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5월 1일 미국 정찰기 U-2가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가 소련군 S-75 미사일에 맞아 격추된다.

미국은 즉시 기상관측용 비행기를 소련이 격추했다며 항의 성명을 발표한다. 기체가 매우 얇고 내구성이 약한 U-2기의 특성상 조종사는 100% 죽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종사 게리 파워즈 중위는 격추 직전 낙하산 탈출에 성공해 소련에 인질로 잡혀있었다.

격추된 비행기가 ‘군사용 정찰기냐? 기상관측용이냐?’를 두고 미소 양국의 설전이 오가는 사이 미국은 예정된 미·소 정상회담을 취소해 버린다. 이에 소련은 게리 파워즈의 자백과 U-2정찰기 잔해를 세상에 공개함으로써 논란에 마침표를 찍는다.

당시 미국은 소련군의 미사일 능력이 21㎢ 상공의 고성능 U-2정찰기를 격추할 수 없다고 판단, 소련 영공을 수시로 넘나들며 안심하고 정찰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련의 핵시설 및 주요 군사기지를 계속 같은 방식으로 반복 비행함으로써 궤적이 소련 측에 노출되었고, 결국 격추되고 말았다.

이 사건은 흐루쇼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집권한 이후 한동안 풀어지던 냉전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사건으로 유명하다.

▲지난 4일 중국 풍선이 미군 스텔스 전투기 F-22에 격추되었다.(왼쪽) 1960년 5월 1일 미국 정찰기 U-2기가 소련군 미사일에 격추되었다.(오른쪽)
▲지난 4일 중국 풍선이 미군 스텔스 전투기 F-22에 격추되었다.(왼쪽) 1960년 5월 1일 미국 정찰기 U-2기가 소련군 미사일에 격추되었다.(오른쪽)

‘U-2기 사건’이 있은 지 62년의 세월이 흘러 국제관계에 새로운 냉전 질서가 들어섰다. 그리고 지난 4일 데자뷔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번엔 중국 풍선이 미군 최신예 스텔스전투기 F-22의 공대공미사일에 맞아 격추된 것이다.

중국 외교부는 “그 비행선이 기상 등 과학연구에 사용되는 것”이라며 ”서풍의 영향과 자체 통제 능력의 한계로 예정된 항로를 심각하게 벗어났다”고 주장한다. 반면 미 국무성은 그 풍선이 중국에서 날린 정찰풍선이며 민감한 군사기지, 특히 핵미사일 격납고 상공을 지나갔다고 주장한다.

이번에도 비행물체가 군사용 정찰풍선인지, 기상관측용인지가 쟁점이다. 다만 U-2기와 달리 조종사가 없고, 풍선이다 보니 잔해가 거의 남지 않아 진실 규명에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인공위성을 운영하는 중국이 2차대전 때나 사용하던 정찰풍선을 가지고 미군 기지를 정탐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특히 은밀함을 생명으로 하는 첩보 활동에 맨눈으로 쉽게 확인되는 버스 두 대 크기의 풍선을 사용했다고는 믿기 힘들다.

문제는 이번 사건으로 모처럼 해빙 무드에 접어들던 미‧중 관계가 또다시 냉각이 불가피해졌다는 데 있다. 당장 미 국무장관이 중국 방문을 취소했고, 미국 정가의 ‘중국 때리기’ 경쟁은 극에 달했다.

‘U-2기’와 ‘풍선’ 격추 사건 사이의 데자뷔는 정작 미국의 태도에서 나타난다. 설사 잘못이 제 쪽에 있어도 되레 상대를 악마화해 냉전을 조장하는 쪽은 늘 미국이다.

미국은 U-2기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반성은커녕 소련을 악마화하며 30년 더 냉전을 이어갔다. 북‧중‧러를 포위하는 신냉전 구축에 혈안이 된 지금의 미국이 풍선 격추 이후 중국에 무슨 짓을 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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