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노동자들이 “안전운임 개악 저지! 일몰제 폐지! 차종·품목 확대!”를 요구하며 총파업을 시작한 지 일주일.

6일 차인 어제(29일) 윤석열 정부는 시멘트 분야 운송노동자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다음날(30일) 24시까지 운송업무에 복귀하라는 것.

지난 6월 총파업 이후, 국토교통부와의 교섭을 통해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 ▲안전운임 품목 확대를 논의하겠다고 합의했지만 원희룡 장관은 이를 이틀 만에 뒤집는 발언을 내뱉었다. 화물 노동자들이 다시 총파업에 돌입하자 ‘일몰제 폐지 불가, 품목 확대 불가’ 방침을 공공연히 드러내며 5개월 동안 약속을 외면하던 정부가 내놓은 카드는 바로 파업을 무력화하는 ‘업무개시명령’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 파업 첫날부터 ‘업무개시명령’을 언급해 왔다. 6월 합의는 파업을 멈추기 위한 임시방편이었고, 업무개시명령은 이미 계획된 수순이었음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화물연대 시멘트운송 노동자들은 “업무개시명령 거부” 의사를 밝히고 흔들림 없이 총파업 대열에 나서고 있다.

▲ '윤석열 정부 반헌법적 업무개시명령 철회 촉구' 화물연대 총파업 승리 민주노총 기자회견에서 머리띠 묶는 화물연대본부 오남준 부위원장. [사진 : 뉴시스]
▲ '윤석열 정부 반헌법적 업무개시명령 철회 촉구' 화물연대 총파업 승리 민주노총 기자회견에서 머리띠 묶는 화물연대본부 오남준 부위원장. [사진 : 뉴시스]

헌법 무시… 개인사업자에게 업무개시 명령?

정부는 특수고용노동자인 ‘화물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영업자’라고, 그래서 ‘파업이 아니라 집단 운송거부’라며 화물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을 깎아내렸다. 개인사업자가 자신의 영업을 중단하겠다는데 업무 수행을 하라느니, 말라느니 강제하겠다는 정부의 태도가 모순되기 짝이 없다. 말 그대로 어불성설이다.

이날 내려진 ‘업무개시명령’은 반헌법적이고 위법함이 겹겹이 쌓여있어 국민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먼저, 업무개시명령은 강제노역 금지(헌법 제12조 제1항), 강제노동을 금지(근로기준법 제7조)하는 헌법과 근로기준법에 위배된다.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이 시멘트 운송차질 등으로 건설업계에 ‘커다란 지장’을 주고 있다는 자의적인 판단으로 형사처벌과 행정제재를 들이밀며 화물노동자에게 정부의 명령에 따르도록 하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노동에 대한 권위적인 시각이 가득 찬 결정이다.

이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 법률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제14조(업무개시 명령)

① 국토교통부 장관은 운송사업자나 운수종사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집단으로 화물운송을 거부하여 화물운송에 커다란 지장을 주어 국가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그 운송사업자 또는 운수종사자에게 업무개시를 명할 수 있다.

업무개시명령의 요건은 “정당한 사유”, “커다란 지장”, “국가경제”, “심각한 위기”, “상당한 이유” 등 불확정적이고 추상적인 개념들로 지칭돼 있다. 따라서 명령을 내리는 자(정부)의 의사에 의해 임의적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커지면, 명령을 받는 당사자는 그 명령이 과연 법의 요건을 충족한 것인지, 명령에 불응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는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상태에서 형사처벌의 위험으로 내몰리게 된다. 이는, ‘범죄의 구성요건은 법률로 명확히 규정돼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반한다.

업무개시명령은 또, 화물운수 노동자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 화물운수 종사자는 다른 모든 국민과 마찬가지로 직업의 자유를 누리며, 여기에는 직업을 수행하거나 수행하지 않을 자유, 영업의 자유가 포함돼 있다.

정부는 화물노동자에 대해 ‘개인사업자’, ‘자영업자’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화물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이후 줄곧, 흔들림이 없었다. 그런데, 개인사업자, 자영업자에게 업무 수행을 강제하겠다고 한다. 화물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은 인정할 수 없고, 정부가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에게 업무개시를 명령한다는 것이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모든 국민들이 갖는 기본권(직업수행의 자유, 일반적 행동자유권, 행복추구권)을 공권력이 강제하면서, 헌법상 기본권까지 흔들면서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 30일 오전 인천 중구 한라시멘트 앞에서 화물연대본부 시멘트화물 노동자들이 ‘반헌법적 업무개시명령을 거부한다’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30일 오전 인천 중구 한라시멘트 앞에서 화물연대본부 시멘트화물 노동자들이 ‘반헌법적 업무개시명령을 거부한다’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국제협약 역행… 국제사회 경고에도 아랑곳 안 해

또한, 업무개시명령은 국제협약(ILO 기본협약)에도 위배된다.

한국은 노조할 권리,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등 노동권 보장에 대한 국제기준을 지키기 위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비준했다(제87호 결사의 자유 협약, 제98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협약). 이는 올해 4월 20일 국내법적 효력을 갖게 됐다.

ILO는 “고용상 지위와 관계없이 자영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노동자(worker)에게 협약상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함을 밝혀왔다. ILO협약 87호에 따르면 특수고용 화물차 기사인 화물연대 조합원과 같은 ‘자영노동자’(self-employed worker)를 비롯한 모든 노동자는 어떠한 차별도 없이 ‘자신이 선택한 단체를 설립하고 가입할 권리’를 완전히 누릴 수 있다. 화물연대 조합원들의 정당한 파업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은 이를 위반하고 있다.

‘강제노동’ 역시 ILO 핵심협약(제29호)은 분명하게 금지하고 있다. 강제노동 폐지 협약(제105호)도 명시적으로 “경제발전을 위하여 노동을 동원하고 이용하는 수단”, “노동규율의 수단”, “파업 참가에 대한 제재”로서의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있기도 하다.

업무개시명령은 UN의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ESCR)’,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에도 반하는 것으로 국제적 조치가 예상되고 있다.

국제운수노련(ITF)은 “정부가 면허 취소와 징역형, 막대한 벌금의 위협 하에서 업무개시명령 발동을 추진하고 있는 점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면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함께 ILO 사무총장과 유엔 특별보고관에 긴급 개입을 요청하는 서한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ITF는 한국 정부의 태도 변화가 없을 시, ILO 이행감독기구와 유엔 조약기구에 대한 추가 제소, 무역협정 안의 절차를 활용해 한국정부를 압박하는 등 “국제 인권과 노동 기준을 노골적으로 위반하는 한국 정부 행위에 대해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시대와 국제협약을 역행하는 정부 행태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실정이다.

조연민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안전을 위한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제쳐두고 위헌, 위법 소지가 다분한 업무개시명령부터 최우선적으로 검토하는 정부의 태도는 국민과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 그리고 기본권에 앞서 과연 다른 어떤 이익을 먼저 보호해주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개탄했다. 그는 “사태의 해결을 위한 비용, 시간, 행정력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따져 물었다.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기는 정부가 초래하고 있다는 뜻이다.

화물노동자에게 ‘계엄령’ 선포

한편,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의 ‘업무개시명령’은 2004년 도입 당시 화물연대를 겨냥하고 만들어졌다. 2003년 화물연대 총파업 이후 정부는 화물운수 종사자의 열악한 노동조건 및 관련 법·제도 개선에 주력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개시명령 제도를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 도입해 호시탐탐 화물연대의 파업을 겨냥하려 했다.

당시 사회 각계에서는 그 위헌성을 지적하는 문제 제기로 첨예한 논란이 일었다.

법안이 국회에서 심의될 당시, 변호사와 시민사회단체는 이 법안의 비민주적 성격을 우려했다. 그들은 업무개시도 합법인 국가 공무원이나 의사와 달리 화물노동자는 공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가 화물노동자들의 독립적인 계약 지위(특수고용)를 근거로 결사의 자유 및 단체교섭권은 거부하고, 다른 한편으로 정부가 이들 노동자에게 업무를 강제할 수 있는 법적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과 함께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이 작용했다.

이에 정부는 도입 이후 현재까지 단 한 번도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지 않았다. 대신 화물연대가 파업할 때마다 ‘업무개시명령 검토 중’이라며 위협을 가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 사문화된 ‘업무개시명령’을 윤석열 정부가 처음으로 발동하고야 말았다.

화물연대는 “업무복귀를 명령을 따르지 않을 시 화물노동자의 화물운송 종사자 자격을 박탁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는 윤석열 정부가 화물노동자에게 계엄령을 선포한 것과 다름없다”고 규정했다.

▲ 30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반헌법적 업무개시명령 철회 촉구' 화물연대 총파업 승리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 기자회견. [사진 : 뉴시스]
▲ 30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반헌법적 업무개시명령 철회 촉구' 화물연대 총파업 승리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 기자회견. [사진 : 뉴시스]

화물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운송거부’가 아닌 ‘파업’을 인정할 것이냐, 아니면 자영업자에게 이래라저래라하는 업무개시명령을 철회할 것이냐. 이도 저도 안 하는 윤석열 정부.

모든 노동자의 노동3권을 온전하게 보장하기 위해 노조법 2·3조 개정운동이 달아오른 상황에서도, 노동자의 단결권과 교섭권을 인정하지 않고 되레 침해하는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 시각은 헌법과 국제법을 손쉽게 무시한 이번 ‘업무개시명령’이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민주노총은 업무개시명령 발동을 ▲국민의 기본권 침해, 노동3권 무력화하는 반헌법적 폭거 ▲민주노총과 노조(화물연대) 적대시, 노동자의 정당한 파업 범죄시하는 폭력적인 노동탄압 ▲노동자의 안전과 기본권 보장의 국가의 책임과 의무를 저버린 친자본 반노동 책동으로 규정하고 전 조직적인 투쟁을 결의했다. 12.3 전국노동자대회를 화물 총파업 승리를 위한 서울, 영남권 대회로 분산 개최하고, 다음 달 6일엔 전국동시다발 총파업, 총력투쟁대회를 벌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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