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어떤 민주주의'라는 질문이 익숙하지 않을까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윤석열 대통령이 현충일 기념사에서 또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했다. 6.25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고까지 했다. 마치 세상에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밖에 없는 것처럼 윤 대통령은 유독 자유에 집착한다.

하지만, 6.25참전국 중에 자유민주주의를 계속 유지한 나라는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가 전부다. 나머지 영국, 네덜란드, 뉴질랜드 등 유럽 대부분 참전국은 사회민주주의를 넘나들었다. 튀르키예는 인민민주주의에 더 가깝다.

윤 대통령은 매번 자유민주주의가 마치 유일한 민주주의인 것처럼 고집하지만, 세상엔 여러 종류의 민주주의가 존재한다. 시대가 변하고, 집권당이 바뀌면 자연히 민주주의도 새롭게 거듭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인민민주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이기도 하고, 민주사회주의 정당이 사회민주주의 노선으로 변경하는 경우도 있다. 더구나 100년 세월 민주주의가 성장하면서 이미 여러 민주주의가 각이한 형태로 섞여버렸기 때문에 딱히 어떤 민주주의라고 정의하기조차 어려워졌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유민주주의를 입에 올리는 이유는 미국과 같은 체제를 추종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로 보인다.

민주주의란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정치 이념이다. 세계 모든 나라가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그 형태는 조금씩 다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등 다양하지만, 어떤 민주주의를 선택하느냐는 국민이 결정한다. 만약 선택권이 국민에 없다면 이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다.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로도 불리는 자유민주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에 대의 민주주의가 결합한 통치 체제를 말한다. 한마디로 사유재산을 절대시하는 자본주의 시장원리를 지키기 위한 정치 이념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다. 초기 서구에서 시작된 자유민주주의는 1980년대 들어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흡수되었다.

사회민주주의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의 출현 등으로 위기에 처한 자유민주주의를 구원하기 위해 등장한 일종의 아류 민주주의다. 자본주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소득 재분배, 복지 확대 등을 강조한다. 이 때문에 사회민주주의를 개량적 사회주의 이념으로도 부른다. 북유럽 국가에서 주로 채택했던 사회민주주의는 최근 유럽 전반에 퍼졌다.

인민민주주의와 민주사회주의

중국과 과거 동구처럼 반봉건사회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 국가들은 대체로 인민민주주의를 채택했다. 반봉건사회는 완전한 봉건사회도, 완전한 자본주의 사회도 아닌 중간 상태를 의미한다.

인민민주주의는 반봉건-부르주아 혁명의 소산인 부르주아 민주주의나 부르주아를 타도한 사회주의 혁명과 구분된다. 인민민주주의는 제국주의 침탈에 의한 식민지 또는 약소국에서 민족 독립을 최우선 과제로 노동자·농민이 일부 부르주아와의 연합을 통해 수립한 민주주의 이념이다.

민주사회주의는 다양한 정의가 있으나, 여기서는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회주의를 칭하는 개념으로 축소한다. 대표적인 민주사회주의 국가는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수립된 과거 소련을 들 수 있다. 사회민주주의와의 차이는 자본주의의 사적소유를 인정하지 않는 데 있다. 사회민주주의는 국가 개입을 통해 자본주의 병폐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만, 민주사회주의는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자유, 평등 및 연대의 민주적 가치와 양립할 수 없다고 본다.

어떤 민주주의?

국민은 어떤 민주주의가 자기 나라 자기 민족에게 맞는지 공론의 장을 만들고 숙의를 거쳐 선택하면 된다. 정당과 정부는 제 국민의 뜻에 따라 자기 나라 실정에 맞는 민주주의를 채택할 임무를 지닌다. 이 과정에 외압이나 물리적 폭력이 있어선 안 된다. 이런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독재국가이다.

대한민국은 어떤 민주주의가 가장 어울리나?

우리는 왜 이 질문에 익숙하지 않을까. 이 체제가 매우 만족스럽기 때문일까? 꼭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왜?

어쩌면 어떤 민주주의를 선택할 권한이 국민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경주마의 차안대처럼 자유민주주의만 보이도록 누군가 우리 국민에게 눈가리개를 씌운 것일까.

윤석열 정권은 오로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만을 신봉하며, 조금이라도 다른 주장을 하면 탄압하고 척결하기 바쁘다. 이래서는 국민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민주주의를 선택하기 힘들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가 검찰을 앞세운 독재 정권이라고 불리는지도 모른다.

어떤 민주주의냐에 따라 국민의 삶이 근본적으로 변한다는 사실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차안대를 벗어던지고 가까운 지인에게 한 번쯤 질문을 던져보자.

“당신은 어떤 민주주의를 원하시나요?”

그리고 이 질문에 자신의 대답도 준비해 보자. 체제 대결이 첨예한 요즘 대한민국에 어울리는 민주주의를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민주시민의 의무가 아닐까.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