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7 회의가 보여준 것
대러 제재, 새로운 합의 없어
중국 견제 역시 새로운 내용 없어
살길 찾는 유럽, 힘에 부치는 미국

G7 정상회의에서 미국이 추구했던 중요한 목표는 두 개였다. 하나는 G7 국가들과 러시아에 대한 전면적인 경제 제재 합의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의 군사적, 경제적 위협에 맞서 G7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다. 즉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고사시키고, 중국을 정치·경제적으로 고립시키는 것이 미국의 목표였다.

그러나 G7 정상회의에서 채택한 6개의 합의서 어디에도 미국의 목표가 달성되었다고 평가할 대목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 G7 정상회담의 가장 상위의 합의서는 ‘히로시마 코뮈니케’이며, 그 하위 합의서로 ‘히로시마 핵 군축 비전’, ‘우크라이나 관련 성명’, ‘청정 에너지경제 실행 계획’, ‘경제 회복과 경제 안보 관련 성명’, ‘글로벌 식량 안보 회복을 위한 성명’ 등 5개가 있다.

▲ 히로시마에 모인 G7 정상들. 왼쪽부터 유럽의회 의장, 이탈리아 총리, 캐나다 총리, 프랑스 대통령, 일본 총리, 미국 대통령, 독일 총리, 영국 총리,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히로시마에 모인 G7 정상들. 왼쪽부터 유럽의회 의장, 이탈리아 총리, 캐나다 총리, 프랑스 대통령, 일본 총리, 미국 대통령, 독일 총리, 영국 총리,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중 러시아 관련 합의는 ‘우크라이나 관련 성명’, 중국 관련 합의는 ‘히로시마 코뮈니케’에 담겨 있다. ‘경제 회복과 경제 안보 관련 성명’에 중국이 등장할 것 같지만 ‘china’라는 단어는 검색조차 되지 않는다.

대러 제재, 새로운 합의 없어

이번 G7 정상회의에서 러시아에 대한 추가적인 경제 제재는 합의되지 않았다. G7 정상회의가 열리기 직전까지 “추가 대러 제재 부과”, “러시아에 대한 전방위 옥죄기” 등 미국발 기사가 쏟아졌으나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우크라이나 관련 G7 정상 성명”에 대러 제재를 뜻하는 ‘sanction’이라는 단어는 5번 등장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sanction’은 “2022년 2월 이후부터 G7은 일치단결해서 대러 제재를 부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대목에서 등장한다. 네 번째 ‘sanction’은 러시아 은행이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많은 수단을 강구하고 있으나 그 수단을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대목에서 등장한다. 네 번째 등장까지는 새로운 제재의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우리 언론에서 강력한 대러 제재가 합의되었다고 평가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 다섯 번째 ‘sanction’ 대목인데, 그것을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우리는 러시아의 침략과 관련하여 제재받은 개인과 단체의 자산을 찾고, 제지하고, 동결하고, 압수하고, 적절한 경우 압수 또는 몰수하기 위해 국내 프레임워크(domestic frameworks) 내에서 가능한 조치를 계속 취할 것이다."

기존의 제재 대상을 찾고, 제지하고, 동결하고, 압수하는 등 지금까지 마련된 제재를 빈틈없이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자국의 국내법적 틀 안에서‘라는 단서가 붙어있다. 결국 이번에 합의한 것은 새로운 제재가 아니다. 기존의 제재를 재확인하고 그것을 철저히 이행하겠다는 다짐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외신은 물론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강력한 대러 제재‘가 합의되었다는 보도가 많다. G7 합의서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거나 미국 관계자의 바람을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하다.

중국 견제 역시 새로운 내용 없어

중국에 대한 G7 정상의 합의 내용은 “중국과 건설적이고 안정된 관계를 건설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다음 문장은 중국에 “생물다양성 위기 등 국제 문제를 함께 해결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이 역시 중국 견제나 차단의 내용은 없다. 오히려 이 문장 다음에 “우리의 정책 접근 방식이 중국에 해를 끼치려는 것이 아니며 중국의 경제 발전을 방해하려는 것도 아니”라고 해명한다.

물론 “국제무역 시스템을 강화하여 우리 노동자와 기업들을 위한 공평한 경쟁의 장(level playing field)을 추구한다.”, “세계 경제를 왜곡하는 중국의 비시장 정책과 관행을 해결하고, 불법적인 기술 이전이나 데이터 공개와 같은 악의적 관행에 대응하고, 경제적 강압에 대한 회복력을 키울 것이다”와 같이 중국이 불편해할 대목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 정도는 지금까지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던 수사이다. 이번 회담에서 새롭게 등장한 표현이 아니다.

정치 군사 영역에서도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의 상황에 대한 우려”,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의 표현은 등장하지만, 이 역시 새로운 것은 아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광범위한 해양 영유권 주장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으며 이 지역에서의 군사화 활동에 반대한다”라는 내용 역시 오래된 레퍼토리이다. 지난해 6월 나토 정상회의에서 채택한 ‘나토 전략개념’의 “중국은 규칙 기반 질서를 파괴하는 체제 차원의 도전 국가”라는 표현보다 수위가 한참 낮아졌다.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 그리고 홍콩에서의 인권 문제 역시 원론적 문제 제기 수준에 그쳤다. 우크라이나 문제에서도 “영토 보전과 유엔 헌장의 원칙과 목적에 기반한 포괄적이고 정의롭고 항구적인 평화를 지지할 것을 중국에 장려한다”라는 정도의 수준이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중국과 단절한다는 어떤 합의도 이번 성명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미국의 목표는 중국 문제에서도 실현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G7 공동성명에 전례 없는 대중 공동 대응 방침 포함될 것”이라는 식의 언론 보도는 오보가 되어 버렸다.

살길 찾는 유럽, 힘에 부치는 미국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입장은 이미 미국과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었다.

유럽은 대러 제재가 부메랑이 되어 자국의 경제가 피폐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난 1년 동안 경험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적 행동을 비난하는 데서는 입장 차이 없이 단결되어 있지만, 러시아와의 경제 관계에 대해서는 미국과 유럽의 입장차이는 너무나 컸다. G7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대러 제재 강화 요청을 ‘완곡하게’ 거절했다. 미국은 유럽을 강제할 마땅한 수단이나 명분이 없었다.

중국에 대한 정책에서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더욱 첨예한 양상이다. 3기 시진핑 체제가 출범한 이후 독일과 프랑스 등 여러 유럽 국가가 중국을 방문했으며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모색하고 있었다. 유럽연합은 G7 회의가 열리기 전인 5월 12일(현지 시각) “중국과의 관계 조정은 필요하지만, 중국과 단절하는 것(디커플링, de-coupling)이 아닌 중국에 대한 위험을 완화하는 것(디리스킹, de-risking)이 필요하다”라는 대중 정책을 발표했다. 존 커비 미국 NSC 대변인은 “(G7 정상회의) 논의가 끝나면 모든 G7 정상이 중국이 제시하는 도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 공통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장담했지만, 그 소식을 들을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G7 유럽 국가들은 자기 살길 찾느라 바빴고, 미국은 그런 유럽 국가들을 설득하는 데 힘에 부치는 상황이다. 오히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공화당과의 정부 부채 협상 때문에 G7 정상회의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 로이터 등 상당수 미국 언론은 G7 정상회의에서 러시아 제재를 강화하고, 대중국 무역의존도를 죽이기로 합의했다는 '가짜 뉴스'를 보도했다.
▲ 로이터 등 상당수 미국 언론은 G7 정상회의에서 러시아 제재를 강화하고, 대중국 무역의존도를 죽이기로 합의했다는 '가짜 뉴스'를 보도했다.

우리 언론은 미국과 일본의 보도를 여과 없이 받아들여 ‘대러 제재와 대중 견제에서 새로운 많은 합의가 있었다’라는 식의 보도를 내놓지만, 실상 이번 G7 정상회의는 자기 살길 찾아 각자도생하는 유럽과 유럽 설득에 실패한 미국이 힘에 부쳐하는 모습이 확인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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