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 의사를 직접 피력했다.

“대규모 민간인 공격, 학살, 심각한 전쟁법 위반 등 국제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면 인도적 지원이나 재정적 지원만 고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 4월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로이터와 인터뷰하고 있다. 인터뷰 기사는 다음 날 로이터 홈페이지에 게재되었다.
▲ 4월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로이터와 인터뷰하고 있다. 인터뷰 기사는 다음 날 로이터 홈페이지에 게재되었다.

4월 18일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에서 견지해 왔던 살상 무기 지원 불가 원칙을 폐기하여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직접 지원할 수 있다는 말이다. 도청 문건 유출 파문이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나온 발언이어서 파장은 시간이 갈수록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러시아와 헤어질 결심 했나?

러시아는 즉각적으로 반발했다. 해당 발언이 공개되자 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무기 공급의 시작은 작은 특정 단계의 전쟁 개입을 간접적으로 뜻한다”고 경고했고,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4월 20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모든 무기 공급은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반러 행동으로 간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을 교전국, 적대국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말이다.

교전국, 적대국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장은 러시아에 있는 우리 교포와 업체들에 추방령이 내려지고, 한-러 교역도 단절된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우리나라의 대러시아 수출입은 전년 대비 각각 36.6%, 14.7% 감소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비우호국으로 지정됐지만, 수출입이 각각 63.4%, 85.3%는 유지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북러 군사 협력이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10월 푸틴은 “한국이 폴란드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공급하기로 한 것 같은데, 만일 러시아가 똑같이 북한과 협력관계를 개선한다면(즉, 무기 공급을 한다면) 한국은 기분이 좋겠는가?"라고 말했다. 메드베데프는 윤석열 발언이 공개된 4월 19일 “우리가 그들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북한에 최신 무기를 제공한다면 한국 국민들이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다”라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적었다.

우리 정부 역시 지금까지 한러 관계를 극단적으로 악화시키는 조처를 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이번 발언은 러시아와 헤어질 결심을 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다. 왜 윤석열은 지금처럼 민감한 시점에 이런 발언을 했을까.

포탄 제공 한국 정부 논의에 사활적 관심을 보인 미국

유출된 도청 문건에서 확인된 김성한-이문희 대화에는 윤석열 발언의 배경을 짐작케 하는 몇 가지 단서가 포착된다.

첫째, 미국은 한국의 포탄 제공에 고도의 관심을 보였다. 미국이 도청한 날이 3월 1일이고, 미 국방부에 보고된 날도 3월 1일이다. 실시간 보고를 해야 할 정도로 미국은 한국의 포탄 제공 논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둘째, 미국은 포탄 제공 여부와 방법에 대해 한국정부에게서 최대한 빨리 확답을 듣고 싶어 했다. 김성한-이문희 대화에 임기훈 국방비서관이 등장한다. 임 비서관이 3월 2일까지 누군가에게 포탄 제공 여부를 확답하겠다는 것이다. 임 비서관이 확답 할 대상은 한국 국방부이거나 미국 국방부일 것이다. 설령 한국 국방부가 대상이라도 미국의 압박이 있었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어떤 수단 동원해서라도 포탄 제공하려는 김성한-이문희

이문희는 김성한에게 직접 지원 불가라는 정부 원칙을 변경해서라도 포탄 제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김성한에게 제안한다. 이번에 나온 윤석열 발언과 정확히 일치하는 대목이다.

이에 김성한은 정부 원칙을 변경하면 국내 정치적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이문희의 제안에 동의하지 않고, 미국이 아닌 폴란드를 통한 지원 여부를 제안한다.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포탄을 가급적 빨리 제공하려 했던 김성한-이문희의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판매 아닌 대여 방식으로 포탄 제공 계약 드러나

4월 12일 동아일보 단독 보도에 따르면 155mm 포탄 50만 발을 대여 형식으로 미국에 제공하는 내용의 계약을 3월에 체결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3월 1일 김성한-이문희 대화 이후의 일인 셈이다. 동아일보는 한미 정부 관계자들이 “(포탄) 지원 방식을 두고 고심을 거듭했다”라고 덧붙였다. 유출된 대화 문건과 거의 일치하는 대목이다.

김성한-이문희 대화 당시 33만 발이었던 포탄이 50만 발로 늘어난 것은 “미국의 요구에 성의 있게 응할 방법을 찾은 끝에 제공 물량을 대폭 늘리는 대신 대여 방식으로 제공하기로 했다”고 전해진다. 즉 미국이 요구하는 판매방식이 아닌 대여 방식을 취하는 대신, 포탄의 숫자를 늘려 미국의 요구에 성의를 다하려 했다는 것이다.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미국의 요구에 응하려고 했던 3월 1일 대화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포탄이 독일로 이동하는 정황이 포착되기도

4월 17일 MBC는 우리 정부가 포탄 수십만 발을 독일로 보낸 정황을 확인하는 단독 보도를 내보냈다. 15톤급 컨테이너가 실린 대형 화물차 20여 대가 충청도에 있는 우리 군의 탄약창 기지에서 물건을 싣고 경상남도 진해의 한 부두를 향했다는 것이다. 진해의 부두는 우리 군과 주한미군이 보유한 포탄이 반출·입되는 곳이다. 컨테이너 차량 기사는 3월 28일부터 운송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컨테이너에는 'EXPOSIVE 1.3C1’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폭발물이라는 것이다. 운전기사들은 자신들이 운반한 물건이 155mm 포탄이었다고 말한다.

MBC에 보도된 화물차 운전기사의 말.

“그냥 가서 싣고 오면 운송료를 많이 준대요. 군부대인데 거기 가서 155mm 포탄을 싣고 가는 위험물 관련 일거리다.”

미국에서 유출된 기밀 문건 중에는 한국산 포탄 334만 발을 독일로 이송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담겨 있는 것도 있었다. 포탄의 이동 경로는 그 문건 그대로였다. 화물차 기사들이 받은 서류를 보면, 이 포탄들은 독일 노르덴함으로 옮겨지는 것으로 적혀 있다. 유출된 기밀 문건과 정확히 일치한다.

▲ 4월 17일 MBC 보도 화면 캡쳐. 포탄의 이동 경로는 기밀 문건과 일치한다.
▲ 4월 17일 MBC 보도 화면 캡쳐. 포탄의 이동 경로는 기밀 문건과 일치한다.

독일로 옮겨진 포탄이 정확히 33만 발인지, 이 포탄이 3월 1일 김성한-이문희 대화록에 등장한 포탄인지 아니면 다른 포탄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또한 4월 12일 동아일보 보도에서 확인된 50만 발의 일부인지도 확실치 않다. 국방부는 ”(포탄 수출 여부에 대해선) 확인해 줄 수 없고, 특별히 확인해 줄 사안도 없다“는 입장을 냈을 뿐이다. 이 문제를 다룰 국회 국방위원회는 4월 6일 이후 회의가 열리지 않았다.

미국 요구 수용 총력전 펼치는 윤석열 정부

미국은 우크라이나 포탄 지원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국은 우리 정부에 전방위적인 압력을 가해 최대한 빠르게 포탄을 지원받으려 한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기 바쁘다. 이미 독일로 포탄을 이동시키고 있고, 판매가 아닌 지원 형식으로 더 많은 포탄을 제공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분쟁 지역 살상 무기 지원 불가라는 원칙 자체를 없애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는 미국의 정책을 집행하려 총력을 다하고 있다.

윤석열의 발언은 그 시작이 아닌 결론이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학살하고 있다”라는 윤석열 정부의 브리핑을 곧 듣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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