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속 뱅크런 : 어디까지?
저금리의 재앙 - 고금리의 충격 : 이제 시작
장단기 미스매칭의 공포 : 어디서 터질지 알 수가 없다
한치 앞을 못 보는 한국정부 : 반복되는 오류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던 국제금융시장에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이에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의 원인과 파장, 시사점 등에 대해 알아본다.

13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점에서 나온 밥이라는 남성이 기자들과 얘기하고 있다. 지난 25년간 SVB 고객이었다는 이 남성은 파산한 SVB에 돈을 찾으러 왔다고 밝혔다. 연방정부는 SVB 예금주들이 인출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SVB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3.03.14. @ 뉴시스
13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점에서 나온 밥이라는 남성이 기자들과 얘기하고 있다. 지난 25년간 SVB 고객이었다는 이 남성은 파산한 SVB에 돈을 찾으러 왔다고 밝혔다. 연방정부는 SVB 예금주들이 인출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SVB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3.03.14. @ 뉴시스

1. 광속 뱅크런 : 어디까지?

실리콘밸리은행은 자산 276조원, 미국내 은행 16위 규모로 스타트업에 특화된 상업은행이다.

1983년 창립한 SVB는 테크, 헬스케어, 바이오 등 스타트업 신생업체들이 벤처캐피탈(VC)의 펀딩을 받고 그 자금을 SVB에 예치해 왔다. 덕분에 SVB 자산규모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단 2년 만에 3배로 증가하였다. 막대한 예치자금을 대출해 줄 곳이 마땅치 않은 SVB는 수익창출에 문제가 발생하자 미 장기국채에 투자하였다.

그런데 미 연준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자 문제가 생겼다. 국채금리가 상승하면서 국채가격이 폭락하고, 테크산업이 침체에 빠지면서 스타트업체들이 예금인출을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SVB 예금잔액은 작년 한 해 동안만 160억 달러 감소하고, 올해 1, 2월에 80억 달러가 감소했다. SVB는 어쩔 수 없이 손실을 감수하고 국채를 팔아 현금을 확보하여 예금인출을 해주기 시작했는데, 채권손실액이 18억 달러에 달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약 23억 달러 증자를 시도했으나, 이 증자시도를 자본잠식의 위기로 감지한 예금자들이 마침내 뱅크런을 일으켰다. 지난 10일 은행 전체 예금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420억달러(약 55조원) 규모의 광속 뱅크런이 진행되었다. 컴퓨터기술을 이용한 금융기법이 이제는 초스피드 뱅크런의 역사를 쓴 것이다. 결국 SVB는 현금잔고가 마이너스 10억 달러로 떨어져 지급불능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캘리포니아 금융당국은 48시간 만에 SVB파산을 선고하고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법정 관리인으로 나섰다. 미 재무당국은 애초에 예금보험 한도(25만달러, 약 3억3천만원) 내의 예금은 돌려주겠으나 그 이상의 구제금융은 없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SVB의 예금계좌 중 보험 한도를 초과하는 예금계좌가 전체의 90%에 육박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스타트업 줄도산과 금융권 2차, 3차 뱅크런 우려가 커지자, 재무부와 연준, FDIC는 결국 예금자를 전면보호한다는 사실상의 구제금융조치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상황은 녹녹치 않다. SVB가 파산한 지 이틀 만에 뉴욕에 있는 자산 1100억 달러 규모의 시그니처은행이 파산했다. 시그니처 은행은 다수의 암호화폐기업에 서비스를 제공하던 은행이다.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14일 미국 은행 시스템에 대해 등급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조정했다. 무디스가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자이언스 뱅코프, 웨스턴 얼라이언스 뱅코프, 코메리카, UMB파이낸셜, 인트러스터 파이낸셜 등 지역은행 6곳에 대한 신용등급 하향을 검토한다고 발표한 지 하루만의 일이다.

대체로 전문가들은 미국 대형은행은 아직 건재하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특화은행들에 이어 일반 지방 중소은행들의 연쇄파산으로 이어질 경우, 전반 금융시스템 위기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는 여전히 걷히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14일 스위스크레딧은행(CS) 주가가 폭락했다. 사우디국립은행이 추가자금지원 중단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벌써 뱅크런 조짐이 보이고 파산을 경고하고 있다. 유럽 대형은행 주가도 폭락하고 있다. 스위스크렛은행 위기가 현실화되면 이것은 SVB와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문제가 된다. 올 것이 오고 있다는 분위기이다. 방귀가 잦으면 큰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2. 저금리의 재앙 - 고금리의 충격 : 이제 시작

SVB파산의 직접적인 원인은 미 연준의 급격한 금리인상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저금리 시대의 막대한 금융팽창에 있다. 2008년 금융공황 이후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하여 미 연준은 저금리와 무제한 양적완화를 통해 엄청난 달러를 살포하였다. 풍부해진 유동성은 성장산업인 테크산업, 벤처산업의 주가폭등과 과잉유동성을 공급하였고, 테크산업의 자금줄이었던 SVB와 같은 특화은행의 급성장을 가져왔다. 이같은 저금리와 과잉유동성을 발판으로 SVB는 안전자산인 미 장기국채에 투자함으로써 수익률을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미 연준이 고금리 정책으로 전환하자 미 장기국채 수익률이 급격히 떨어졌다. 미 연준이 급격한 금리인상을 추진한 것은 파월의장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오판도 작용했다. 처음에는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고 판단하고 긴축시기를 뒤로 미루다가 인플레이션이 현실화, 구조화되기 시작하자 너무 빠른 속도로 금리인상을 추진한 것이다. 미 장기국채금리가 4%선에 진입하면 반드시 한계기업에서 사고가 나는 것이 일반적 상례이다. 결국 저금리 시대의 수익원천이었던 장기채가 고금리시대에는 독으로 변하였다. 이미 장기국채 보유하고 있는 미국내 다수 은행들의 미실현 손실이 800조원(6200억 달러)에 달한다. 미실현 손실이란 미 국채가격 하락으로 인해 국채를 판매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손실액을 말한다. 이런 조건에서 다량의 미 장기국채를 보유하고 있던 SVB가 고금리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장기채의 손실을 떠안고 쓰러진 것이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SVB파산의 여파로 미 연준이 3월 21일 이틀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0.5% 빅스텝 금리인상을 접고 0.25% 베이비스텝으로 갈 것이고, 이후에는 어쩌면 금리를 인하할 지도 모른다고 진단한다. 이 말은 미 연준이 딜레마에 빠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리를 올리지 못하면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없고, 금리를 계속 올리거나 5%대를 유지하면, 고금리를 견디지 못하는 한계기업들의 파산이 이어져 경제위기, 금융위기가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미 연준의 본격적인 줄타기가 시작되는 국면으로 들어섰다. 파월 의장이 물러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3. 장단기 미스매칭의 공포 : 어디서 터질지 알 수가 없다

사실 SVB가 미 장기국채를 팔지 않고 만기까지 보유하고 있다면 어떠한 손실도 보지 않고, 안전한 수익을 가져갈 수 있었다. 문제는 만기 전에 손실을 보더라도 국채를 팔아야만 하는 상황이 도래했다는데 있다. 이것을 장단기 미스매칭이라고 한다. 장단기 미스매칭은 테크산업 생태계의 특성과 SVB 재무구조 양 측면에서 발생했다.

테크산업은 성장산업이라고 하여 장기투자가 기본이다. 따라서 실질적인 수익이 나기까지는 적자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저금리시대, 과잉유동성 시대에는 테크기업의 주가가 상승하고 벤처투자, 사모펀드가 몰려 잘 나가는 산업이었다. 그러나 고금리시대에는 경기가 침체하고 가장 치명타를 받는 산업이 또한 테크, 바이오 스타트 업종이다. 수익은 먼 미래에 있고, 당장은 현금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한다. 이같은 테크 산업의 장단기 미스매칭은 은행에 예치한 투자금을 인출하여 버티기에 나설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SVB 역시 테크분야 펀딩자금을 예금이라는 단기부채로 예치를 받아 장기성 채권에 집중투자하면서 장단기 미스매칭이 극대화된 경우이다. SVB는 벤처, 스타트업에 특화된 은행이기 때문에 대출상품이 취약하고 사업모델이 다변화되지 못한데다가 미 국채라는 특정자산에 집중하는 투자모델을 보였다. 게다가 채권 이자를 활용한 위기관리 상품투자도 소홀히 함으로써 테크기업들이 예금인출을 시작하자 급격하게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몰락한 것이다.

이같은 장단기 미스매칭의 공포는 한국에서 ‘레고랜드사태’나 ‘부동산 PF’를 상기시킨다. 레고랜드 사태는 단기자금을 부채로 조달하여 먼 미래에 수익이 나는 장기프로젝트에 투자하는 전형적인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다. 이같은 단기부채-장기수익 모델에서 일시적인 자금경색이 발생할 경우 곧바로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험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다수 부동산 PF는 건설사들이 증권사 등을 통해 단기자금인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 대출 등으로 공사비를 충당한 뒤 발주처에서 분양수익이 들어오면 현금으로 정산한다. 특히 지난 몇 년간 부동산 폭등에 힘입어 금융사들이 PF 규모를 크게 늘려왔다.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연체 잔액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1조1천465억원으로 1년 만에 2배 이상 늘었다. 그런데 최근 미분양이 증가하면서 주요 금융기관 연체율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국내 카드업계도 장단기 미스매칭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카드업계는 금리가 높아지자 수익율 제고를 위해 단기 자금 조달 규모를 확대했다. 그러나 비카드영업 자산을 확대하면서 만기구조가 장기화하여 미스매칭구조가 확대되고 있다. 특히 자동차 금융, 장기카드론 등 영업구조가 다양화되면서 자금의 만기구조가 복잡해져 자산‧부채종합관리(ALM)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97년 IMF 위기 역시 단기외채를 빌려와 장기대출로 수익을 얻던 종금사가 장단기 미스매칭으로 달러부족에 빠져 자금경색을 겪으면서 발생한 외환위기였다.

이같은 복잡하고 중층화된 장단기 미스매칭구조를 금융당국이 다 파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디서 터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부동산 PF처럼 일부 알고 있다하더라도 고금리 스트레스를 견뎌내지 못하는 한계금융기관의 파산을 피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올 것은 언제고 오고야 마는 것 아닐까.

4. 한치 앞을 못 보는 한국정부 : 반복되는 오류

최근 윤석열 정부는 국내 은행 과점체제를 해소한다면서 ‘특화은행’ 설립구상을 내놓았다. 그 대표적인 특화은행 모델이 실리콘밸리은행이다. 금융당국은 국내 거대은행의 이자수익급증과 성과금 잔치를 비판하며 5대 시중은행의 과점체계가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는 금산분리 완화를 통해 재벌의 진출을 허용하더라도 새로운 은행경쟁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급기야 지난 3일 ‘제1차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실무작업반 회의’에서 은행 업무 범위를 세분화한 특화은행 설립을 논의했다. 그 대표모델이 실리콘밸리은행이다  

일단 IMF 이후 세계적인 금융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메가뱅크(거대은행)’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노동자들이 그렇게 반대하는데도 시중은행들을 인수합병, 통폐합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는 과점이 문제라니 어이가 없다.

그렇다고 은행 경쟁체제 도입을 안한 것도 아니다. 카카오뱅크니, 케이뱅크니 하면서 무슨 ‘메기론’, ‘핀테크산업 발전론’을 이야기하며, 테크산업은 금산분리원칙을 적용하지 않는다면서 통신사업체에 인터넷 은행 설립을 허가해준 것이 몇 년 지나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최근 은행들 이자수익은 욕은 먹어야 하지만 고금리 현상으로 발생한 현상이라는 측면도 존재한다. 그런데 은행들의 이자 잔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바탕으로 윤석열 정부가 진짜 추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금산분리원칙을 허물고 재벌들의 은행업 진출의 길을 열자는 것이다. 그리고 검토한 것이 특화은행이었다. 그런데 그러자마자 1주일도 지나지 않아 그 모델인 SVB가 파산하였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기 직전에 한국 산업은행이 리만 브러더스 인수협상에 나섰던 것을 잊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 산업은행이 리만을 인수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똑같은 오류가 반복되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떤 법칙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민이 아니라 누군가의 이익에 집요하게 봉사한다는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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