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노옥희] (2)노쌤과 마지막을 함께한 사람들
교육감 선거운동 너무 열심히 하지 말걸
교육청에서 제일 바쁜 우리 노쌤
노쌤 없는 울산은?

교사 노옥희, 전교조 지부장 노옥희, 교육위원 노옥희, 더불어숲 대표 노옥희, 교육감 노옥희 중 무엇이 젤 어울리는지 배우자 천창수 선생님께 물었다.

‘교육감 노옥희’라고 답한 천창수 선생님은 “교육감으로서 그런 놀라운 능력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교육감 노옥희는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으로 상징된다.

노쌤은 문해력(한글 읽는 능력)이 떨어지는 초등 저학년 학생을 위해 협력 강사제(보조 교사 배치)를 실시하는 등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문해력 문제는 배움의 출발선을 맞춰야 교육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노쌤의 교육 철학이 반영된 정책이다.

전교조 울산지부 사무실 이전이 1년 연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효문초등학교 분교의 전교 학생수가 2명으로 줄어 폐교 결정이 내려졌다. 이 자리에 지부 사무실을 이전하기로 했다. 그런데 노쌤이 돌연 사무실 이전을 1년 연기해 버렸다. 효문초 5학년 학생의 사연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 학생은 2년 전 다니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학생 수가 적은 효문초로 전학 왔고, 만약 폐교되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 사연을 들은 노쌤은 전교조 울산지부에 양해를 구했고, 이렇게 되어 사무실 이전이 1년 연기된 것.

문명숙 전교조 울산지부장은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해 흔쾌히 노쌤의 뜻을 따랐다”라고 그때를 회상한다.

노쌤이 2018년 교육감이 되기 전까지 울산 교육계는 ‘진보 1번지’ 답지 않게 다른 시도에 비해 낙후한 상태였다.

노쌤과 함께 4년 6개월을 교육감 비서실장으로 일한 조용식 선생님은 교육감 노옥희의 공적으로 우선 교육 비리 척결을 꼽았다.

노쌤은 어떤 종류의 청탁도 선물도 허용하지 않았다. 당시 울산 교육계는 숱한 비리 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고, 청탁과 뇌물이 만연해 울산교육청의 청렴도는 전국 꼴찌 수준이었다.

노쌤은 이번에도 말만이 아닌 솔선수범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교육감 앞으로 보내온 명절 선물을 모조리 돌려보낸 사례는 유명하다. 얼마나 철저했던지는 딸 천진주 씨를 통해 실감하게 된다.

▲노쌤이 교육위원 일때 엄마를 따라 집회에 나온 초등학생의 천진주 씨(가운데)
▲노쌤이 교육위원 일때 엄마를 따라 집회에 나온 초등학생의 천진주 씨(가운데)

노쌤이 교육위원 할 때였다. 추석 무렵 노쌤은 초등학생인 딸 진주 씨에게 집으로 택배가 오면 절대 받지 말고 그 자리에서 바로 돌려보내라고 했다. 하지만 어린 진주 씨는 기사님께 택배를 다시 가져가라는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노쌤은 가득 쌓인 선물을 밤늦도록 일일이 다시 포장해 돌려보냈다. 선물 대부분은 뜨개질한 목도리, 직접 담근 고추장 등 정성이 가득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노쌤은 예외 없이 이 모든 것을 돌려보냈다.

이야기를 들려주던 진주 씨는 목이 메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을 울먹이던 진주 씨는 “엄마가 교육감이면 울산의 교육 비리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되겠구나 생각했다.”며 엄마 노쌤을 떠올렸다.

노쌤의 제안으로 울산교육청은 ‘원스트라이크 아웃’(비리가 1건만 발견돼도 바로 징계), 시민감사관제 등을 운영해 청렴한 울산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더불어숲 활동가들이 2014년 송년행사를 하고 있다. 당시 대표는 노쌤(가운데) 사무국장은 현 대표인 이귀연 씨다.
▲더불어숲 활동가들이 2014년 송년행사를 하고 있다. 당시 대표는 노쌤(가운데) 사무국장은 현 대표인 이귀연 씨다.

전교조 울산지부는 그 전 교육감 때보다 교육감 면담 신청을 절반으로 줄였다. 노쌤이 전교조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노쌤이 직전까지 대표로 있던 더불어숲 이귀연 대표를 비롯한 활동가들은 교육감실에 민원은 고사하고 차 한잔 마시러 가지 않았다. 더불어숲이 노쌤을 교육감 만들어 득 보려고 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다.

조용식 비서실장은 노쌤이 교육감이 된 이듬해부터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 청렴도에서 1,2위 자리를 놓치지 않은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가난이 교육에서 차별로 나타나면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진 노쌤은 뒤쳐졌던 무상급식을 고등학교까지 실시해 빠른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고등학교 의무교육의 일환으로 교육비 면제에 이은 무상교복 실시는 학부모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친환경 무상급식을 전면화할 때 이야기다. 학교 급식에서 ‘고기 없는 월요일’을 지정했는데 노쌤은 이 결정에 앞서 먼저 고기를 끊었다.

교육감 수행비서였던 나연정 씨에게 “교육청 직원 회식 잡을 때 불편하지 않았나?”라고 물었다. 회식 때마다 노쌤은 “연정 씨 나 신경 쓰지 말고 고깃집 잡아요, 가서 다른 것 먹으면 되니까. 원래 나물 반찬 엄청 좋아 해요”라고 매번 먼저 말해 비서진들의 걱정을 들어주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1층 신발장 설치에서도 노쌤의 세심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2, 3층까지 맨발로 올라가는 동안 발이 젖게 된다. 그래서 교실이 2, 3층에 있는 학생도 1층에서 실내화를 갈아 신을 수 있게 한 것이다.

고교 자율학습 폐지 과정에서는 노쌤의 결단이 돋보인다. 조용식 비서실장은 “노쌤은 ‘강제’학습이 ‘자율’학습으로 불리는 언행 불일치를 가장 싫어했다”면서 단호한 결단으로 불합리를 시정하던 노쌤을 떠올렸다.

소통은 노쌤 힘의 원천

노쌤은 교육감으로 재직하면서 260여 개 울산 관내 학교를 한 곳도 빠뜨리지 않고 방문했다.

100회에 달한 시만감(시민과 만나는 교육감) 행사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만감’을 통해 접수된 사안은 노쌤이 직접 챙겼고, 그때마다 수학 선생님다운 치밀함이 발휘되었다.

▲1986년 울사협과 형제교회 때부터 노쌤과 늘 함께한 이현숙 환경운동연합 대표는 노쌤을 '언니'라고 부른다. '노쌤이 해직 당시 남편 천창수 선생님도 해고 된 터라 생활이 어려웠는데 그때 짬짬이 책을 팔아 생활비를 벌었다'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도 알려 주었다. 사진은 노쌤이 2006년 울산시장 후보로 출마했을 당시 시의원으로 활동하던 이현숙 대표를 만난 장면이다. 이현숙 대표는 노쌤의 유일한 약점은 등산을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1986년 울사협과 형제교회 때부터 노쌤과 늘 함께한 이현숙 환경운동연합 대표는 노쌤을 '언니'라고 부른다. '노쌤이 해직 당시 남편 천창수 선생님도 해고 된 터라 생활이 어려웠는데 그때 짬짬이 책을 팔아 생활비를 벌었다'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도 알려 주었다. 사진은 노쌤이 2006년 울산시장 후보로 출마했을 당시 시의원으로 활동하던 이현숙 대표를 만난 장면이다. 이현숙 대표는 노쌤의 유일한 약점은 등산을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현숙 환경운동연합 대표는 옛날 참교육학부모회에서 노쌤과 일할 때 붙여준 ‘빨간펜 선생님’이라는 별명이 교육감 노쌤에게 여전히 불리는 걸 보고 신기해했다.

노쌤은 교육청에서 나가는 공보물은 물론이고 발언문 하나하나까지 일일이 꼼꼼하게 챙겼다. 자료에 틀린 숫자, 잘못된 문구, 띄어쓰기에 이르기까지 빨간펜으로 수정해 다시 내려보내다 보니 ‘빨간펜 선생님’이란 별칭이 생긴 것.

교육감 소통비서관이던 황혜주 씨는 “노쌤의 꼼꼼함은 노쌤이 워낙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면서, “노쌤은 어떤 민원도 허투루 대해선 안 된다. 민원인이 여기(교육청) 오기까지 쉽지 않은 결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고 한다.

노쌤은 학부모들의 교육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 소통구조를 만들었다. 학부모 조례가 제정돼 학교에 ‘학부모실’이 생겼고, ‘든든한 부모 교육’도 정기적으로 실시했다.

▲상북중학교 학부모회 회장 김재은 씨가 학부모아카데미에 참석해 노옥희 교육감과 촬영했다.
▲상북중학교 학부모회 회장 김재은 씨가 학부모아카데미에 참석해 노옥희 교육감과 촬영했다.

상북중 학부모회장이던 김재은 씨는 “노쌤이 교육감이 되면서 교육청 문턱이 낮아져 언제든 교육감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면서, “학부모가 교육의 3주체(교사, 학생, 학부모)라고 자각하게 되었다”라고 뿌듯하게 생각했다.

교육청 내부 회의도 소통에 새로운 변화가 일었다. 매주 국장급이 참석하는 ‘정책공감회의’가 소통회의로 바뀌기 시작했다. 지루한 부서 보고 일색이었던 정책공감회의가 노쌤의 제안으로 정책토론과 정책공부 회의로 변모한 것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회의가 늘자, 일선 교장까지 회의에 참석시켜 정책공감 능력을 확장했다.

노쌤의 야심작은 ‘다모임’ 회의다. 교육청에 근무하는 모든 직원들을 다모임 회의를 진행한 것. 한번은 청소노동자가 참석하지 않아, 그들을 기다리느라 회의가 20분가량 늦어진 일도 있다. ‘다모임’ 회의이니 다모일 때까지 회의를 열 수 없다는 것이 노쌤의 뜻이었다. 노쌤은 이후론 늘 청소노동자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참석 여부를 확인했다.

노쌤 소통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학생들과의 소통이다.

▲1999년 9월 명덕여중에 복직한 노쌤. 
▲1999년 9월 명덕여중에 복직한 노쌤. 

조용식 비서실장에 따르면 노쌤은 ‘학생이 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했다고 한다. 학생교육문화회관을 거점으로 ‘청바지 기획단’을 만들고,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고, 학생참여위원회를 통해 울산교육정책을 검증했다. ‘학생참여예산제’를 도입해 학생들이 직접 학교예산을 편성할 권한을 부여했다.

교사, 학생, 학부모와의 소통을 통해 그들의 힘이 하나로 합쳐지게 한 노옥희 교육감, 여기에 울산의 혁신교육이 단기간에 성장한 비결이 있지 않을까.

취재 중 천창수 선생님께 차마 묻지 못한 질문이 있다. “노쌤이 없는 집에 어떻게 들어갈 생각인가?”

울산시민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 싶다. “노옥희 교육감이 없는 울산교육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

“선거운동 너무 열심히 하지 말았어야”

2009년 노쌤이 설립한 ‘더불어숲’은 ‘교육감 노옥희’를 탄생시킨 모태와 같다.

이귀연 더불어숲 대표는 말한다. “2018년 노쌤이 교육감에 당선돼 교육청으로 갈 때까지 노쌤은 더불어숲에서 꿈꾸고, 사랑하고, 헌신하고, 배우고, 가르치고, 조직하고, 실천했다. 그것도 가장 빛나게. 그래서 노쌤이 더불어숲이고 더불어숲이 곧 노쌤 그 자체다.”

노쌤이 대표일 때 더불어숲 사무국장이던 이귀연 대표는 “그때는 사람 모으는 일은 걱정도 안 했다. 안 한다던 사람들도 노쌤과 같이라는 말만 들으면 너도나도 참여하겠다고 하니 무슨 걱정이 있었겠나.”라며 노쌤을 그리워 했다.

이귀연 대표는 노쌤이 교육감으로 가면서 회장직을 맡았다. 당시 노쌤이 남긴 말 “할 수 있어요 귀연 씨”

무한한 신뢰가 느껴지는 노쌤의 이 한마디를 심장에 새긴 이귀연 대표는 5년째 더불어숲 대표로 활동 중이다.

그런 그가 지난 6월 교육감 선거 운동을 너무 열심히 한 것을 후회한다. 교육감에 재선되지만 않았어도 노쌤이 그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나지 않았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쌤의 교육감 첫 4년과 2기 6개월을 비서실장으로 노옥희 교육감과 함께한 조용식 선생님.
▲노쌤의 교육감 첫 4년과 2기 6개월을 비서실장으로 노옥희 교육감과 함께한 조용식 선생님.

조용식 비서실장에 따르면 재선 이후 지난 6개월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

첫 임기와 달리 1명을 제외한 모든 시의원이 국민의힘 출신이니 그간 노쌤이 이룩한 혁신교육의 성과는 매도되고, 관련 예산은 하나하나 난도질당했다.

조용식 실장은 이를 ‘키워드 삭감’이라고 했다. ‘민주, 평화, 노동, 인권’ 등이 키워드 검색에 걸리면 앞뒤 보지 않고 모조리 예산을 삭감했다는 뜻이다.

노쌤을 더욱 괴롭힌 것은 삭감된 예산의 규모가 아니다. 1979년 첫 교편을 잡은 때부터 33년 세월 뿌리고 가꾸고 키워온 ‘교육희망’, ‘진보가치’, ‘울산의 미래’가 공격당하는 현실이 더 고통스러웠으리라.

▲2022년 교육감 선거 중인 나연정 당시 교육감 수행비서(오른쪽)
▲2022년 교육감 선거 중인 나연정 당시 교육감 수행비서(오른쪽)

노쌤과 마지막을 함께한 이들에게 물었다. “만약 노쌤에게 마지막 말을 전할 수 있다면, 무슨말을 하겠나?”

조용식 실장은 휴대폰을 뺏고 “제발 좀 쉬셔라”

나연정 전 수행비서는 “교육청에서 젤 바쁜 우리 노쌤, 오늘은 모든 일정을 다 뺏습니다”

취재가 끝날 때쯤 ‘노쌤을 편히 쉬게 하는 것과 노쌤의 꿈을 실현하는 것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옥희라는 ‘큰 산’에서 나고 자란 울산 운동이 이제 노쌤이 없는 내일을 개척해야 한다. 노쌤이 남긴 역사를 차분히 되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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