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켄전기는 교섭에 응하라”… 단식투쟁 돌입

마산수출자유지역 내 설립된 외국인투자기업 ‘한국산연’에서 LED 조명을 생산했던 노동자들.

수차례 한국공장 철수와 구조조정을 강행해 온 모회사 일본 ‘산켄전기’를 상대로 일본 원정투쟁까지 벌이며 2017년 승리를 맛봤다.

그러나 2020년 여름, 산켄전기의 일방적인 ‘위장폐업’에 맞서 다시 투쟁을 시작했다. 싸움은 700일이 넘었고 지난 22일부터는 끝내 단식투쟁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 서울 마곡동 APTC 사무실 점거농성 중인 한국산연 노동자들. [사진 : 한국산연지회]
▲ 서울 마곡동 APTC 사무실 점거농성 중인 한국산연 노동자들. [사진 : 한국산연지회]

교섭 다음 날 ‘폐업’ 통보

한국산연 노동자들은 20일 모회사 산켄전기의 국내 합작법인인 APTC 사무실에서 점거농성을 시작했다. APTC는 산켄전기와 LG전자가 합작해 만든 기술연구개발 업체다.

산켄전기는 지난 2020년 7월 누적적자로 인한 경영위기를 이유로 한국산연 폐업을 결정하고 2021년 1월20일자로 폐업했다. 한국산연 노동자들은 일본 산켄전기 본사 홈페이지를 통해 폐업 소식을 알게 됐다.

2019년 연말 산켄전기 홈페이지에서 ‘새로운 비전을 준비하며 일부 사업을 폐쇄하고, 일부 지역을 철수하겠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국산연 사장으로부터 ‘한국산연을 폐쇄한다는 말은 없다’고 들었지만, 물량 문제로 여러 번의 휴업까지 감수해야 했고, 고용안정 문제에 관한 교섭도 이어졌다.

2000년 7월 7일 고용안정 교섭을 하고, 8일엔 임단협 교섭도 했다. 그러나 하루 만인 9일, 산켄전기는 이사회를 열어 한국산연 폐업, 청산 결정을 내렸다.

그때부터 한국산연 사장은 “자신은 몰랐던 일”이라고 일관했다. 경영상의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게 손익계산서, 대차대조표 등 정산자료를 요구해도 무성의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위로금 교섭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한 두 차례 일방적으로 위로금을 제시하는 문자를 보내온 사장을 향해 “위로금이 아니라 교섭에 나오라”고 요구했지만 회사는 끝내 응하지 않았다.

“폐업 6개월 이전에 이를 조합에 통보해야 하며 구체적 상황에 대해서는 조합과 합의 후 결정해야 한다”는 단체협약을 위반했고, 2017년 투쟁 승리 후 복직합의서에 적힌 “앞으로 심각한 고용문제가 발생할 경우 노동조합과 사전에 합의하기로 한다”는 조항도 위반했다.

금속노조 한국산연지회는 산켄전기의 한국산연 폐업을 ‘위장폐업’으로 규정하고 다시 투쟁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23일) 711일이 됐다.

▲ 사진 : 한국산연지회
▲ 사진 : 한국산연지회

LG를 상대로 싸우는 이유

그들이 산켄전기와 LG전자의 합작법인인 APTC에서 농성하는 이유가 있다.

APTC는 2018년 3월 LG가 49%, 산켄이 51% 투자해 만든 기술연구개발 업체다.

김은형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1990년부터 한국산연에서 일했다. 그는 “LG가 위장폐업의 동조자”라고 확신있게 말했다.

서울 마곡동 한 빌딩의 4층에 산켄전기 한국영업소가 있고, 5층엔 APTC가 있다. 건물 4층의 대표와 5층의 대표가 동일 인물(이명준)이다. 그는 일본 산켄 본사의 이사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LG와 산켄이 연결돼 있다고 본다. 이명준 대표는 2000년부터 한국산연 사장에 줄곧 LG출신을 데리고 왔다.”

2021년 1월 한국산연을 폐업하고 공장문을 닫은 산켄이 LG와 힘을 합쳐 여전히 국내 사업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위장폐업의 근거로 된다.

“산켄은 한국에서 생산이나 판매, 연구개발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LG와 손을 잡고 더욱더 사업을 확대하고 활발한 기업활동을 하고 있다.”

툭하면 경영상의 이유로 노동자를 정리해고하겠다고 했던 산켄은 2018년, LG의 전류센서 생산업체인 ‘이케이(옛 지흥)’ 공장을 인수하기도 했다. 2017년 복직합의서에 서명한 ‘한국산연 공장 생산에 필요한 제반 시설을 갖춘다’는 합의는 지키지 않으면서 말이다.

“한국노동자이기 때문에, 민주노총 조합원이기 때문에”

경영상의 이유로 폐업을 했다는 것에 납득할 수 없는 한국산연 노동자들은 모회사 산켄전기의 위장폐업 결정에 대해 “노동조합을 혐오하고, 한국노동자들을 무시하기 때문에 일으킨 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산켄전기는 1996년 한국산연 노동자들이 민주노총에 가입하자 1997년 일본 주주총회에서 한국생산거점 철수와 인도네시아 이전을 결정했다. “1996년부터 현재까지 민주노총에 소속된 한국산연 노동자와는 같이 일할 수 없다며 정리해고를 단행해 왔다”고 했다.

호시탐탐 정리해고만 노리다가 코로나가 터졌고 산켄은 다시 폐업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한국산연 사장이 말하기를 ‘코로나로 인하여 한국노동자들이 최소 2~3년 일본으로 투쟁하러 오지 못한다, 이 기회에 공장을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공장이 정리됐다.

산켄전기 사장은 “5년 전(2017년) 한국노동자들이 원정투쟁을 마치고 원직복직한 것에 대해서 수치스럽게 생각한다”는 말까지 했다. “한국노동자들이 일본까지 와서 원정투쟁만 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산연 공장은 지금 해산되거나 청산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다.

일본 내 산켄전기 자회사 두 곳이 정리될 때엔, 길게는 1년 전 통보를 하고 계열사 배치전환을 협의하는 등의 절차를 밟아왔다. 그러나 한국산연은 폐업 통보조차도 본사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외투기업 규제법만 있었어도… “교섭 나올 때까지 싸울 것”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 산켄전기는 47년간 한국 땅에서 각종 혜택을 받으면서 동종업계 세계매출 8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일본 산켄전기주식회사는 1973년 마산수출자유지역에 100% 자본을 투자해 자회사인 ‘한국산연’을 설립했다. 47년간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라 법인세, 소득세, 취득세, 등록세, 재산세 및 종합토지세 등의 조세를 감면받았다. 공장 임대료로 ㎡당 약 900원 대의 저렴한 임대료로 생산활동을 해왔다.

“산켄전기 성장엔 한국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국에서 기업활동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한국산연 노동자들을 해고한 것은 명확히 위장폐업이고 불법폐업이다. 공장을 재가동해 12명밖에 남지 않은 노동자들을 충분히 채용할 수 있다. 산켄이 답변을 들고 교섭에 응해야 한다.”

노조는 산켄전기 측에 ▲한국산연 사태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생산공장 정상화 ▲복직 등 고용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24일 일본에서 산켄전기 주주총회가 열린다. 노조는 최고 결정기구인 주주총회에서 이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7년 8개월간의 일본 원정투쟁을 물심양면으로 도운 일본 시민들은 산켄전기 본사 앞 선전전 등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24일 주주총회장을 찾아 항의 투쟁도 벌일 예정이다. 이들은 한국산연 문제 해결을 위해 소액 주식을 모았고 1명의 대표가 주주총회에도 참석한다. 한국산연 사태에 대한 주주들의 답을 요구할 예정이다.

경남 마산 공장 앞 농성장에서, 서울 여의도 LG타워 앞에서, 마곡동 점거농성장에서 투쟁하고 있는 12명의 한국산연 노동자들 중엔 길게는 1990년부터 한국산연에서 일한 노동자도 있고, 결혼식을 앞둔 노동자도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산켄이 교섭에 나올 때까지 투쟁의지를 꺾지 않을 각오다.

“단식하다가 실려 나가거나 경찰에 끌려 나가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싸우겠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산연과 같은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외투자본 규제법 마련을 위한 대국회 사업과 대정부 사업도 계획하고 있다.

“외투자본 규제 법하나만 제대로 만들어져 있어도 교섭 자체가 막히진 않았다. 우리 노동자들을 교섭 상대로 보고 교섭이 제대로 이뤄질 때까지 싸울 것이다(오해진 지회장)”, “단식은 처음이라 무섭기도 하지만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잘 버틸 수 있다(백은주 교육선전국장).”

이들에게 24일 주주총회 투쟁이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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