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로 만난 윤석열과 한비자 (4)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채형복 교수는 검찰주의자 윤석열 대통령이 제왕을 꿈꾸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일까? 전국시대 법치주의를 주창한 한비자를 소환했다. 연재 ‘법치로 만난 윤석열과 한비자’를 14편으로 나누어 싣는다. 윤석열 검찰독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편집자]

신불해의 술(術)의 개념과 의미

군주가 아무리 강력한 법을 시행한다고 해도 술(術)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군주의 관료 통제술을 제신술(制臣術) 혹은 치신술(治臣術)이라 하는데, 한비자는 신불해(申不害, B.C.440~337)의 술(術)을 수용한다. 술과 법의 관계에 대해 한비자는, “군주에게 술이 없으면 윗자리에 앉은 채 이목이 가리게 되고, 신하에게 법이 없으면 아래에서 어지러워진다. 이는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모두 제왕이 갖춰야 할 도구이다”라고 보고 있다(한비자 정법 43:2).

한비자는 제신술을 관료제도의 운영 원리로 간주하고, 술의 두 가지 원칙으로 정명책실(正名責實)과 정인무위(靜因無爲)룰 제시한다. 전자는, 이름을 반듯하게 하고 책임을 뚜렷하게 하는 것을, 후자는 군주는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신하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제신술은 위 두 가지 원칙을 활용하여 군주가 자신의 속마음을 흉중에 깊이 감추어둔 채 수시로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발휘하여 신하를 꼼짝 못하게 통제하는 기술로 군주의 관료통어술(官僚統御術)이라고 할 수 있다. 한비자가 보기에 술은 군주가 신하의 능력에 따라 관직을 주고, 건의를 토대로 실적을 추궁하고, 신하의 생사여탈권을 쥔 채 그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군주가 관료의 생살권을 확고히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게 한비자의 생각이다.”(한비자 정법 43:2) 한비자가 제시하는 술의 기본바탕에는 사람의 본성에 대한 불신과 견제하는 심리가 깔려 있다. 그는 말한다.

“사람들은 옛 법과 이전의 명을 쫓는 게 이로우면 그것을 따랐고, 새 법과 나중의 명을 좇는 게 이로우면 그것을 따랐다. 이런 상황에서 신불해가 비록 10배의 노력을 기울여 한소후로 하여금 술치술(術治術)를 쓰게 했지만 간신들은 여전히 궤변을 늘어놓으며 속임수를 썼다.”(한비자 정법 43:4)

한비자는 군주가 신하를 다스릴 때 사용해야 하는 7가지 술책과 살펴봐야 할 6가지 기미, 즉 7술6미(7術6微)를 제신술로 제시하였다(한비자 내저설 상 30:1). 이를 도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또한 한비자는 위의 7술6미를 이용하여 군주는 신하를 다스릴 수 있는 세 가지 치신술(3治)를 능숙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비자의 치신술(3治)

■절간(絶姦) : 권세로도 변화시킬 수 없는 자가 있으면 제거함

■독단(獨斷) : 신하들에게 호오(好惡)를 드러내지 않고 일을 처리함

■인통(忍痛) :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법술을 시행할 때 고통(힘든 상황)을 잘 참아야 함

술에 대한 한비자의 생각의 요체는 군주는 매사에 희로애락을 감추고 냉철하게 청정무위(淸淨無爲)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청나라 말기 이종오(李宗吾)가 쓴 『후흑학(厚黑學)』을 연상케 한다. 후흑은 두꺼운 얼굴을 뜻하는 ‘면후(面厚)’와 시커먼 속마음을 뜻하는 ‘심흑(心黑)’을 줄인 말이다(신동준, 『후흑학』, 위즈덤하우스, 2014, 10쪽). 이에 상반되는 말이 얼굴이 깨끗하고 마음이 솔직담백함을 뜻하는 박백(薄白)이다. 박백은 인의(仁義)를 지향하는 유가의 도덕적 인물인 군자라면, 후흑은 자신의 본심은 숨긴 채 뻔뻔한 얼굴과 음흉한 마음으로 난세를 다스리고 평정한 패자(霸者)라고 할 수 있다. 이종오는 후흑구국(厚黑救國)의 일념으로 난세를 다스리는 권력자는 물론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처세술로 후흑학이 필요하다고 본다. 승리의 역사를 만든 인물은 유약한 박백이 아니라 냉혹하고 비인간적인 후흑이라는 게 그가 주장하는 핵심이다. 이 점에서 이종오의 후흑은 한비자의 술치를 계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신도의 세(勢)의 개념과 의미

한비자는 군주의 위세, 즉 권세의 중요성을 강조한 신도(愼到, B.C.350~275)의 세(勢)를 수용하였다. 군주가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근본 비결은 도덕성이 아니라 존엄한 위세라는 것이다. 신도는 유가의 신치(身治) 또는 인치(人治)에는 두 가지 폐단이 있다고 본다.

첫째, 신치는 일정한 표준이 없이 마음대로 행해지는 폐단이다. 신도는 “군주된 사람이 법을 버리고 신치를 한다면 상을 주고 형벌을 가하는 것이 군주의 마음으로부터 나오게 된다”고 비판한다(『신자(愼子)』 군인(君人)).

둘째, 신치는 국가의 정치요체가 한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게 만드는 폐단이 있다(『신자(愼子)』 위덕(威德)). 이와 같은 폐단은, “법에 의해 일을 처리하는 것만”으로 없앨 수 있고, 또한 그것이 “국가의 큰 도이다”라고 주장하였다(『신자(愼子)』 일문(佚文)).

이러한 폐단을 없애기 위해 신도는 귀세(貴勢)와 상법귀공론(尙法貴公論)에 입각하여 정치를 해야 한다고 보았다. 귀세란 권력, 법률, 의례, 정책 등에서 권력, 즉 세(勢)를 가장 높은 위치에 두는 것이고, 상법귀공이란 법을 숭상하고 공공의 것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뜻이다. 신도의 주장은 세를 강조하면서도 술과 법을 숭상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결국 군주가 통치를 하려면 술과 법만으로는 부족하고 세를 가져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비자는 신도의 세(勢)이론을 적극 수용하여 군주가 가지는 권세의 중요성을 아래와 같이 강조한다.

“하늘을 나는 용은 구름을 타고, 하늘을 오르려는 뱀은 안개 속에 논다.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개이면 용과 뱀은 지렁이나 개미와 다를 바 없이 땅에 떨어지고 만다. 울타리가 구름과 안개를 잃었기 때문이다. 현자가 불초한 자에게 몸을 굽히는 것은 세도가 가볍고 지위가 낮기 때문이고, 불초한 자가 현자를 굴복시키는 것은 세도가 무겁고 지위가 높기 때문이다. 요임금도 신분이 낮은 필부였다면 단 세 사람조차 능히 다스릴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라 걸도 천자의 자리에 있었던 덕분에 능히 천하를 어지럽힐 수 있었다. 나는 이로써 권세와 지위는 믿을 수 있어도 재능과 지혜는 부러워할 게 못 된다는 것을 알았다. 무릇 활의 힘은 약한데도 화살이 높이 올라가는 것은 바람의 힘을 탔기 때문이고, 당사자는 불초한데도 그 명이 잘 시행되는 것은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기 때문이다. 요임금이 노비의 지위에 있었다면 아무리 가르치려 해도 백성들 가운데 그 누구도 그의 가르침을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보위에 올라 남면(南面)한 채 천하를 호령했기에 비로소 명하면 곧바로 행해지고, 금하면 곧바로 그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보건대 재능과 지혜로는 일반 백성을 굴복시킬 수 없으나 권세와 지위는 현자까지도 능히 굴복시킬 수 있다.”(한비자 난세 40:1)

그렇다면 신도의 세(勢)를 현실 정치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한비자는 군주가 권세 또는 위세를 이용할 수 있는 경우를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첫째, 권세(權勢)는 용군(庸君)을 위한 것이다. 요순 및 걸주와 같은 인물은 천 년 만에 한 번 나올 뿐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발꿈치를 좇는 것처럼 잇따라 나오는 게 아니다. 세상에는 통상 중간 수준의 군주가 연이어 나온다. 한비자가 말하고자 하는 권세는 바로 이런 중간 수준의 군주인 용군을 위한 것이다. 용군은 위로는 요순과 같은 성군에 못 미치고, 아래로는 걸주와 같은 폭군에 이르지 않은 군주를 지칭한다. 용군이 법을 쥐고 권세에 의지하는 이른바 포법처세(抱法處勢)를 행하면 나라가 잘 다스려진다. 그러나 법을 어기고 권세를 버리는 이른바 배법거세(背法去勢)를 행하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한비자 난세 40:6)

둘째, 권세는 엄격한 신상필벌을 바탕으로 포법처세를 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에 대해 한비자는 말한다. “무릇 굽은 나무를 바로 잡는 도지개와 길이와 부피를 헤아리는 척도를 버리면 설령 해중(奚仲) 같은 명장에게 수레를 만들게 할지라도 바퀴 하나 만들지 못할 것이다. 상으로 장려하고 벌로 억제하지 않으면서 ‘포법처세’ 대신 ‘배법거세’를 행하면 설령 요순과 같은 성군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사람들을 설득할지라도 세 집조차 다스리지 못할 것이다.”(한비자 난세 40:6)

셋째, 권세는 권병(權柄)을 행사하기 위한 기반이다. 군주는 권력을 행사하는 권한인 권병을 손에 움켜쥐고 권세를 배경으로 삼는다. 그래야 금령을 차질 없이 집행해 신하의 사악한 짓을 제지할 수 있다. 권병은 사람의 생살을 좌우하는 직권이고, 권세는 뭇사람을 제압하는 바탕이다(한비자 팔경 48:1).

넷째, 위세는 군주의 조아(爪牙)이다. 조아란 발톱과 어금니를 말한다. 무릇 말이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르고 수레를 끌면서 먼 길을 갈 수 있는 것은 근력(筋力) 덕분이다. 만승 대국의 군주와 천승 소국의 군주가 천하를 제복(制服)하고 명을 좇지 않는 제후를 토벌할 수 있는 것은 위세 덕분이다. 위세는 군주의 ‘근력’이다. 지금 대신이 위엄을 떨치고, 좌우측근이 권세를 멋대로 휘두르는 것은 군주가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힘을 잃고도 나라를 유지한 군주는 1천 명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없다. 범과 표범이 능히 사람을 이기고 백수의 왕으로 군림하는 것은 조아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호표조아(虎豹爪牙)라 한다. 만일 범과 표범이 조아를 잃으면 사람에게 제압당한다. 위세는 군주의 조아다. 군주가 조아를 잃으면 발톱과 어금니를 잃은 범과 표범의 처지가 되고 만다(한비자 인주 52:1).

이에 대해 한비자는,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수단으로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 이익, 둘째 위세, 셋째 명분이라고 말한다. 이 세 가지는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무릇 포상을 통해 이익을 안겨주면 백성의 마음을 얻게 되고, 형벌을 통해 위세를 행사하면 법령을 차질 없이 시행하게 되고, 법률 규정을 통해 명분을 쥐면 상하 모두 이를 기준으로 삼게 된다. 한비자는 말한다.

“이 세 가지 수단이 아니면 설령 다른 수단이 있을지라도 그리 긴요한 게 아니다.”(한비자 궤사 45:1)

위정자는 권력을 향해 불나방처럼 몰려드는 사람들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 세 가지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으니 한비자의 이 말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 틀리지 않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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