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국 부채위기 상황
신흥국 부채위기의 양상
외채위기 주범 : 개도국 자신인가? 중국인가? 서구 금융자본인가?
피케티, 장하준 등 부채탕감 주장
디폴트를 선언하고, 달러에서 탈출하라

개도국 부채위기 상황

2020년 4월 90개국이 IMF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이후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한 최빈국, 개도국, 신흥국들이 급증하였다.

2020년 11월 잠비아가 아프리카 최초로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했다. 작년 4월에는 스리랑카가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뒤이어 가나가 12월 일부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2020년 이후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나라만 14개국이라고 했다. 말리, 튀니지, 이집트, 레바논, 터키, 파키스탄, 수리남, 엘살바도르, 아르헨티나 등 다수 국가가 채무불이행 위기에 빠졌다.

2022년 7월 8일(현지시간)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반정부 시위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
2022년 7월 8일(현지시간)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반정부 시위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

국제금융협회(IIF)는 신흥국 정부 부채가 2022년 9월을 기준으로 24조 5000억 달러(약 3경 1720조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지난 1월 “저소득 국가 중 15%가 채무초과 상태이고, 45%는 부채위기에 노출되어 있다”면서, “이중 25%가 디폴트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펜데믹 이전에 54%였던 신흥국 부채비율이 작년에 66%까지 치솟았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신흥국 국가부도 위험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신흥국은 2025년까지 매년 4000억 달러 이상의 달러 부채 만기가 돌아온다.

신흥국 부채위기의 양상

모든 금융위기의 중심에는 달러가 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 연준이 급격하게 금리를 올리자 가장 먼저 신흥국이 직격탄을 맞았다. 개도국, 신흥국들은 코로나 펜데믹이 터지자 재정도 부족하고, 부채도 높은 상태에서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터였다.

저금리 시대에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막대한 돈을 풀어 개도국 여기저기에 퍼져 나간 상태였다. 그러나 미국이 먼저 금리를 올리고 다른 선진국들도 덩달아 올리자, 이들 국가는 심각한 금융위기에 빠졌다.

자국 통화 가치가 폭락하고, 외채 이자가 급등했으며, 유례없는 자본이탈이 벌어졌다. 아르헨티나는 2018년 기준금리를 40%까지 올리고 올해 다시 97%까지 올렸지만 달러 유출을 막을 수 없었다. 적정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있었으나 금방 고갈되었다.

브라질 헤알화 역시 9%로 폭락했다. 작년에 신흥국 중 3분의 1이 기준금리를 10% 이상 올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파키스탄은 올 2월 기준금리를 20%까지 끌어올려 아시아 최고를 기록했으나 외국인들이 파키스탄 통화를 투매하면서 외환시장에서 발작이 일어났다.

제이피 모건은 국제 투자자들이 “(개도국 채권) 매도를 이처럼 서두르는 건 17년간 볼 수 없었던 현상”이라고 하였다. 스리랑카의 경우 ‘국민을 먹여 살리느냐, 외국 금융자본 국가에 이자와 원금을 갚느냐’하는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스리랑카 정부는 국민의 기아를 막는 쪽을 택하였다.

외채위기 주범 : 개도국 자신인가? 중국인가? 서구 금융자본인가?

서구 금융자본은 해당 개도국들이 외채위기의 일차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방만한 지출, 특권층의 부패, 정책의 실패 등등을 따진다. 그러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미 연준의 금리 인상이었다.

이들 국가는 대체로 달러로 돈을 빌린다. 달러 금리가 올라가면 채무국이 상환해야 할 빚의 부담도 그만큼 늘어난다. 아무리 자국의 금리를 올려도 달러 자본이 빠져나간다. 국가 채권을 발행해도 사 주지 않는다. 결국 채무불이행 사태에 빠지게 된다.

서구 금융자본은 다음으로 중국의 일대일로를 지목한다. 중국이 일대일로를 추진하면서 이들 개도국 인프라 건설에 과도하게 대출하여 ‘부채의 덫’을 놓았다는 것이다. G20은 개도국 부채 조정협상에서 집요하게 중국의 부채탕감, 부채유예를 주장하였다. 그런데 스리랑카 부채 구성을 세세하게 따져보면 스리랑카 부채위기를 유발한 주범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스리랑카 정부가 발표한 '국가 부채 개요'
스리랑카 정부가 발표한 '국가 부채 개요'

스리랑카 정부가 발표한 ‘외채 개요’ 자료에 따르면, 중국 차관은 약 33.88억 달러로 1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세계은행, 일본을 포함하여 다 서구 금융자본이 투자한 대출이다. 특히 47%를 차지하는 시장차입금은 블랙락, JP모간, 알리안츠, UBS은행, HSBC은행, 푸르덴셜 등 서구 금융자본의 부채이다.

채무조정 협상에서도 입장이 다르다.

중국은 작년 8월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FOCAC)에서 “2021년 말 상환 만기인 아프리카 7개국 무이자 대출 채무 23건을 탕감” 하기로 결정했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중국은 앞으로도 계속 융자, 투자, 원조 등 각종 방식으로 아프리카의 중대 인프라 건설 사업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올해 3월 스리랑카와 관련, 2022년과 2023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채무 상환을 2년간 유예해 주었다.

중국의 차관은 주로 일대일로와 관련한 공항, 항만 등 인프라에 대한 투자 성격이 크다. 따라서 부채상환이 연기되면, 중국이 운영하는 방식을 택한다. 중국은 이를 인수하더라도 투자수익이 나기보다는 추가 투자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의 일대일로 투자는 이자수익을 위한 것보다는 일대일로 전략관철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반면 서구 자본과 IMF 등은 채무관리방식이 다르다. 주로 빚을 내서 빚을 갚으라는 방식이다.

G7이 제시한 부채 해결책을 보면 우선 국제금융기관이 모여 특수목적 기금인 ‘회복 및 지속가능성 기금(RSF)’를 조성할 것을 권고한다. 그리고 이 자금을 채무국이 발행하는 새로운 거래가 가능한 채권인 ‘회복 및 지속가능성 채권(RSB)’에 대한 담보를 확보하는데 사용하도록 한다. 여기서 담보란 채무국인 개발도상국의 자원과 에너지 등 중요 국가 자산을 의미한다. 신규 채권의 평균 이자율은 7.5%로 고율이며, 기존 채권보다 더 긴 만기 30년을 권고한다.

서구 자본은 파리클럽(Paris Club·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을 중심으로 발족한 채권 국가 모임)을 결성하고 공동 채무 재조정을 협상한다. 워싱턴의 세계은행과 IMF, G20 재무부 장관 회의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1990년대 아시아 금융위기 때, 미국발 신자유주의 원칙을 구제금융 협상에서 들이밀었던 전력이 있는 집단이다.

주요 20개국(G20)의 재무장관들이 지난 7월 중순 인도네시아 발리에 모인 적이 있었다. 이때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주요 20개국(G20)이 신흥국과 개도국에 채무조정을 서두르지 않으면 심각한 경기 침체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그러나 G20 장관들은 개도국 부채에 관해 공동성명 하나 내지 않았다. 오히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관한 논의에만 집중하였다. 부채 조정이 연기되고 지지부진해지자 개도국 부채위기는 더 심각해졌다.

피케티, 장하준 등 부채탕감 주장

지난 2월 8일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등 182명의 경제학자들이 스리랑카의 부채탕감을 주장했다. 이 성명에는 인도 경제학자 자야티고시, 그리스의 야니스 바루파키스 전 재무장관, 한국인 출신 영국 경제학자 장하준 등이 참가했다.

이들은 스리랑카 부채탕감 협상을 거대 헤지펀드들이 방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구 채권자들이 “높은 할증 금리로 이득을 챙겼으니, 그 위험의 결과도 감수하라”면서 부채탕감 협상에 협조하라고 촉구했다. 이를 보도한 가디언은 “국제 민간 금융계가 스리랑카 외채 가운데 40%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데, 최근 국제 금리가 치솟으면서 이들이 거둬들이는 이자 수입은 이 나라가 외국에 지불하는 전체 이자의 50%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최빈국의 공공 외채 상환액은 2021년 500억 달러가 넘게 증가했다. 이는 최빈국 정부 수입의 11.3%를 차지한다. 대다수 개발도상국의 외채상환 비용은 자국민의 건강, 교육, 사회보호를 위해 지출하는 예산보다 많다.

디폴트를 선언하고, 달러에서 탈출하라

테드 스나이더 등 일부 경제학자는 스리랑카와 같은 부채위기에 빠진 나라들이 즉각 서구 금융자본의 부채에 대해서 디폴트하라고 권고한다. 그리고 차라리 중국 등에 필요한 자금을 빌리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달러를 대신하는 새로운 브릭스 기축통화가 가시화될 경우에는 이러한 주장이 더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금융위기가 확대되어, 최빈국, 개도국, 신흥국 등이 외환위기, 국가부도 사태에 휘말릴 경우, 이들 국가가 급진적으로 채무불이행, 탈달러를 선언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달러가치가 폭락하면 미국은 한국 정도 규모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하는 것이 달러가치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달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무역적자 상황이나 환율 상황을 볼 때 한국도 외환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경고가 나온다. 이럴 때 한국의 선택은 어떠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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