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위원회, 양대노총 배제의 의미
연금, 교육, 경제.. 온갖 영역서 노동 대표성, 국민 대표성 무시

최근 윤석열 정부는 각종 정부위원회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지우는 데 혈안이다. 위원회 구성에서 노동계의 몫을 해촉하거나 위촉을 거부하고 있다. 일명 ‘노동계 패싱’이다.

지난 3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민주노총 위원을 해촉한 데 이어, 이번 달 ‘건강보험 재정운영위원회’를 구성할 땐 양대노총이 추천한 위원을 배제했다.

최근 노동조합 회계장부 미제출 등을 빌미 삼아 노동 탄압을 이어가는 정부가, 정책을 논의·심의하는 과정에서 대놓고 노동계 목소리를 배제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인다.

▲ 23일 열린 상생임금위원회 토론회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기습시위 하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을 보고 지나치고 있다. ⓒ뉴시스
▲ 23일 열린 상생임금위원회 토론회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기습시위 하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을 보고 지나치고 있다. ⓒ뉴시스

‘건강보험’ 위원회, 양대노총 배제의 의미

건강보험 재정운영위원회의 양대노총 위원 추천 배제는 어떤 의미일까?

이 위원회는 매년 건강보험 진료·조제료 수가(가격)를 결정하고, 보험료 결손처리 등과 관련한 논의를 하는 기구다.

국민건강보험법은 위원회 구성에 대해 “1. 직장가입자를 대표하는 위원 10명, 2. 지역가입자를 대표하는 위원 10명, 3. 공익을 대표하는 위원 10명”으로 구성하고, 직장가입자 대표 10명을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에서 추천하는 각 5명”으로 구성하도록 했다. 건강보험 재정운영위원회는 보험 가입자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양대노총 위원 배제는 건강보험료를 내는 사람, 다시 말해 직장가입자들의 대표성을 지닌 양대노총(민주노총·한국노총)을 배제했다는 의미다. 양대노총 조합원 수를 합치면 약 250만 명에 육박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일 재정운영위원 추천 공문을 발송하면서, 민주노총·한국노총을 뺀 130여 개 개별 노조에만 보냈다. 그리고, 지난 15일 양대노총 없는 1차 회의를 진행했다.

건강보험 강화를 위해 싸워 온 양대노총을 배제하는 정부 행태를 두고 “건강보험 재정을 정부 방향에 맞게 주무르려는 의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 정부는 지난해 12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폐기를 선언했다. 역대 정부에선 없었던 일이다. ‘건강보험 재정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보장성은 낮추고 정부 지원은 축소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국민연금’ 위원회도 피해가지 않았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상황도 마찬가지. 지난 3월 말 민주노총 위원을 해촉했다. ‘기금운용위원회 운영 규정 개정안’에 항의했다는 이유다.

국민연금 가입자를 대표해 노동자, 사용자, 지역가입자가 각각 2명씩 전문가를 추천하도록 한 규정을 각각 1인으로 줄이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3명의 전문가를 임명하도록 바꾸는 것에 대한 항의였다.

민주노총 위원은 3일 만에 해촉됐다. 4월 말 임기 만료로 재위촉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민주노총 추천하는 위원은 이유 없이 거부되고 있는 상태다.

민주노총은 이를 두고 “복지부 장관과 정부가 국민연금 기금운용에 있어 경영계 쪽으로 쏠려 있다는 생각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같은 날 규정안 처리에 앞서 ‘수탁자 책임활동에 관한 지침’ 개정안 처리의 경우, 경영계가 반대해 1년이 넘도록 논의를 질질 끌어왔고, 당일에도 합의된 부분만 의결했기 때문이다. 반면, 양대노총이 반대한 ‘운영 규정 개정안’은 표결 처리를 강행해 통과시켰다.

국민연금 기금은 국가 재정이 아니라 ‘국민이 납부’한, ‘노후의 생계를 위한 자산’이다. 따라서 가입자의 목소리를 반영해 운영되어야 할 기금이다. 건강보험료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노동자, 이들이 가입된 양대노총의 대표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운영 규정 개정안에 대한 표결 처리 강행, 민주노총 위원 해촉 등 일련의 상황을 보면, “정권과 자본의 뜻에 따라 국민연금의 주주권 및 의결권 행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비판과 함께 “모든 국민이 경험했던 2015년 삼성물산 사태를 또다시 반복하는 거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배제’ 영역 가리지 않아

건강보험, 국민연금 관련 분야만이 아니다. 양대노총 배제는 교육, 경제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교육부 소관의 ‘국가자격정책심의위원회’에 노동계 몫을 추천했지만, 노동부는 명확한 이유 없이 이를 두 차례나 반려했다. 민주노총은 오랜 기간 자격정책심의회에서 활동해온 인사를 추천했다. 그러나 “총연맹 소속이 아닌 ‘전문가’를 추천하라는 것”이 표면적인 반려 이유였다.

최근 경제교육 정책을 수립하는 경제교육관리위원회 위원을 최종 임명하는 과정에서도 기획재정부는 한국노총 몫을 배제했다.

윤석열 정부는 전적은 이것만이 아니다.

지난해 대통령 직속기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서도 노동계 위원을 배제했다. 지난 2월엔 유아교육과 어린이집 보육 통합을 위한 민관 논의기구 ‘유보통합 추진위원회’에 민주노총 소속 위원이 위촉됐다가 돌연 최종명단에서 이름이 빠졌다.

사회복지사 처우개선위원회는 보건복지부가 민주노총에 위원 추천 요청 공문을 보냈음에도 결국 이유 없이 민주노총 위원은 배제됐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 해소와 제도개선, 공무직노동자 수당 및 임금기준 마련을 위해 국무총리 훈령으로 설치되었던 공무직위원회는 아예 없앴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는, 위원 임기 만료에 따라 위원회 구성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노동계 추천 위원을 빼거나, 위촉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정부 정책에 노동계 목소리를 배제하고 있다. 양대노총이 조합원만이 아닌 임금근로자를 비롯해 모든 일하는 사람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사실을 거부하는 행태다. 국민의 건강, 노후, 교육, 경제 등 영역을 가리지 않는다.

노동 대표성, 국민 대표성을 무시하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 배제, 노동 탄압은 이처럼 각양각색이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