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 경제블록과 세계경제 재편 전망(2)

신냉전 국제질서가 구축되면서 미국과 서구 중심의 경제블록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가 출범하고, 중국과 러시아 등 브릭스(BRICS)가 중심이된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은 더욱 공고해졌다. 양 진영이 구축한 경제블럭에 대한 진단을 통해 세계 경제질서의 재편 방향을 전망해 본다. [편집자]

(1) 중국·러시아·미국의 경제 현황
(2) 세계 공급망 재편과 경제블럭의 흥망성세

세계 공급망 재편

미국과 중국의 교역규모는 2000년 1천억 달러에서 2020년 6천억 달러로 6배로 증가하였고, 동기간 미국의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는 네 배로 커졌다.

기술력이 낮은 중국은 가공무역으로 원자재를 동아시아에서 구입하여, 조립·완성하여 미국에 판매하였다. 수출은 대부분이 미중 합작기업에서 담당하였고 미국 기업은 브랜드값도 챙겼다. 미중무역에서 중국은 제조업자로 생산품을 판매할 수 있는 소비자를 얻었고, 미국은 양질의 상품을 싸게 소비할 수 있었다. 중국은 수출로 얻은 잉여자금을 미 재무부 채권 구입으로 다시 투입했으므로, 미국은 부채에 의한 소비를 지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기술이 급속히 향상되어 중간재 생산이 늘어가고, ‘중국제조 2025’와 ‘일대일로’ 등으로 세계적 영향력이 확대되었다. 반면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국가신용 추락’, ‘눈덩이 부채’ 등으로 도전에 직면하면서 중국에 추월당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당선을 기점으로 미국은 대중국 무역전쟁을 시작하였다. 미국은 ‘무역적자 해소’, ‘중국으로 첨단기술 수출 금지’, ‘중국의 세계화전략 차단’ 등으로 중국을 견제했고 이는 바이든 시대에 와서 더욱 노골적으로 수출통제법 제정과 경제블록에 의한 봉쇄정책으로 확장되고 있다.

미국은 제조업에서 중국에 역전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먼저 미국이 우세한 부품소재, 통신장비 등 첨단기술에서 중국의 추격을 차단하였다. 다음으로 세계 공급망을 동맹국 중심으로 재편하여 중국·러시아 등 경쟁국가들을 고립시키고 있다. 또한 대만과 우크라이나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중국의 태평양 진출과 러시아의 유럽 진출을 막아 이들의 국력을 약화시키고자 한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경제 제재를 러시아로 확대하여 3월부터 은행송금망(스위프트) 차단, 에너지와 첨단제품 교역 금지 등에 나섰다.

또한 미국은 인도태평양프레임워크(IPET)를 5월에 출범시켜 중국의 경제적 영향권 차단에 나섰는데, 이는 반도체 칩4 동맹으로 본격화 되고 있다.

반도체는 TV, 컴퓨터, 스마트폰, 자동차 등 대부분의 전자기기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자율주행 등 산업혁명 기술에 필수적이어서 국가 간 기술 경쟁이 치열하다.

현재 부가가치 창출 측면에서 상위 6개국(미국,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및 유럽)이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의 총부가가치의 96%를 차지하고 있다. 글로벌 분업구조에서 미국은 고부가가치인 설계와 장비를 리드하고 있으며, 한국과 대만은 생산부분을 담당하여 각각 메모리반도체(저장장치)와 파운드리(위탁생산)을 주도하고 있다. 일본과 EU는 원료, 소재, 장비 등을 담당하고 있고, 중국은 패키징, 테스트 등 후공정과 함께 설계와 생산 부문을 추격하고 있다.

▲세계 반도체 생산과 매출 현황 [자료 : SIA(2021), Factbook에서 재작성]
▲세계 반도체 생산과 매출 현황 [자료 : SIA(2021), Factbook에서 재작성]

중국, 러시아가 가장 취약한 부분은 차세대 정보통신기술에 필수적인 반도체다. 중국의 2020년 반도체 수입액은 416조원으로 단일 품목으로 1위이다(원유의 2배, 철광석의 3배).

지정학적 위치로 보면 대만의 TSMC, 한국의 삼성전자 그리고 중국 YMTC(메모리), 하이실리콘(팹리스), SMIC(파운드리) 등이 동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는데,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 통일 또는 코리아 통일로 기술과 소유권 이전을 우려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은 그동안 고부가가치 설계에 주력했던 전략을 수정하여 미국, 일본, EU 등 동맹국에 대규모 투자로 반도체 생산 공장을 건립하고 있다. 미국의 압박으로 삼성전자는 텍사스주에 20년간 250조원을 투입하여 11개의 공장과 1만개 일자리를 창출하기로 하였고, TSMC도 미국에 공장 6개를 설립하여 생산을 이전하기로 하였다. 칩4 동맹으로 중국 봉쇄와 미국·서방으로 생산 이전이 실행되면, 동아시아에서 반도체 생산과 고용 비중은 크게 감소할 것이며, 한국과 대만의 메모리반도체와 위탁생산의 독점시대가 마감될 수 있다.

경제블록과 공급망 재편

미국 주도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되면서 30년 지속되었던 세계화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전염병,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 대립, 기술패권 전쟁 등으로 신냉전이 도래하면서 우방국 중심 경제블록이 구축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호무역주의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경쟁국을 봉쇄하기 위한 것으로 전쟁으로 나아간 경우가 많다. 20세기 1, 2차 세계대전도 식민지를 먼저 차지한 영국·프랑스·스페인 등의 경제블록에 맞서 산업화가 늦은 독일·일본 등이 식민지와 자원을 빼앗기 위한 격돌이었다.

역사가 되풀이되어 21세기 미국·서방과 중국·러시아 경제블록이 충돌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량은 식량, 광물, 에너지, 제조품, 중간재 등 엄청난 규모이므로 서로가 당장 교역을 중단하거나 현재의 상품을 대체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일반 상품들의 교역은 상당 기간 동안은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정보통신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반도체, 배터리, 통신장비 등 첨단기술과 부품소재는 철저히 차단될 것이다.

이중 핵심은 산업의 쌀인 반도체이다. 반도체는 재료와 장비, 공정이 각각 수백 개에 달해 누구도 쉽게 장악하기 힘든 첨단 분야이다. 재료 한두 개만 빠져도 생산이 멈출 수 있으므로 일본이 강제징용 소송에 대한 보복으로 핵심 소재 3종의 수출을 규제해서,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충격을 주었던 사례도 있다.

미국의 압력으로 한국과 대만은 중국·러시아에 첨단제품 공급을 중단하고 범용제품 공급은 지속하고 있다. 한국의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 비중이 62%이며, 대만도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홍콩 포함) 비중이 60%이다. 여기에 삼성전자(시안, 쑤조우), SK하이닉스(우시, 다롄), TSMC(상하이, 쑤저우)의 현지생산까지 포함하면 두 나라의 대중국 반도체 공급량은 절대적인 수준이다. 중국 공급을 차단하면 한국과 대만의 수출 감소 등 피해도 엄청나다.

중국과 러시아는 다른 방법으로 반도체 공급망을 해결하거나 핵심기술을 따라잡지 못하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반도체 칩4 동맹이 중국을 배제하면, 중국도 한국과 대만에 대해 보복조치에 나설 수 있다. 중국이 공급하는 반도체 원부자재와 요소수 같은 소재 공급 차단 등 산업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가할 수 있고, 군사적 충돌도 간과할 수 없다.

미국과 중러 경제블록의 충돌

경제전쟁에서 거대한 영토와 자원, 제조업에 강한 중국·러시아 블록과 금융과 정보통신에 기반한 미국·서방 블록의 승부는 예측하기 어렵다.

유라시아의 제국 중국과 러시아의 동맹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과거 소련은 중소대립 상태에서 미국과 격돌했으나 패배하였다. 이러한 교훈으로 러시아는 훨씬 강해진 ‘세계의 공장’ 중국과 긴밀히 연대할 것이다. 중국도 미국의 제재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와의 동맹으로 에너지 확보, 시장 확대 등이 필요하다.

현재 미국의 중·러 경제 제재에 동참한 나라들은 EU, 북미, 영연방, 한국, 일본 등을 제외하고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중·러가 주도하는 신흥경제 5개국(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 모임인 브릭스에 이란,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터키, 사우디, 이집트 등이 참가 신청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브릭스는 독자적인 국제결제체제, 무역·생산망 확대 등 서방에 맞서 중러 주도의 경제블록을 강화할 것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 무역국이자 제조강국으로 세계 수출시장에서 점유 1위 품목이 1,798개(2020년)로 세계 1위인데 미국은 479개로 세계 3위에 불과하다.

러시아는 가스와 석유 생산 세계 2위, 석탄 매장량 세계 2위, 코발트 수출 세계 2위, 백금(반도체 원자재) 매장량 세계 1위 등으로 에너지와 광물의 세계 최대 보유국이다.

보호무역 전쟁에서는 식량, 에너지, 광물, 제조품 등 실물경제를 장악한 국가가 더 유리하다. 공급망이 붕괴된 상황에서 아무리 많은 화폐가 있어도 당장 필요한 원자재와 상품을 구입할 수 없다. 미국동맹이 경쟁국에 반도체와 통신장비 공급을 차단하듯, 중러동맹도 서방에 식량·에너지·제조품 공급을 차단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달러를 찍어 부채에 의존하는 금융시스템이 약화될 수 있으며, 달러표시 자산으로 구성된 각국의 외환보유고도 금·은·석유 등 실물이나 실물과 연계성이 높은 화폐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기축통화의 이점으로 금과 연계없는 화폐로 필요한 상품을 무한대로 구입할 수 있었다. 또한 미국은 해외투자에서 얻는 수익률보다 2~3%포인트 낮은 금리로 국채를 발행하여 돈을 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기축통화 지위가 약화되면 미국 정부가 미국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은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실물에 기반하지 않은 달러표시 자산이 통용된 것은 미국 정부가 세금을 징수하여 부채를 갚을 것이고, 타 국가들이 보유한 미국 국채는 언제든지 현금으로 교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난 3월 미국과 서방이 러시아 중앙은행의 3,000억 달러 외환보유고를 동결하면서 이러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러시아 사태를 지켜본 타국들은 달러 비중을 줄이고 다른 형태의 해외자산으로 외환보유고를 준비하게 될 것이고, 달러에 기반한 국제금융 시스템이 흔들릴 수 있다. 미국 부채 누적과 세계 공급망 재편도 미국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실제 러시아와 중국은 과도한 달러 발행으로 달러 자산 가치가 하락하는데 불만을 제기하며, 수년 전부터 외환보유고에서 미국 국채 비중을 계속 줄이고 있다. 1조 1000억 달러의 미국 국채를 보유한 중국이 달러화 자산을 대거 매각하고 러시아 원자재를 사들인다면, 전 세계 인플레이션에 대한 통제권을 중국이 확보하며 미국·서방의 원자재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올해 3월 보고서를 내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서방의 제제로 인해 제3의 브레튼우즈 체제가 탄생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실물(상품)을 근간으로 하는 통화가 급부상하여 새로운 국제통화 질서를 형성하고, 달러와 유로 시스템을 약화시켜 서방에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향후 10년 내 신자유주의 경제블록을 대체하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다. 그것은 가상의 실체에 기반한 금융경제가 아니라 에너지, 광물, 식량, 제조품 등 실물경제에 기반한 자립경제 동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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