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5일 저녁 영등포역에서 플랜트건설노조 경인지부 간부 두 명과 만났다. 독서모임을 하는 조합원을 대상으로 마르크스 <자본론> 강의를 하는데, 관련해서 이것저것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적당한 식당에 자리를 잡아 술과 안주를 나누며 얘기를 주고받았다. 사회변혁을 위해 열심히 복무하는 동지들과 만나면 언제나 좋은 에너지를 받는다. 스스로 돌아보게 되고 좀 더 열심히 투쟁할 수 있는 결심을 다지게 되기 때문이다. 동지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진보 정당들의 낮은 지지율만 보면 실망하기 쉽지만, 사실 사회는 끊임없이 진보하고 있다는 것. 내 활동만 보아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진전이 있다.

사회주의 성향의 작가로 활동을 시작할 무렵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당시 어떤 전교조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내 강의를 들려주고 싶다며 초청 의사를 밝혔다. 강의 당일 학교에 갔더니 그 선생님이 결재 서류를 챙겨서 나를 데리고 교장실로 가는 것 아닌가. 사전에 결재를 안 받은 것이다. 미리 올리면 허락받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다. 바로 직전에 강사와 함께 가면 교장도 차마 거부할 수 없을 거라 예상했겠지. 교장에게 민망할 정도로 꾸지람을 들으면서도 꿋꿋하게 서류를 내미는데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서 영업용 미소를 띠고 넉살 좋게 한마디 거들었다.

“강의 진~짜 유익하고 재밌어요. 교장 선생님도 한번 같이 들어보세요.”

그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전국 여러 곳의 고등학교를 방문하며 예전보다 훨씬 급진적인 내용, 그러니까 아예 대놓고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강의한다. 전교조 교사만 나를 초청하는 것도 아니다. 경제학 고전 명저를 배운다는 취지로 일반고, 외국어고, 영재학교, 대안학교 등 다양한 학교에서 강의했다. 눈치 보며 에둘러서 강의하는 것도 아니고, 자본가가 취득하는 이윤이 궁극적으로는 노동자에 대한 착취에서 발생한다는 핵심 내용을 정확하게 숫자로 풀어 설명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극심한 빈부 격차가 능력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기실 은폐된 착취 구조에서 비롯됨을 깨달은 학생들은 일순간 충격을 받는다. 교실 안에는 묘한 침묵과 긴장이 흐른다. 주류 경제학만 접한 학생들은 강의를 듣고 전례 없는 지적 자극, 관점 전환, 의식 확장을 경험한다.

2020년에 청소년 도서인 ‘자본주의 할래? 사회주의 할래?’를 출간한 이후로는 고등학교에서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를 비교하는 강의도 종종 한다.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자본주의를 주장하는 나소유와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오평등이 팽팽하게 상호 토론하는 방식으로 서술했다. 결론을 도출하지 않고 서로의 주장을 선명하게 대립시킴으로써 독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기획한 것이다.

물론 나는 의심할 바 없이 명백한 사회주의자이지만 주입식 교육의 폐해에 가슴 깊은 곳에서 문제의식과 거부감을 가진 입장에서 저들의 방식을 답습하고 싶지 않았다. 원래 출판사는 사회주의에 대한 청소년 교양서를 써달라고 했다. 하지만 오히려 내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동등한 비중으로 다루자고 역제안했다. 심지어 담당 편집자가 초고를 읽고는 나소유의 의견이 다소 우세하게 느껴진다며 우려를 표명할 정도로 치열하게 자기 검열을 했다.

가혹할 정도로 기어를 중립에 박은 이유는 그것이 청소년 독자에게 취해야 할 저자로서의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사회주의 사상이 올바르다고 확신하더라도 그것을 남에게 강요하거나 억지로 주입하고 싶지는 않다. 그럴 권리도 없고 말이다. 게다가 양쪽의 의견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어느 쪽 편도 들지 않는 태도가 독자에게 더욱 큰 신뢰를 주지 않겠는가. 왜곡 없이 성실하게 전달하고 판단은 스스로가 고민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강의할 때도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니 학생들이 내가 자본주의 편인지 사회주의 편인지 알쏭달쏭하다며 어느 편이냐고 물을 정도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어떨까? 2022년 7월에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이 책을 주제 도서로 강의했다. 사실 강의라기보다는 질의응답이 이어지는 ‘저자와의 만남’ 성격이 강했는데 참여하는 학생들이 책을 미리 완독하고 사전에 토론까지 마쳤기 때문이다. 내용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았고 준비가 잘 되어 있었다.

강당을 좌우로 나눠서 한쪽은 자본주의 지지, 다른 쪽은 사회주의 지지로 나뉘어 앉았다. 놀랍게도 사회주의 지지와 자본주의 지지가 거의 동수였으며 솔직히 말하자면 사회주의 쪽이 살짝 더 많았다. 진행 편의를 위해서 양쪽에 비슷하게 강제 배정된 건지 물어봤는데 책을 읽은 후 자신의 선호도대로 선택한 결과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흥미로운 점은 책을 읽지 않고 행사를 단순히 방청만 한 학생들은 모두 자본주의 지지 쪽에 앉았다는 점이다. 책을 통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관한 왜곡 없는 정보를 접한 후 일어나는 학생들의 의식 변화 추이를 엿볼 수 있었다. 요즘 청소년들은 확실히 예전에 비해 사회주의에 대한 편견이 적다. 분단 구조로 인한 사상적 왜곡의 압력이 시나브로 약해지고 있다는 증거라 하겠다. 우리에게는 그저 접촉면이 부족할 뿐이다.

이번에 인문에세이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를 출간한 것도 접촉면을 넓히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5월 말부터 지금까지 시간만 나면 내내 네이버 블로그에 신간 홍보 댓글 다는 작업을 했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과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독서 리뷰가 있는 블로그를 일일이 방문해 댓글로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출간 소식을 전한 것이다. 내 책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을 읽은 독자라면,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은 독자라면 사회주의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싶었다. 일종의 타깃 광고다.

얼마 전 1차 홍보 목표를 완수했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출간일인 2008년에 작성된 리뷰까지,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출간일인 2022년 9월에 작성된 리뷰까지 시간 역순으로 검색해 들어가며 샅샅이 댓글을 달았다. 혹시나 블로그 운영하는 분들이 불편하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웠는데, 대부분 저자가 직접 발 벗고 나서서 홍보하는 것에 대해 짠하게 여기며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이미 나를 아는 분들의 경우는, 작가가 직접 댓글을 달았다고 무척 반가워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책을 썼지만 이렇게까지 홍보한 적은 없었다. 대중들 사이에 만연한 사회주의에 대한 왜곡과 오해를 풀고 싶은 마음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책을 한 사람이라도 더 읽을 수 있다면, 나쁜 짓 빼고 다 할 수 있다는 마음이다. 예전에 빌 포터라는 미국의 영업맨에 대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뇌성마비 장애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가가호호 방문하며 회사 최고의 매출을 기록한 인물인데, 그가 보여준 인내와 끈기가 무척 마음에 와닿았다. 사회주의에 진정으로 진심이라면, 최소한 빌 포터의 절반만큼이라도 인내와 끈기를 발휘해야 하지 않겠나.

너무 오랫동안 댓글 작업을 하다 보니 머리가 멍하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있었는데, 1차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컨디션이 한층 나아졌다. 이제 새로운 홍보 목표를 세워서 또 다시 빌 포터처럼 인터넷 가가호호 방문을 시도해야겠지. 내가 파는 것은 ‘사회주의’ 아닌가. 이렇게 소중한 것을 파는데, 어떻게 최선의 최선을 다해 팔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여전히 대학, 고등학교, 노동 조합, 사회 단체, 도서관, 그 어떤 곳이든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를 대중에게 전할 기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다. 접촉면을 넓히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유연해질 준비가 되어 있다. 이유는 하나다. 사회주의가 우리 사회에서 더 많은 공감대를 얻을수록 개인이 행복해지고 사회가 진보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의 저변이 양적으로 확대되면 어느 순간에 진보정치의 질적 도약이 일어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현재의 낮은 진보정당 지지율에 실망하지 않는 이유다.

플랜트건설노조 경인지부 간부들과 대화하다가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얘기가 나왔는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조합원 독서모임에서 단체구매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읽은 분들도 소감을 남기고 있듯이, 고등학생도 이해할 정도로 쉽고 명쾌하게 '사회주의'에 대해 풀어놓았다. 내가 사회주의자로 활동하면서 겪은 일들을 에세이로 버무려 놓아서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번 책을 잡으면 그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게 될 정도라는데, 이 책이 사회주의 대중화의 물꼬를 트기만을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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