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차에만 몰아준 전기차 보조금
미국의 동맹수탈과 한국의 조공투자
배터리는 다행이라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21년 미시간주 디어본에 위치한 포드자동차 연구개발센터에서 F-150 픽업트럭 전기차를 시운전하며 언론 취재에 응하고 있다. 2021.05.19 Ⓒ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21년 미시간주 디어본에 위치한 포드자동차 연구개발센터에서 F-150 픽업트럭 전기차를 시운전하며 언론 취재에 응하고 있다. 2021.05.19 Ⓒ뉴시스

미국차에만 몰아준 전기차 보조금

미국 정부가 지난 17일(현지시각) 인플레이션 감축법(이하 IRA) 세부지침에 따른 보조금 지급대상 전기차 16종을 발표했다. 보조금 혜택은 모두 미국 차에 돌아갔다. 현대·기아차는 결국 배제되었다. 이에 현대차 주가도 전날 대비 1.59% 하락했다.

이번에 발표된 보조금 지급대상 전기차는 기존 40여 개에서 16개로 크게 줄었다. 테슬라 모델3, 쉐보레 볼트, 포드 머스탱, 링컨 코세어, 지프 그랜드 체로키 등 모두 미국 차종뿐이다.

이번 IRA 세부지침에서 보조급 지급 요건이 강화된 결과다. 이전에는 미국 내 조립생산 요건만 충족하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올해부터 배터리 생산요건을 충족하는 쪽으로 기준이 강화된 것.

IRA에 따라 북미에서 조립된 차라도 배터리 부품을 50% 이상 사용해야 3,750달러를 지급하고, 미국이나 FTA 국가에서 채굴·가공한 핵심 광물 40% 이상을 사용해야 3,750달러가 추가 지급된다.

아이오닉5, EV6 등 현대차와 기아차는 미국내 생산차가 아니기 때문에 보조금 지급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제네시스 GV70은 미국에서 현지 생산하지만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하기 때문에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독일 아우디나 BMW, 일본 닛산 리프 등은 북미생산 요건을 충족하여 그동안 보조금 지급대상이었다. 그러나 배터리 규정 때문에 역시 보조금 지급대상에서 추가로 제외됐다.

미국의 동맹수탈과 한국의 조공

이번 발표로 한가지는 분명해졌다. 바이든 행정부가 보조금 혜택을 요란하게 광고하며 미국내 투자유치정책을 폈지만, 결국 미국우선주의전략, 전기차 패권전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IRA는 철저한 동맹수탈법이다. 보조금을 받으려면 미국 내에서 조립 생산해야 하며, 중국산 원자재를 배제하는 불공정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배터리 요건이 앞으로 더 까다로워진다는 데 있다. 기준은 매년 10%씩 올라가 2027년에는 배터리 구성요소의 90%, 필수 광물의 80%까지 북미산을 사용해야 한다.

결국 미국이 ‘가치 동맹’을 떠드는 이유는 배터리, 전기차 생산을 미국 본토 중심으로 재구성하려는 제국의 전략에 복무하라는 명령이고, 중국과 결별하라는 강압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시장에서 보조금을 받아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이 요구 조건을 수용해야 하는데, 이것은 조공이지 투자가 아니다.

애초부터 보조금 지급에 차별적 조건을 달아 누구는 주고 누구는 주지 않는 식의 IRA는 법안 자체가 자유무역주의를 위반한 불공정행위이다. 특히 중국산을 사용하면 불이익을 주는 처사는 대중국 고립을 통한 패권 유지 전략이자 국제질서 파괴 행위이다.

14조 원에 달하는 대미투자를 약속했음에도 현대·기아차를 배제한 바이든 행정부의 이번 조치는 노골적인 배신행위이다. 아울러 한미FTA 위반 사항이기도 하다.

한미FTA에서는 양자 간 차별대우, 불이익 대우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은 이 조항을 완전히 무시하고 현대·기아차를 차별해 보조금 지급에서 배제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윤석열 정부는 미국에 찍소리 못 한다. 항의는커녕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전체적으로 IRA 가이던스에 대한 세액공제 대상이 축소된 것은 우리 자동차업계 입장에서 보면 미국 시장 내에서의 경쟁 측면에서도 크게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우리만이 아니라 경쟁국인 유럽, 일본도 배제되었으니 다행이라는 취지이다.

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린가. 미국 차는 1천만 원 이상 보조금을 받아 경쟁력을 높이는데, 우리는 유럽, 일본하고 같이 매를 맞아 다행이라니. 노예근성이 뼛속까지 차 있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말이다.

이렇게 정부가 미국에 굴종하는 모습을 보이니, 현대차는 ‘조지아 현지 공장 건립을 서두른다’, ‘리스 차량(예외적으로 보조금을 받을 수 있음)에 집중한다’, ‘제네시스 GV70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북미산으로 바꾼다’ 등 손해를 감수하며 미국의 입맛대로 끌려다니는 신세가 돼버렸다.

배터리는 다행이라고?

보조금 지급 차량을 발표하기 이전인 지난달 31일 미국 재무부는 IRA 전기차 세액공제 관련 세부지침을 발표하였다. 배터리 부품과 핵심 광물 관련 규정에서 양·음극판은 ‘부품’에 포함되지만, ‘구성물질’은 부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이를 두고 한국 정부와 업계의 요구를 미국이 받아들인 것이라며 자화자찬했다. 배터리 구성물질이 부품에 포함되지 않으면, 중국에서 수입한 리튬, 코발트 등으로 배터리를 만들어 미국에 수출해도 보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배터리 업체가 당장 생산공정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약간 숨통이 트인 것만은 사실이다. 이걸 가지고 대통령실이 나서 한국 배터리 업계의 독주가 가능하다는 식으로 호들갑을 떤 것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 부품은 2024년부터, 핵심 광물은 2025년부터 우려 국가에서 조달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이번에는 보조금 배제 대상이 되는 중국 등 ‘우려 국가’에 대한 정의와 규제 방식이 담기지 않았지만, 곧 중국이 포함될 예정이다. 그런데 한국은 배터리 핵심물질 9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것을 2년 만에 바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실 미국이 배터리 부품과 구성물질에 관한 조항을 단계적으로 규정한 이유는 한국을 고려한 때문이 아니라 미국 자체의 배터리 산업 육성에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미국이 자체 배터리 생태계를 구축한 이후에는 한국산 배터리 수입은 중단한다는 계산이다.

더구나 이날 발표한 배터리 관련 내용은 미국 시장에서 한국의 독주가 아니라 오히려 한국, 일본, 중국, 미국의 경쟁체제를 확립한 것이 본질이다.

미국 정부는 일본과 FTA를 체결하지 않았음에도 별도의 IRA 보조금 혜택 협정을 체결하였다. 원래 일본은 보조금 지급대상이 아니었지만, 이 협정으로 보조금 지급대상이 되는 특혜가 주어졌다.

캐서린 타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일본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무역 파트너 중 하나”로 언급했다. 테슬라 배터리 납품을 두고 한국업체와 경쟁하는 일본 파나소닉은 큰 수혜를 누렸다. 파나소닉은 배터리 산업의 원조 격에 해당하는 업체이다.

지난 2월 미국 포드사는 중국의 전기차 배터리 업체 CATL과 합작회사를 설립한 후 미시간주 마셜에 배터리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CATL은 배터리 생산 세계1위이자 세계전기차 시장의 1/3을 차지하는 초대형업체이다. CATL은 포드와의 합작사업에서 자본금은 한 푼도 내지 않고 기술만 제공하는데, 이는 IRA를 우회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동안 포드의 전기차 배터리 파트너는 한국의 ‘SK온’이었다. 조만간 포드 전기차 배터리는 CATL 제품으로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미국은 새로운 배터리 생태계구축에서 한국업체 대신 일본을 더 키우고 있다. 앞에서는 중국 배터리를 배제하면서 뒤로는 자기 필요에 따라 포드와 CATL의 합작을 추진한다. 미국의 최종 목표는 자체 배터리 업체의 육성이다.

이런 내막도 모르고 배터리 미국 수출이 겨우 1년 유예된 것에 깨춤을 춘 윤석열 정부. 이런 판국에 한미 정상회담까지 앞두고 있으니 우리 국민의 근심이 천근만근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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