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념일에 국가는 없었다
'제32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 후원 계획만 했을 뿐인데

▲1987년 6월 군부독재에 항거한 범국민적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6·10 민주항쟁’ 기념식이 명동성당에서 열렸다. 명동대성당은 1987년 6월 10일부터 5일간 독재 타도와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농성투쟁이 벌어졌던 곳으로 그 의미가 깊다. ⓒ뉴시스
▲1987년 6월 군부독재에 항거한 범국민적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6·10 민주항쟁’ 기념식이 명동성당에서 열렸다. 명동대성당은 1987년 6월 10일부터 5일간 독재 타도와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농성투쟁이 벌어졌던 곳으로 그 의미가 깊다. ⓒ뉴시스

국가기념일인 6.10민주항쟁 기념식을 주최한 행정안전부가 기념식에 불참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여당 대표 및 관계자 누구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 행사는 2007년 6·10민주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이후 행안부 주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민주화사업회) 주관으로 열려왔다. 하지만 이번 행사에서 처음으로 행안부가 불참하면서 ‘주최자 없는’ 국가기념일 행사가 되고 말았다.

이날 기념식에 민주화사업회 인사들 외에 별도 기념사도 없었다. 애초에는 한창섭 행안부 장관 직무대행(차관)이 참석해 기념사를 할 예정이었다. 지난해에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기념사를 했다.

윤석열 정권이 이처럼 기념식 불참을 결정한 이유는 기념식 주관 단체인 민주화사업회가 ‘윤석열 대통령 퇴진’ 구호를 내건 행사에 후원했기 때문이란다.

기념식 하루 전인 지난 9일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인 민주화사업회가 정부 예산을 받아 반정부 정치 행사를 후원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라며, “해당 행사를 후원한 과정뿐만 아니라 사업회가 추진한 사업 전반을 모두 들여다볼 것”이라고 했다. 행안부의 특별감사는 오는 12일 곧바로 착수할 것이라는 보도까지 나온다.

한편 민주화사업회 쪽은 애초 해당 단체에 후원을 심사할 당시에는 ‘정권 퇴진’ 등의 문구는 없었다며 9일 곧바로 해명문을 발표했다. 해명문을 통해 예산 지출을 않겠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행안부는 기념식 불참에 이어 특별감사를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행안부가 국가기념식 불참 사유로 제시한 민주화사업회의 후원 행사는 ‘제32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다.

▲제32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가 개최됐다. 시청 앞에 차려진 무대 배경은 열사들의 영정 사진으로 메워졌다. ⓒ김준
▲제32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가 개최됐다. 시청 앞에 차려진 무대 배경은 열사들의 영정 사진으로 메워졌다. ⓒ김준

6.10민주항쟁일을 맞아 진행한 이날 범국민추모제는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 과정에 목숨을 잃은 열사와 희생자 총 768명의 영정사진을 모시고 열사정신 계승을 다짐하는 자리였다. 범국민추모제는 올해로 32회째 이어져 온 전통 있는 사업이다.

애초에 범국민추모제가 불법도 아니며 6.10민주행쟁과 무관치 않은 사업이라는 뜻이다. 하물며 실제 지원조차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주최 측이 행사에 불참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은 공식 발표와는 다른 저의가 있다고 봐야 한다.

윤석열 정권이 이날 기념식 불참과 민주화사업회에 대한 특별감사는 ‘비영리 민간단체의 국고보조금 부정 사용 감시’ 명령과 관련 있다는 해석이 중론이다.

윤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단행되는 이 사업은 국고보조금을 빌미로 시민사회를 감시하고, 압수수색 등을 통해 단체 활동을 위축시키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아무리 그렇지만 ‘독재타도 민주쟁취’를 외치던 6.10민주항쟁 기념식에 불참한 이유가 ‘정권 퇴진 구호’ 때문이라니 이 무슨 웃지 못할 역사의 아이러니(모순)인가.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