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정세해설] 국제정세
신냉전 동력 약화
탈미 확산
미국의 확전 선택

약화되는 신냉전 동력

2월 우크라이나 전쟁, 6월 나토 정상회의 등을 통해 미국의 신냉전 전략은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러시아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고, 군사적으로 무력시키며 경제적으로 피폐시키는 작업을 본격화했다. 또한 나토 정상회의를 통해 나토 동맹국들과 아시아 동맹국들을 하나로 묶어 사실상 ‘신냉전 글로벌 동맹’을 탄생시킴으로써 신냉전 전략 추진의 동력을 확보했다.

비록 7월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의 원유 증산 요구를 거부하고, 중러를 중심으로 하는 다극화 세력이 결속하는 반작용이 일어나긴 했지만 미국의 신냉전 전략은 순조롭게 추진되는 양상이었다. 많은 국가들이 대러제재에 동참하는 의사를 피력했고, 유럽과 아시아의 미국 동맹국들은 반러반중 전선으로 결속되었다.

그러나 9월부터 신냉전 동력이 약해지는 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원유 산유국들의 모임인 ‘오펙 플러스’가 원유 감산을 결정했다. 원유 증산으로 에너지 가격을 안정시켜 우크라이나 전쟁을 장기적으로 끌고가려는 미국의 구상에 반하는 결정이었다.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을 장악하여 러시아 영토로 편입시켰다. 미국을 대신하여 러시아와 싸우고 있던 우크라이나가 군사적으로 밀리고 있다는 징표가 확인된 것이다.

미국의 대러제재 전선에서도 큰 구멍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뉴욕타임즈 11월 기사에 따르면 대러제재 이후 러시아와의 무역이 미국, 영국, 한국, 독일, 스웨덴을 제외하고 모두 증가했다. 독일의 경우 감소율이 3%에 지나지 않았고, 일본은 13% 증가했다.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피폐화시키려는 전략은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진핑 3기 체제가 출범한 10월 이후 이같은 흐름은 더욱 분명해졌다. 독일의 숄츠 총리는 11월 초 중국을 방문하여 ‘독일-중국 협력’을 논의했다. 이 때 숄츠는 “세계는 다극화된 구도를 필요로 한다”, “독일은 진영 대결을 반대한다”면서 미국의 신냉전 전략에 어긋나는 발언을 했다. 프랑스 역시 12월 종전협상 관련하여 러시아의 안보 우려 해소를 주장하며 미국과 엇박자를 내고 있다. 나토의 균열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12월 중국 주석 시진핑의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은 미국의 달러패권체제에 타격을 가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과 수출국인 중국과 사우디가 석유 거래를 위안화로 결재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달러를 통한 원유 결재(페트로 달러)는 달러패권 체제의 기둥이었다. 페트로 위안이 본격화되면 달러패권은 사실상 종말을 고하게 된다.

미국의 신냉전 전략은 군사동맹이라는 정치군사적 동력, 페트로달러라는 경제적 동력,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반감이라는 사회문화적 동력이 작동해야만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있다. 독일이 중국과 관계를 강화하고 프랑스가 러시아 안보 우려 해소를 주장하는 현상, 사우디아라비아가 페트로 위안화를 추진하면서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현상은 신냉전 엔진의 정치군사적, 경제적 동력이 약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의 신냉전 전략이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고 있는 것이다. 

신냉전 동력이 상실되는 현상은 2023년에도 지속될 것이며, 이 동력을 회복하려는 미국의 군사주의, 일방주의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확산되는 탈미·다극화 경향

지난 해 4월 21일 미국 워싱턴 국제통화기금(IMF) 회의장에서 18개 회의 참가국 중 12개 나라의 재무장관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러시아 재무장관의 발언이 시작되자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항의성 단체행동을 한 것이다. 미국의 옐런 재무장관이 주도한 이벤트였다.

그러나 스페인, 인도, 인도네시아, 스위스, 브라질, 나이지리아 6개국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인도와 브라질은 브릭스 회원국이기 때문에 논외로 하더라도 인도네시아와 나이지리아는 경우가 다르다.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 경제 발전을 선도하고 있는 나라로서, 인도와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 경제 발전을 주도하고 있는 나라이며,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협력관계에 있다. 따라서 박차고 나간 12개국이 아니라 자리를 지킨 나라들을 주목해야 한다.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경제 신흥국들이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 포인트이다.

▲ 지난 해 12월 사우이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첫 '중국-아랍국가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 지난 해 12월 사우이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첫 '중국-아랍국가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중동과 아랍권 국가들의 탈미 현상이 본격화되었다. 12월 시진핑이 사우디를 방문하자 중동, 아랍 지역의 21개 국가 정상들이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로 모였다. 이들 국가들은 ‘제1회 중국-아랍국가 정상회의’, ‘제1회 중국-걸프협력회의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경제협력 강화 방안을 협의했다. 사우디가 중동과 아랍 지역의 탈미 행보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반미와 반패권, 다자주의를 지향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국제질서 주도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우선 브릭스가 확대일로에 있다. 브릭스 5개국가들은 지난 해 6월 22일 중국 베이징에서 14차 정상회의를 열고 ‘다자주의의 실천, 개방과 포용, 협력적 상생’의 내용이 담긴 ‘베이징 선언’을 채택했다. 인도네시아,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아프헨티나, 이란 등이 브릭스 가입을 신청을 했고, 알제리도 브릭스에 관심을 표명했다고 전해진다.

이 회의에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중남미 등 다양한 지역의 13개 국가들이 초청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제안한 ‘브릭스 플러스’가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역시 협력을 강화하면서 확대되고 있다. 지난 해 9월 열린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SCO 정상회의는 지역 안정, 경제발전, 문화 교류 등의 내용이 담긴 ‘사마르칸트 선언’을 채택했다. 이란이 정회원국이 되었고, 벨라루스의 정회원국 가입 절차가 시작되었다. 또한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대화 파트너 지위’를 부여받았다.

이들 국가들의 협력은 단지 경제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과 러시아 두 나라의 군사훈련은 말할 것도 없고 상하이협력기구 국가들 역시 이미 전부터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올해 2월엔 새로운 군사훈련이 예정되어 있다. 2월 17일부터 24일까지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해상군사훈련이 실시된다.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서 이탈하는 경향과 다극화를 지향하는 흐름은 2023년에 더욱 강화되고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확전 통한 탈출구 모색, 더욱 위태로워지는 세계

신냉전이 수렁에 빠지고 다극화 경향이 확산되자 미국은 2가지 방향에서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첫째, 우크라이나 전쟁을 격화시키는 것이다. 12월 22일 바이든은 젤렌스키를 워싱턴에 초대하여 추가 군사 지원을 약속했다. 젤렌스키는 대러 결사항전 의사를 피력했다. 그에 앞선 12월 초 우크라이나의 드론이 러시아 내륙에 위치한 랴잔, 옌겔스, 쿠르스크 등에 위치한 군사시설을 공격했다. 12월 말에도 옌겔스 지역으로 우크라이나의 드론이 접근했고 러시아군이 이를 격추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로까지 군사공격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 러시아 중서부 옌겔스 공군기지 활주로가 지난 해 12월 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 드론 공격을 받아 검게 그을려 있다.
▲ 러시아 중서부 옌겔스 공군기지 활주로가 지난 해 12월 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 드론 공격을 받아 검게 그을려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격화시켜 나토 균열을 막고 나토 대열을 재정비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공격은 미국의 승인이나 동의 없이 불가능하다. 바이든이 젤렌스키를 워싱턴에 초청한 것은 러시아 본토로의 군사 공격을 확대하는 계획과 그를 위한 군사적 지원을 논의하는 회담이었던 것이다.

둘째,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나토의 균열 양상을 경험한 미국은 아시아 동맹국들을 더욱 굳게 결속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11월 한미일 프놈펜 성명이 채택된 이유이다. 러시아, 중국, 북을 공동의 ‘적’으로 규정하고, 3국 군사공조 강화를 합의했다. 특히 북미사일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기로 합의했다. 한미일 MD 체계를 공식화하는 것이다.

프놈펜 성명 이후 한미일 3국의 군사 행보는 적극화되고 있다. 미국은 주한미군에 우주군사령부를 신설했고, 미의회조사국은 “북한이 주일미군기지를 공격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서 한미일 공동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은 ‘적기지 반격 능력’을 강화하는 방위관련 3대 문서를 개정함으로써 전수방위에서 벗어나 전쟁할 수 있는 국가를 향해 치닫고 있다. 방위력 강화 방침에 따라 2023년 1조 5천억엔에 달하는 미국 무기 금액을 방위성 예산에 반영했다. 한국은 인도태평양전략을 채택하여 미국 군사 편입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무인기 정국을 조성하여 대북 확전 의사를 불태우고 있다.

미국은 확전을 통해 흔들리고 동요하는 동맹국들의 진영을 재정비하려 할 것이며,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북에 대한 적대적 군사행동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이로 인해 세계는 지난 해보다 더 위험해질 것이며, 미국의 군사주의, 모험주의는 다극화 현상을 더욱 촉진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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