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1년 여성 부문 결산

대선 전부터 이대남 이용, 위험한 도박

‘여성가족부 폐지’, 대선 직전 윤석열 후보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당시는 미투운동에 이어진 페미니즘 리부트(대중화) 효과에 여러 반발이 일던 때였다. 보수세력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프레임으로 젊은 남성들의 막연한 불만을 견인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대남(20대 남성)’이 그토록 자주 호명된 이유다.

여러 면에서 남성의 표심을 공략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윤석열 캠프에게 여성가족부(여가부)는 좋은 먹잇감으로 비쳤다. 정작 남성이 힘든 이유가 여성과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여가부라는 가상의 적을 세워둠으로써 남성들의 분노를 조종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별대립을 이용한 시도는 보기 좋게 성공했고, 윤석열은 20대 남성 약 60%의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직에 올랐다.

▲지난해 3월 '세계 여성의 날' 114주년. 성평등 운동회에 참가한 민주노총과 산하 여성단체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3월 '세계 여성의 날' 114주년. 성평등 운동회에 참가한 민주노총과 산하 여성단체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뉴시스

성평등 정책 개악

이 같은 기조에 맞춰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10월 여가부를 해체하는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발표했다. 골자는 여가부의 기능 중 ‘성평등’, ‘여성·아동권익증진’ 등을 보건복지부 아래로, ‘여성노동’을 고용노동부 아래로 이관하고 여성전담부처를 없앤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2022년 기준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31.5%로, OECD 국가 중 27년째 꼴찌다. 더불어 지난해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글로벌 성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146개국 중 ‘성 균등도’ 99위로 매번 하위권을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가부 폐지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여가부의 기능을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아래로 두면 여성 관련 입법과 집행이 단일창구로 불가능해져, 성평등 정책과 법은 총괄되지 않고 분산·축소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성별임금격차와 출산에 따른 경력단절, 육아휴직, 성폭력 등 여성문제에 대한 대책을 방기하는 결과를 낳는다.

윤 정부는 여가부가 종합적으로 관장해온 한부모가족 및 아동양육지원과 아이돌봄 서비스로 수많은 취약계층 여성들이 지원을 받아왔다는 것을 모른체하며, 이외에 성폭력 피해자, 경력단절 여성 등이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한 것이 여가부라는 사실을 덮고자 하는 것이다.

또, 여가부가 ‘남녀갈등’을 부추겨 왔다는 윤석열 정부의 주장과 달리, 압도적인 성별격차를 조정하고 ‘남녀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서가 여성가족부라는 점을 고려할 때, 윤 정부의 여성전담부처 폐지 시도는 여성인권을 과거로 돌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야당의 반대로 여가부 폐지는 일단 보류됐으나, 정부와 여당은 여가부 폐지안을 “추후 별도 논의”하겠다며 여가부의 역할을 축소시킬 여지를 남겨두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작년 7월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작년 7월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뉴시스

여성없는 성평등 정책...김현숙 장관은 들러리로

정부의 성평등 정책 퇴행은 지난 1월 발표된 여성가족부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지난 1, 2차 계획에서 ‘공공부문 여성 대표성 제고’로 표현되어왔던 정책은 ‘공공부문 성별 대표성 제고’로 명칭이 바뀌었다. 공공부문 여성 비율이 30%에 불과함에도 불구, '여성'을 전면화하길 포기한 것이다.

또한 2차 계획에서 ‘여성폭력 예방교육 실효성 강화’ 항목은 ‘폭력예방교육 실효성 제고’로, ‘여성폭력 근절’은 ‘폭력 피해 지원’으로 표현되며 흐려졌다.

이런 여성가족부의 수세적인 태도는 정부의 인선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작년 5월 국회 동의 없이 김현숙(당시 후보)을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임명한 바 있다. 그러나 김현숙 장관은 윤 정부의 여가부 폐지에 앞장설 만큼 여성인권과 여성가족부의 의의에 대한 인식이 없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각에서 김현숙 장관을 두고 ‘여가부 폐지 공약을 관철시키려는 여당의 들러리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현숙 장관은 작년 6월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여가부 폐지는 명확하다”며 윤정부의 여가부 폐지안에 동의하는 자세를 취했으며, 이후엔 “여가부가 폐지된다면 상당히 중요한 일을 한 장관으로 평가될 것”이라 자평했다.

윤 정부의 허수아비 인선으로 말미암아, 여가부는 성평등과 여성인권 신장을 위한 공무를 수행하기보다, 정부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급조된 정책에 대책 없이 호응하는 부서로 되고 있다.

‘비동의 강간죄’ 개정 의지도 부재

‘비동의 강간죄’ 개정 역시 난항을 겪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 발표 당시 강간죄의 성립요건을 ‘폭행 및 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할 것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법무부가 반대의사를 밝히자마자 해당 검토안을 철회했다.

김현숙 장관이 “(여가부가 폐지 되어도)특별히 아쉬울 게 없다”고 말했던 그대로다. 현재의 여가부는 윤 대통령의 정책 기조에 대립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현행 형법에서 강간죄는 ‘폭행과 협박에 따라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는 수준’에서 성립한다. 그러나 이는 성폭력 피해 현황에 맞지 않는 낡은 정의라는 평가를 받는다. 많은 경우 강간 피해자들은 당황하여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하며, 피해자의 반항을 무력하게 할만한 폭력 없이도 강간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에 여성단체들과 유엔 등의 국제사회는 강간죄 요건을 ‘자유로운 동의’가 없는 경우로 확장하여 개정할 것을 지속적으로 촉구해왔다. 이 같은 흐름에도 불구, 윤정부의 여성가족부는 법무부와 마찰을 빚지 않고자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이다.

올해 초 법무부는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에서 제기된 ‘성폭력 관련 법률 개정’에 모두 반대입장을 내놓았으며, 여성가족부는 이를 수용하는 모양새다.

거꾸로 가는 ‘성평등시계’, 다시 고쳐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1년간, 한국의 성평등 시계는 거침없이 거꾸로 흘렀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 호언한 윤석열의 주장과 달리, 성차별은 개인 너머 사회 자체에 구조화되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청년 남성을 공략하여 여가부 폐지를 논한 것은, 자신의 지지층을 다지기 위해 사회 내부의 분열을 조장하고 가상의 적을 만들어내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이런 시도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하고 위험한지는 히틀러가 유대인에게 행한 말살정책을 떠올려보면 된다. 히틀러는 권력을 잡고자 대공황 시기 독일인들의 막연한 분노를 유대인에게 향하게 했다. 결국 사회 하부의 약자들은 죽어 나갔고, 조종자 자신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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