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증책임 누구에게 있냐?’가 관건
인체 안전성 입증도 어렵지만, 유해 입증도 어려워
방류 결정나면 입증책임 넘어와 오염수 못 막아

1.

‘입증책임이 누구에게 있냐’에 따라 재판결과가 크게 좌우된다.

원고는 주장(본증)을 통해 법관이 확신을 갖게 하며, 피고는 부인(반증)으로서 법관의 확신을 흔든다. 만약 양자의 주장이 모두 일리가 있다면, 입증책임이 있는 원고가 패소한다.

1심에서 패소한 피고는 2심에서도 증거를 부인할 수 있지만, 이 경우 입증책임은 피고에게 있다. 이처럼 입증책임이 누구에게 있냐에 따라 똑같은 증거를 제시해도 판결은 뒤집어진다.

입증책임이 없는 쪽에선 상대의 주장에 대해 의혹 제기만 잘해도 승소할 수 있다는 뜻이다.

2.

후쿠시마 핵폐수의 안전성에 대한 입증책임은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에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을 비롯한 태평양 주변국은 일본의 검증 결과에 대한 의혹 제기만으로도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막을 수 있다.

설사 일본이 일리 있는 주장을 했더라도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일본은 결코 해양 방류를 결정할 수 없다.

특히 태평양에 방류한 방사능 오염수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검증이 거의 불가능하므로 한국을 비롯한 태평양 주변국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래서 지금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막는 문제는 땅 짚고 헤엄치기처럼 쉬운 일이다. 하지만 일단 방류가 시작되고 나면 양상은 완전히 역전된다.

방류 결정이 내려진 이후 안전성에 대한 입증책임은 일본이 아닌 한국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3.

한덕수 총리는 방사능 처리가 완료되면 그 오염수를 직접 마셔 보이겠다며 호기롭게 안전성을 장담했다. 여당은 국민적 불안과 야당의 의혹 제기를 괴담으로 치부해 버린다.

▲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3일 서울 가락동 수산시장을 방문해 동료 의원들과 회식하고 있다. ⓒ뉴시스
▲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3일 서울 가락동 수산시장을 방문해 동료 의원들과 회식하고 있다. ⓒ뉴시스

국민의힘은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수산업자를 돕기 위해 ‘횟집 회식’을 하면서 수산물 안전성을 강조한다. 지난 23일 한덕수 총리와 국민의힘 원내대표단이 횟집 만찬을 한 데 이어 26일엔 상임위별로도 횟집 회식을 진행했다.

물론 불안해하는 국민을 안심시키자는 차원의 캠페인이라는 것은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나서서 안전성을 강조할 필요까지 있을까. 오염수 방류의 안전성에 대한 입증책임은 엄연히 일본 정부에 있는데 말이다.

국민 불안 차원이라면 해양 방류를 저지하면 될 일이다. 일본이 해양 방류만 않으면 우리 국민이 불안할 이유도 없을 터.

문제는 해양 방류를 막을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데 있다. 만약 방류를 시작하면 그때는 막고 싶어도 막을 수 없게 된다. 방류와 동시에 입증책임이 한국 정부에 넘어오기 때문이다.

방사능 오염수가 인체에 안전하다는 것을 입증할 방법이 없는 것처럼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도 입증하기 어렵다. 핵 폐수의 피폭이 인체에 반응하기까지 많게는 10여 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때 가서 유해성이 입증돼도 이미 방류한 오염수를 주워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정부‧여당은 횟집 캠페인을 할 때가 아니고, 입증책임이 일본에 있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오염수 해양 방류 저지에 전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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