 한 후 도를 밝히며 천하를 돌아다녔다. 천하 사람들은 그가 말한 인을 좋아하고, 그 의를 칭찬했지만 복종한 자는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대개 인(仁)을 귀하게 여기는 자가 적고, 의(義)를 실행하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이런 이유로 한비자는 말한다.

“천하는 매우 크지만 그의 제자는 70명뿐이었고, 인의를 실천한 사람은 공자 한 사람뿐이었다.”(한비자 오두 49:6)

공자와 달리 노애공은 보잘 것 없는 군주였다. 하지만 남면(南面)하여 군주로 즉위해 나라를 다스리자 백성들 가운데 감히 신하가 되지 않으려는 자가 없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군주가 가진 권세에 있다. 한비자가 보기에 백성은 실로 권세에 복종하고, 권세는 실로 사람을 복종시킨다. 공자가 신하가 되고, 노애공이 군주가 된 이유다. 공자는 노애공의 의(義)에 감복한 게 아니라 그의 권세에 복종한 것이다(한비자 오두 49:6).

이 두 인물을 비교하면서 한비자는, “만일 의를 기준으로 했다면 공자는 노애공에게 복종하지 않았을 것이다. 권세에 의지했기에 노애공도 공자를 신하로 삼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한비자는, “지금 학자들은 군주를 설득하면서 반드시 권세를 잘 운용하라는 말은 하지 않고, ‘인의를 힘써 행하면 능히 왕도를 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군주에게 반드시 공자 못지않은 인물이 되고, 백성들에게 모두 공자의 제자가 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는 결코 이뤄질 수 없는 도리이다”라는 날선 비판을 한다. 따라서 한비자에게 “천하 사람들 모두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과 어른을 공경하고, 군주에게 충성하고, 남편에게 복종하는” 효제충순(孝悌忠順)의 도리(한비자 충효 51:1)는 천하의 변하지 않는 상도(常道)이다. 상도를 버리고 현능한 자들을 숭상하면 나라는 이내 어지러워지고, 법도를 버리고 지혜로운 자들을 임용하면 군주는 위태로워진다는 것이다(한비자 충효 51:2).

신하로서 요순을 현명하다고 칭송하지 않고, 탕무가 폭군을 토벌했다며 기리지 않고, 열사의 높은 절개를 말하지 않고, 힘을 다해 법을 지키고, 마음을 다해 군주를 섬기는 것이 바로 충신이다. (한비자 충효 51:5)

법을 숭상할 뿐 현능을 숭상하지 않는다(尙法而不尙賢, 한비자 충효 51:2). 이 말을 들어 한비자는 힘을 다해 법을 지키는 것이 곧 충신의 도리라며 법치가 효제충순을 강조하는 유가의 입장과 다르지 않음을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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