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용보증재단 콜센터 노동자, “정리해고 철회, 직고용 협의체 요구”

봄비가 오락가락하는 짓궂은 봄날,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해야 했다. 사측과의 합의에 땅으로 내려왔지만 회사는 뒤통수를 때렸다. 그들이 선택한 건 무기한 전면파업과 집단 단식농성이다.

서울신용보증재단 콜센터 여성 노동자들(공공운수노조 더불어사는희망연대본부 서울신용보증재단고객센터지부)의 이야기다.

▲ 전면파업과 집단 단식농성을 시작한 서울신용보증재단 콜센터 노동자들. [사진 : 공공운수노조]
▲ 전면파업과 집단 단식농성을 시작한 서울신용보증재단 콜센터 노동자들. [사진 : 공공운수노조]

서울시 투자출연 기관인 서울신용보증재단에서 소기업, 소상공인 보증 지원 등의 업무를 맡던 고객센터(콜센터) 노동자들.

코로나 시기 업무 폭주에 시달렸다. 코로나로 어려움에 직면한 소상공인 응대 업무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가 종식되자 회사는 콜센터 노동자 3분의 1에 달하는 인원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지난달 28일부터 회사(재단) 본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이어가던 노동자들은, 농성 22일 차에 접어든 지난 18일 새벽 본사 정문 캐노피 올랐다. “너무나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 이대로 물러날 수 없고, 더는 물러날 곳도 없다”는 그들은 고공농성도 모자라 단식도 불사했다.

직고용 대신 ‘정리해고’ 통보

서울신용보증재단과 위탁업체인 MPC플러스는 지난 3월 31일, 인력감축 구조조정을 골자로 위수탁 변경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서엔 ‘사업장 이전, 업무환경 구축’의 내용이 담겼다.

업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원청의 도급비를 인상하는 결정이 아니라, 오히려 인원을 감축하고 사업예산 2억여 원을 삭감했다.

5월 재계약을 앞둔 시점에, 25명의 상담사 중 8명의 인원을 감축하고 풀 아웃소싱을 통해 콜센터를 이전하겠다는 것.

코로나 시기 소상공인 각종 지원사업이 추진될 때, 폭주하는 콜상담을 담당했던 노동자들을 이젠 소모품처럼 버리겠다 뜻이었다.

“원청 재단은 하청업체(MPC플러스)를 통해 목표응대율 달성만을 요구했습니다. 재단과 업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인 목표응대율 99.5%로 계약했음을 알게 됐고, 이를 이유로 업체는 우리 노동자들을 쥐어짜며, 목표에 미치지 못하면 업체가 페널티를 받는다며 연차휴가도 제약했습니다.”

이들은 정리해고 대상자가 아닌 서울시가 추진하는 ‘직접고용’의 당사자였다.

지난 2020년 서울시는 “SH공사, 서울교통공사 고객센터, 그리고 서울신용보증재단 고객센터를 민간위탁 운영하는 것이 부당하다”며 “기관별로 노사 및 전문가 협의기구를 구성해 직고용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020년 서울시에 통보한 출자·출연기관 세 곳 콜센터노동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른 지침이었다. 그러나 세 개 기관 중 유일하게 서울신용보증재단만 3년이 다 되도록 협의기구조차 구성하지 못한 실정이다.

재단은 “정규직 전환 협의기구는 구성하기 어렵다”, “콜량이 줄어 상담사 인원을 감축할 수밖에 없다”, “업체와의 계약 인원을 줄이는 것이지 해고하는 것이 아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 지난 18일 재단 본사 고공에 올라 농성했던 노동자들. [사진 :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 지난 18일 재단 본사 고공에 올라 농성했던 노동자들. [사진 :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합의하자마자 ‘뒤통수’

다행히 오래 지나지 않아 재단과의 면담 약속을 확답받고 고공농성을 해제했다. 지난 19일 재단과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의원과의 대화로 합의를 도출하기도 했다.

▲노-사-전문가 협의체는 한 달 이내 구성 ▲인력감축, 정규직 전환, 직고용, 근무 장소 등 농성 관련 모든 사안 노사전협의체에서 논의 ▲노사전협의체의 결론이 빠르게 나오지 않을 시 재단·용역업체·노조 간의 교섭테이블(간담회)을 신속히 마련 등의 내용이다.

그러나 재단은 바로 뒤통수를 때렸다. 재단은 “노동조합이 인력감축을 수용해야 노사전 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일방적으로 정리해고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다.

결국 콜센터 노동자들은 24일 무기한 전면파업을 선언하고, 집단 단식농성까지 시작했다.

이들은 ▲인력감축 계획 보류 및 재단-업체-노조가 인력감축 전제 없는 합리적 방안 마련 ▲서울신용보증재단 주철수 이사장 직접 면담 ▲오세훈 서울시장이 직접 나선 문제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해고는 살인이다. 여기서 나가면 죽음뿐이다”,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 “질 좋은 상담 서비스를 제공할 근무 환경을 마련하라”는 요구다.

‘코로나’라는 요인에 업무 폭증을 온몸으로 겪어온 콜센터 노동자들. 이들의 요구는 재단만을 향해 있지 않다. 민원이 폭증할 때만 단기고용으로 이를 해결하겠다는 서울시의 태도에 분노한다. “무책임하고 무모한 행정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비판의 목소리다.

▲ 비오는 봄 날, 고공농성장 앞에서 결의대회. [사진 : 노동과세계]
▲ 비오는 봄 날, 고공농성장 앞에서 결의대회. [사진 : 노동과세계]

콜센터노동자는 50만으로 추산되지만, 민간위탁, 외주화 등 열악한 고용구조, 간접고용으로 전체 콜센터노동자의 77%가 비정규직 신분이다. 대부분 여성이며 저임금에 열악한 노동환경에 내몰려있다.

이전 정부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정책을 추진했지만, 윤석열 정부는 되레 350개 공공기관에서 6,700여 명의 정원감축 계획을 발표했다. 그 대상 대부분이 정규직 전환정책으로 전환된 노동자, 자회사 노동자, 전환에서 제외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정규직 전환 속도는 더욱 더디다. 지자체가, 재단이 정부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공공부문이 이럴 진데, 서울시도 지침을 이행하기는커녕 재단의 이행만 바라보는 형국이다. 서울신용보증재단 콜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목숨을 건 투쟁에 나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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