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한미정상회담에 즈음한 시민사회단체 한일관계 입장문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한일관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취임 전부터 한일관계 개선의지를 강하게 피력해 온 윤석열 정부를 취임식에서 만난 하야시 일본 외무상은 “조속한 한일관계 개선에 서로 의견이 일치했다”라는 예사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이른바 한일관계의 ‘포괄적 접근’, ‘그랜드 바겐’ 등 굴욕적인 합의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다가온다는 분석이다.

특히 미국이 인도・태평양전략 실현을 위해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조해 온 것만큼 이번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방한에 이은 방일 행보에 시민사회의 촉각이 곤두 선다.

이에 일본군'위안부' 문제,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해 싸워왔던 정의기억연대, 민족문제연구소 등 대일 과거사 단체들과 시민사회가 18일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용산에서 ‘한일관계 입장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에서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기시다 일본 총리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한일 간 장애물을 제거하고 전체적인 한일관계 개선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윤석열 대통령의 리더십을 기대한다’는 친서를 전달한 직후 ‘평화헌법 개정을 천명’하는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다.”면서, “가해자가 가해 사실을 인정하기는커녕 피해자를 윽박지르고 과거를 왜곡하는 토대 위에 어떤 미래지향적 한일관계가 가능한가”라고 따져 물었다.

[입장문]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한미정상회담에 즈음한
시민사회단체 한일관계 입장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일본에 정책협의단을 파견하는 등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피력해 왔습니다. 과거사 문제 전반에 관한 ‘그랜드 바겐,’ ‘포괄적 접근’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며, 김대중-오부치선언 정신의 발전적 계승을 11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키기도 했습니다.

미 바이든 정부는 대중국견제, 인도・태평양전략 실현을 위해 한미, 미일간의 군사협력 뿐아니라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한일관계 개선을 강하게 주문해 왔습니다.

한일관계 개선을 바라는 윤석열-바이든 정부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오늘 시민사회는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한 입장을 밝히고자 합니다.

윤석열 정부가 한일관계 개선을 주문하는 사이, 아베 전 총리를 비롯한 일본 국회의원 100여 명은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묻혀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고, 기시다 총리는 공물을 봉납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 동원 현장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가운데, 자민당 의원연맹 간부들이 직접 시찰을 다녀왔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일본을 방문한 독일 숄츠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청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자민당은 평화헌법 개정을 참의원 선거 공약으로 내세우며 개정 추진 조직의 명칭을 ‘추진본부’에서 ‘실현본부’로 바꾸었습니다. 이어 일본 헌법 개정 절차를 정한 국민투표법 개정안이 중의원 헌법심사회를 통과했습니다.

‘2015 한일합의’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일관계 개선은 사실 적시에 기반한 일본 정부의 책임인정과 재발방지가 전제된 진정성 있는 사죄가 우선될 때 가능합니다. 말로는 평화, 관계 개선 운운하며, 과거를 반성하기는커녕 식민지와 전쟁을 찬양하고, 피해자를 윽박지르고 겁박하는 ‘어처구니없는’ 가해자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그 어떤 합의도 퇴행에 불과할 것입니다.

치유는커녕 피해자들의 상처에 더 큰 상처를 내고, 화해는커녕 갈등과 반목의 씨앗만 뿌린 ‘2015 한일합의’의 교훈을 윤석열 정부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대법원 판결의 신속한 이행으로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지난 2018년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은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가 불법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식민지배와 직결된 강제동원·강제노동이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식민주의 극복을 향한 역사적인 판결입니다. 또한 이 판결은 피해자들과 한국, 재일동포, 일본 시민들이 ‘65년 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한일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길을 제시한 한일시민연대의 역사적인 성과입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와 가해기업에게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끊임없이 요구해 왔습니다. 사실인정과 법적 책임의 인정, 사죄의 증거로서의 배상과 역사교육이 따르지 않는 사죄는 진정한 사죄가 아닙니다. 일본 정부와 가해 기업에게 진정한 사죄와 법적 배상을 통한 판결의 신속한 이행을 다시 한 번 요구합니다.

한국 정부는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여 피해자 중심적 접근을 바탕으로 강제동원 문제의 포괄적인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피해자의 존엄과 명예, 인권회복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아 일본 정부에게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며 당당하게 외교적인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반성없는 일본과의 군사협력은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일입니다.

지난 4월, 미국의 핵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가 우리 동해상에서 일본 자위대와 연합훈련을 진행했습니다. 당시 미일은 한국군에 한미일 3국 연합 해상훈련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일간 군사정보 공유를 넘어 한미일 군사협력이 가시화될 수 있음을 예측해 볼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2015 한일합의’의 배경에는 한미일 군사협력을 위해 한일관계 개선을 주문해 온 미국의 압력이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더구나 일본이 식민지배, 군국주의적 침략에 대한 사죄없이 평화헌법 9조 개헌을 강행하려는 상황에서 한미일 군사협력이 강화된다면, 일본의 재무장과 군국주의 부활을 용인하는 꼴이 됩니다. 한반도와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게 될 한미일 군사협력은 반드시 중단되어야 합니다.

한일관계는 마땅히 개선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2018년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을 빌미로 수출규제를 단행한 일본은 여전히 ‘한국이 해법을 가져오라’며 한 발짝도 물러서고 있지 않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를 비롯한 대일과거사의 정의로운, 원칙적인 해결은 한국과 일본이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한 출발점이며 동아시아 평화 실현의 밑거름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촉구합니다.

- 일본의 식민지 불법강점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죄·배상하라!

- 미국은 한일 과거사의 졸속적 해결과 한미일 군사협력 강요말라!

- 윤석열 정부는 대일과거사 문제의 원칙적인 해결에 나서라!

2022년 5월 18일

시민사회단체 한일관계 입장 발표 기자회견 참가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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