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과 공존할 수 없는 정권”
농민의길 “농업포기 선언… 윤 정권 갈아엎는다”
쌀생산자협회도 ‘전면전’ 선포

윤석열 대통령이 결국 ‘양곡관리법’을 거부했다. 지난달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이 통과된 지 12일 만이다.

지난해 5월 취임 한 윤 대통령의 첫 번째 거부권이며, 2016년 5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이후 7년 만에 나온 거부권이다.

농민들은 즉시 반발했고, 윤석열 퇴진 투쟁의 ‘뇌관’이었던 양곡관리법이 퇴진 투쟁의 ‘불쏘시개’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시장 격리(의무매입)의 일정 요건이 충족되면 정부가 생산량의 일부를 의무적으로 사들이도록 해 쌀값 안정을 도모하는 법안이다.

법안 논의 과정에서 ‘3~5% 이상 초과생산, 5~8% 이상 가격 하락’으로 의무매입 요건이 완화되고, 정부 재량권이 추가되면서 농민들은 ‘누더기 법안’이라고 비판해 왔다. 그러나 이마저도 윤 대통령은 거부했다.

민생 법안에 ‘1호 거부권’이 행사되자 농민단체는 물론 민심의 분노가 터져 나왔다.

농업 포기 선언… “정권 갈아엎을 것”

“윤석열 정권이 있는 한 농민도, 국민도 살 수 없다.”

전농, 전여농 등 농민단체가 망라된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길’ 입장이다. 농민의길은 거부권 발표 즉시 “윤석열 정권을 갈아엎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1월,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시사하자 전농을 비롯한 농민단체들은 이미 “지금까지 정부의 농업정책을 규탄하는 수준에서 전면적인 윤석열 퇴진 투쟁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농민의길은 “시장격리는 쌀의 생산과 수급, 가격보장에 대한 정부의 최소한의 책임이다. 지난해 쌀값 폭락은 정부가 이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에 발생한 일”이라고 꼬집곤 “정부책임을 거부하고 ‘농업포기’를 선언한 윤 정권을 갈아엎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기준 쌀값은 1,937원이다. 29% 이상 ‘역대급’으로 폭락했다. 45년 만에 최대 폭락이다.

▲ 농민의길이 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생산비가 보장되는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농민의길이 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생산비가 보장되는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양옥희 전여농 회장은 “옆 나라 일본 가서 후쿠시마산 농산물 사주고, 방사능 오염수 다 받아주고, 오염된 물에 사는 생선도 사준다면서, 미국 무기는 아무리 비싸도 사준다면서, 정작 제 나라 국민이 피땀 흘려 지은 쌀은 못 사준다니 기가 찰 노릇”이라고 분개했다.

그러면서 “윤 정권은 이제 농민과 공존할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국민의 먹거리를 지키기 위해 타협은 없다.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쌀생산자협회는 거부권 행사 하루 전, 이미 윤석열 정부와의 전면전을 선포한 상태다.

협회는 “쌀을 폄하하고 농민을 죄인 취급하는 이 나라는 도대체 무엇으로 국민의 생명을 지키겠다고 하는 것인가?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그리곤 “거부권 행사 시 정부 심판에 나설 것이며, 전면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농민 선언… “자격없는 대통령을 거부한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이날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앞두고 “해외수입을 통해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거나 기만이다. 정부는, 쌀농사가 황폐화되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진보당은 대변인 논평에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농민들의 고통을 방치하고 농업을 말살시키겠다는 ‘반농민 선언’일 뿐”이라며 “농민 생존권과 식량주권을 포기한 대통령은 자격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을 단호히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4일 경기 용인시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 저온저장고에 보관된 벼 포대. [사진 : 뉴시스]
▲ 4일 경기 용인시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 저온저장고에 보관된 벼 포대. [사진 : 뉴시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다시 국회에서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국민의힘 반대로 양곡관리법 개정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윤 대통령 거부권 행사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국회 법안 통과 전인 1월, 윤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고, 법안 통과 후 열린 국무회의에선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과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윤 대통령에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 국무를 총괄하는 한덕수 총리도 지난 29일 거부권을 건의하며 ‘정해진 거부권’에 종지부를 찍었다.

거부권 행사 하루 전, 농민단체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의원들이 삭발까지 감행하며 저항했지만 ‘정해진 수순’으로 거부권이 발표됐다.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가 정해진 수순을 밟았듯, 농민들의 분노는 윤석열 퇴진 투쟁의 수순으로 나아가고 있다. 분노한 농심(農心)이 퇴진 투쟁의 쏘시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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