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노동개악, 그중 장시간 노동을 부르는 ‘주52시간제 개악’의 구체적 내용이 드러났다.

고용노동부가 노동시장 개혁의 우선 추진과제라며 ‘근로시간 제도 및 임금체계 개편’을 지목했고, 이를 집중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지난 7월18일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발족했다. 이들이 내놓은 안이다.

연구회는 지난 17일 ‘노동시간 개편’을 주제로 한 전문가 간담회를 열고 주52시간제 개편안의 윤곽을 내놨다.

▲ 지난 7월18일 미래노동시장연구회 킥오프 회의,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 연구회 참가자들. [사진 : 뉴시스]
▲ 지난 7월18일 미래노동시장연구회 킥오프 회의,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 연구회 참가자들. [사진 : 뉴시스]

주 69시간 노동? 기업 소원 수리 시작

근로기준법 50조가 정한 근로시간은 1일 8시간, 1주간 40시간이다. 그리고 53조를 통해서 이를 초과해 1주간 12시간 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개편안에는, 주 단위로 12시간을 넘지 못하던 연장근로시간을 월이나 분기 또는 연 단위로 관리하겠다는 방안이 들어있다. 즉, 주 12시간 이상 연장근로를 시키더라도 월 48시간(12시간×4주)만 넘지 않으면 합법으로 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기업의 필요에 따라 일이 몰릴 땐 더 많이 일하고, 그렇지 않을 땐 적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엔 일은 더 많이 시키고, 임금은 더 적게 주기 위한 의도가 숨어져 있다.

먼저, 연구회는 “장시간 집중근로 방지를 위해 근로일 사이 ‘11시간 연속휴식’ 등의 조치를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11시간 연속휴식은 지키면서, 다른 주에 연장근로를 덜 하고 1주 평균 52시간만 맞춘다면 주 69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하게 된다.

주69시간 노동은, 윤 대통령이 선거 공약을 낼 때부터 “노동시간 총량 규제를 연간 단위로 확대하겠다”며 이미 밑그림을 그렸고, 이는 경총이 지난 4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제출한 정책제안서 “연장근로시간 총량 규제를 주 단위에서 월 또는 연 단위로 변경해 달라”는 요구와 같은 것이다.

일한 시간만큼 임금 안 주기 ‘꼼수’

주52시간제 파기는 노동자들에게 실질임금 삭감이라는 후과를 남긴다.

연구회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 방안을 내놨든데, 쉽게 말해 업무량이 많을 땐 초과근무를 하고, 초과근무 시간을 저축한 뒤 업무량이 적을 때 휴가 등으로 소진하는 제도다.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주 단위가 아닌 월 이상으로 확대하면서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활용하면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대한 수당을 휴가로 지급받게 돼 초과근로에 지급되는 통상임금 50%의 가산 수당이 무의미해진다. 그만큼의 임금손실이 생기는 것이다. ‘근로자가 원하는 경우’가 전제이긴 하나 비정규직이나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의 경우 사용자 측의 고용계약 해지가 두려워 이런 계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연차휴가도 제대로 소진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연장·야간·휴일노동시간을 휴가로 보상하거나 대체한다는 것은 결국 일한 시간만큼의 임금을 안 주는, 그래서 사용자에게만 이득이다.

현재 장시간 노동을 유발하는 ‘포괄임금제’도 문제다. 주52시간제가 월 단위로 관리되면 실질 임금삭감 흐름에 더 큰 작용을 일으킨다.

실제 근무한 시간과 관계없이 매달 연장·야간·휴일노동시간(시간외근무) 등을 정해두고 이에 상응하는 고정수당을 지급하는 포괄임금제. 즉, 연장근로에 대한 수당이나 대체휴무가 없다는 뜻이다. 포괄임금제가 ‘장시간노동’과 ‘공짜노동’을 부추기는 와중에 주 52시간 상한제가 월 단위로 적용돼 주 69시간을 일할지라도, 가산수당은 그림의 떡이다.

결국, 노동자는 장시간 집중노동을 하는 반면, 사용자는 초과근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이득을 챙기게 된다. 2019년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매출액 상위 600대 기업 가운데 195곳 중 포괄임금제를 도입하고 있는 기업은 57.9%에 달한다. 연구회는 ‘포괄임금제 금지’ 방안에 대한 입장은 내놓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연구회는 ‘선택적 근로시간제 확대’도 들고 나왔다.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 기간을 현행 1~3개월에서 1년 이내로 확대하게 된다면, 이 역시 사용자들은 총량 한도 내에서 마음대로 노동시간을 늘렸다가 줄였다 할 수 있다. 노동자들에게 일이 몰릴 때 초과수당 없이 장시간 노동을 하게 만드는 건 똑같다.

연구회가 내놓은 이런 방안들 모두 윤 대통령 대선 공약에 담긴 “근로시간 유연성 확대”가 고스란히 투영된 결과다.

▲ 지난해 12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최저임금, 주52시간 근무제’ 철폐 발언을 규탄하는 청년들의 퍼포먼스. 2021.12.02. [사진 : 뉴시스]
▲ 지난해 12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최저임금, 주52시간 근무제’ 철폐 발언을 규탄하는 청년들의 퍼포먼스. 2021.12.02. [사진 : 뉴시스]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실체

대선 후보시절부터 일관되게 노동개악 의지를 표명해온 윤석열 정부는 지난 7월18일 4개월의 임기로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발족하며 본격적인 노동개악에 시동을 걸었다. ‘주52시간 상한제 폐지’에서 보여지듯 더 많이 일을 시키고, 임금은 더 적게 주는 것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윤 정부는 노사 간 입장 차이가 뚜렷한 사안에 대한 노동계의 반발을 예상해, 소위 학계와 전문가들을 앞세워 노동개악의 발판을 만들겠다며 머리를 짜낸 게 ‘미래노동시장연구회’다.

연구회 명단을 보면 그 면면이 심상치 않다. ‘손 안 대고 코 푼다’고 손쉽게 노동개악을 추진하려는 윤 정부의 속내가 드러난다.

정부가 발표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참여자(12명) 중엔 익히 알려진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가 있다. 권 교수는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간사였다. 그는 지난 여름 최저임금 심의 당시, 최저임금 수준을 심의할 시간이 부족했음에도 ‘법정기한 준수’를 강조하며 심의를 재촉했고, 사용자위원들이 주장한 ‘지불능력’을 고려한 수치를 심의 촉진구간으로 제시했다. ‘최저임금 인상 최소화’라는 정부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서둘러 심의를 끝내는 데 앞장섰다. 권 교수는 지금 연구회의 좌장을 맡고 있다.

정승국 중앙승가대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의 첫 번째 경제·정책 과외교사로 유명하다. 그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반대해왔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공공부문의 신규 취업을 억제시킨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연차에 비례해 임금을 주는 연공급 중심(호봉제) 임금체계에 대해선 “기업에 과도한 비용 부담을 안긴다”며 반대했다.

윤 대통령은 교사에게 배운대로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비롯해 ‘직무가치와 성과’를 반영한 임금체계 개편 등을 공약으로 내놨고, 그 교사는 현재 윤 정부 산하 미래사회노동연구회에 몸담고 있다. 또한 정 교수는 고용․노동 분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 신임 원장 후보로 거론되는 상황이다.

또, 연구회 소속 박철성 한양대 교수 역시 연령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파견업무 제한 대상을 폐지하거나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노동계가 반발하는 내용들을 자기 주장으로 갖는 인물들이 연구회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며 이미 짜여진 정부 정책방향대로 연구결과를 발표하며 동행하고 있는 형국이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출범을 보수 일간지조차 “들러리”라고 우려할 정도다.

연구회는 지난 17일 노동시간 제도와 관련한 ‘전문가 간담회’를 열었다.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라고 했지만 이날 회의에 참석한 전문가 명단은 공개하지 않았다.

민생에 ‘비상’을 안기는 ‘비상경제 민생회의’

정부가 주52시간제를 비롯한 노동정책의 방향을 잡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비상경제 민생회의’는 경제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민생을 챙기기 위한 회의일진 데, 그 안에선 ‘민생’ 챙기기는커녕 반노동 정책들이 논의되며, 구체적인 실행 준비까지 하고 있다. 주52시간제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27일, 윤 대통령이 주재한 이 회의(11차 회의)가 생중계됐다. 보수 언론조차 ‘비상스럽지 않다’고 평가가 즐비한 이날 회의에 대해 일간지들은 “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경제를 이끌어갈지 알기 어려웠다”는 평가를 내면서도 ‘주52시간 규제 완화’, ‘30명 미만 영세기업 연장근로 허용’ 등의 규제를 완화하는 것에 대해선 “적절한 조치”라고 치켜세웠다.

그 후 정부는 지난 1일, 11차 비상경제 민생회의에 대한 후속 조치를 내놨는데 근로시간을 유연화해 장시간 노동을 불러일으키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 해외건설산업을 집중육성하기 위해, 해외건설업에 대해선 주52시간제 보완제도 중 하나인 ‘특별연장근로제’ 활용기한을 연90일에서 180일로 연장하는 것으로 하고, 고용노동부 지침을 개정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특별한 사유가 인정될 시 주 64시간까지 연장근로가 가능하도록 하는 조치다.

또, 기업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3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올해까지 인정되었던 1주 8시간 추가연장근로(1주 60시간)를 2년 더 연장하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연내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실행계획을 갖고 있다.

장시간 노동을 규제하기보다 방치하고 권장하는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은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감축하기는커녕 사용자들의 재량권을 더욱 강화해 장시간 노동 부문을 더 확대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장시간 노동체제를 확대하고 노동시간 양극화를 불러올 게 훤하다.

윤 대통령은 유력 대권주자였던 지난해 7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주 52시간제를 “실패한 정책”이라 비판하며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주120시간 노동 발언이 괜한 발언이 아닌 게 되고 있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다음 달 13일 최종 권고문을 발표한다. 연구회의 권고문은 노동시간과 임금체계, 기타 개혁과제 3개 분야로 나눠 나올 예정이다.

의심스러운 연구회 출범과 연구회 구성원 면면, 그들의 지향을 봤을 때 향후 제시될 남은 과제들도 어떤 방향의 권고문이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