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한일 위안부 합의’ 복원 시도의 위험성

박진 외교부 장관이 2박 3일의 일본 방문을 마치고 20일 귀국했다.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하고, 기시다 일본 총리를 만났으며, 피격으로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조문했다.

박진 장관은 자신을 ‘조선통신사’에 비유하며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강조했고, ‘2015 한일 외교장관 위안부 합의’가 양국 간 공식 합의로 존중되어야 하며, ‘합의 정신 실현의 중요성’을 앵무새처럼 반복해 왔다.

기시다 일본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도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공식 합의로 존중하며 합의 정신에 따라 해결하기를 기대한다”라고 했다. 이에 다수의 일본 언론들은 “‘2015 한일합의’ 이행 확약 없이 일본 정부는 (정상) 회담을 받기 어렵다”며, “위안부 합의 사항을 한국이 제대로 실행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게 일본 정부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기시다 총리는 박진 외교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위안부 문제와 징용 문제 등 한일 간 현안에 대해 “해결을 위해 계속 노력해 달라”고 요구했다. 한일관계 개선의 전제로 ‘2015 한일합의’가 공식적으로 제기된 것이다.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교부 장관 기자회견에서 기습적으로 발표된 ‘2015 한일합의’는 ▲책임 인정이 빠진 애매모호한 유감 표명, ▲전쟁범죄에 따른 법적 배상금이 아닌 위로금 10억 엔 출연으로 화해치유재단 설립, ▲이를 대가로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문제 협조, ▲국제사회에서 비난·비방 자제,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한국 정부가 약속해 준 굴욕적 합의였다.

비공개를 전제로 ‘피해자 관련 단체 설득, 제3국 기림비 문제 해결, 성노예 용어 사용 자제’ 등 이면 합의까지 담긴 치졸한 졸속합의였다. 형식, 절차, 내용 모든 면에서 문제가 많은 합의였다. 역사의 시계를 50년, 100년, 아니 150년 전 구한말로 되돌린 퇴행적 합의였다.

이후 일본 외교부 공식 문건에서 성노예, 강제동원 등의 용어는 사라졌으며 역사 교과서에서 일본군의 관여를 암시하는 ‘종군’이라는 용어마저 각의 결정을 통해 삭제되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유엔에서 제기하는 것조차 ‘2015 합의’ 위반이라 어깃장 놓고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하자 ‘국제법 위반’이라고 맹비난했다.

독일 베를린 ‘소녀상’ 철거를 시도하고, 전 세계 시민들의 힘으로 추진하는 ‘소녀상’ 설치를 방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일본 정부의 역사부정과 왜곡은 더욱 노골화했다.

이처럼 ‘2015 한일합의’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피해자의 동의 없이 사죄조차 하지 않은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준 꼴이 돼버렸다.

‘2015 합의’의 이런 폐해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합의를 존중하고 합의 정신을 준수하겠다”라고 공언하며, 대한민국에 해법을 가져오라고 윽박지르는 안하무인 일본 정부에 관계 개선을 구걸하고 있다.

도대체 윤석열 정부는 ‘2015 한일합의’의 어떤 부분을 되살리고 계승하겠다는 것인가?

‘주고받기식’ 정치적 계산이 깔린 합의라고 판단한 대한민국 사법부의 결정을 무시하는가?

‘피해자 중심의 원칙, 진실·정의·배상의 원칙을 저버렸다’고 지적한 유엔 권고안을 무시하고 화해치유재단을 다시 살려내겠다는 의미인가?

일본 정부의 ‘소녀상’ 철거와 설치 방해에 협조하겠다는 것인가?

‘역사를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일본 정부에 동조하거나 침묵하겠다는 것인가?

극우 역사부정론자와 야합해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를 기억하고 기념하려는 시민사회를 탄압하겠다는 의미인가?

가해국의 입장에 서서 자국민을 탄압하고,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피해자들의 입을 봉하려던 박근혜 정부의 과오를 반복하겠다는 뜻인가?

이제라도 한국 정부는 굴종적 자세를 버리고 자주적이고 당당한 태도로 대일 외교에 임해야 한다. ‘2015 한일합의’ 복원을 꾀하고, 안보와 외교를 빌미로 역사적 진실을 봉합해 가해자와 야합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즉각 중단해야 한다.

피해자들이 한 분이라도 살아계실 때 일본국의 책임 인정과 공식 사죄, 법적 배상을 받기 위해 노력하며, 미래세대를 위한 올바른 역사 교육에 힘써야 한다.

그것만이 식민지와 분단, 전쟁과 군사독재 정권의 유산을 극복하며 이 땅에 자주와 평화, 민주주의와 정의의 새날을 열기 위해 노력했던 대한민국 시민들의 역사를 계승하는 길이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 왔다. 역사를 직시하지 못하는 자, 그대로 역사에 영원히 봉인될 것임을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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