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당한 전세금, 고스란히 빚으로 떠넘긴 피해자 대책
건설사 탐욕 채워준 미분양 주택 고가 매입

지난 2월 정부가 전세사기 종합대책을 내놓았지만,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이 잇따라 숨졌다. 정부의 피해 구제 대책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 만큼 절망적인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미분양 아파트로 인한 건설사의 손실에 대해서는 국민 세금을 퍼붓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재벌 건설사의 경영 손실은 정부가 나서 부리나케 메꿔주면서, 사기 피해자의 생사를 가르는 절박한 요청에는 생색만 낸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정부가 발표한 전세사기 피해지원 방안은 ▲가구당 최대 2억 원 대환대출(대출을 받아 이전의 대출금이나 연체금을 갚는 제도) 신설 ▲수도권 500가구 이상 긴급주거지원 확대 ▲전세사기 피해자가 피해 빌라를 낙찰받을 시 무주택자 요건 유지 등이었다.

여기에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절박하게 요구했던 ‘피해보증금 선 반환 후 구상권 청구’는 담겨있지 않았다.

사실 대환대출을 해 봤자 사기당한 전세금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는다. 이 때문에 정부가 전세금을 피해자에게 먼저 돌려주고(피해보증금 선 반환), 사기꾼을 잡은 후 정부가 그 돈을 돌려받는 방식(반환 후 구상권 청구)이 피해자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 대책이다.

만약 정부가 피해자들의 이런 요구만 들어줬어도 극단적 선택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최근 사망한 3명의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모두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 주택 2700채를 보유한 건축왕 남 모 씨(61)의 임차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남 씨는 현재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 돼 재판에 넘겨졌지만, 피해자들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언제 끝날지 모를 재판 결과만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처지다.

인천미추홀구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는 국회 토론회와 각종 정부 간담회에 참석해 “당장 살고 있는 집이 넘어가지 않도록 경매 절차만이라도 일시 중단해달라”고 절절한 심경을 토로해 왔다. 하지만 국토부와 금융위·법무부 관계자 모두 “경매를 중지할 법적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했다. 그사이 아까운 청춘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일이 커지고 나서야 정부는 '경매를 중단하겠다'(18일, 국토부장관)고 뒷북을 친다.

한편 미분양 아파트로 인한 건설사의 손실에 대해 정부는 과다한 지원을 신속하게 퍼붓는다.

건설사들은 미분양 아파트가 7만 5천여 가구로 늘어났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미분양이 해소되지 않으면 건설업계가 줄도산하게 되고, 이는 또 금융 분야에까지 파장을 미치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미분양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건설사의 호소에 정부의 반응은 매우 신속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른바 ‘1.3 미분양 대책’을 발표, 각종 부동산 규제를 한꺼번에 풀어버림으로써 부동산 투기를 부추겨 미분양 사태 해결을 시도했다.

‘1.3 미분양 대책’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주소와 주택소유 여부를 불문하고, 12억 초과주택까지 중도금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분양받은 후 1년만 지나면 분양권을 팔아 차익을 누리게 해 주겠다’는 것이다.

‘1.3 미분양 대책’에 따라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한 각종 규제인 ▲1주택 청약 당첨자 기존 주택 처분의무 ▲전매제한 수도권 10년 ▲12억 이상 주택 중도금 대출 허용 한도 등은 한꺼번에 허물어졌다.

급기야 윤석열 정부는 건설 원가보다 최대 2억 원 비싼 가격에 미분양 아파트를 사들이는 극약 처방까지 내렸다.

정부가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해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하려는 시도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기업이 비싼 가격에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 건설사들의 이익을 챙겨주고 집값 거품을 떠받치는 역할을 하니 어찌 분통을 터트리지 않을 수 있나.

비난 여론이 일자 정부는 주택매입가격 산정 방식을 준공 전(신축매입약정), 준공 후(준공주택매입)로 유형을 나눠 낮은 쪽 기준을 적용키로 했다. 그러나 이미 거품이 낄 대로 낀 주택 가격은 어떤 기준을 적용해도 건설 원가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요컨대 미분양 아파트를 건설 원가에 매입한 차액이면 전세사기 피해자를 구제하고도 남는다. 더구나, 미분양 사태는 건설사들이 분양가만 낮추면 대부분 해결될 사안이다. 이처럼 건설사의 탐욕을 채우는 데는 막대한 혈세를 아까워하지 않는 윤석열 정부, 그러나 영문도 모른 채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에는 왜 그토록 인색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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