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대안 모색(11)
통일경제는 예측과 전망도 필요하지만 본질적으로 투철한 철학을 가지고 추진해야할 전략이자 정치경제적 실천행위이다. 따라서 통일경제론은 경제적 예측과 전망뿐만 아니라 통일경제 추진을 위한 주체적인 원칙과 방도가 포함되어야 한다. 여기에서는 통일경제를 추진하는데 요구되는 민족자주의 원칙, 자립적 민주경제와 자립적 통일경제의 병행추진의 원칙문제만 언급하기로 한다.
(1) 민족자주의 원칙
평화번영통일에 대한 벅찬 꿈과 희망을 불어넣었던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은 미국의 방해와 문재인 정부의 친미굴종적 태도로 인해 좌초되고 말았다. 이 같은 뼈저린 경험은 남북 간 합의를 이행하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간고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나 친미수구정권의 반통일 정책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멀쩡히 진행되던 경협사업조차도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처럼 좌초되고 만다는 것 역시 지난시기 남북경협의 교훈이기도 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첩경은 ‘민족자주의 원칙’을 고수하고 정상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4.27판문점선언 1조 ①항, 즉 첫 항목에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으며 이미 채택된 남북 선언들과 모든 합의들을 철저히 이행함으로써 관계개선과 발전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기로 하였다.”라고 밝혀져 있다. 6.15 공동선언 1조 역시 마찬가지로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라고 언명되어 있다.
‘민족자주의 원칙’, ‘우리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라는 원칙은 그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남북 스스로가 합의한 대원칙이다. 민족자주의 원칙이 모든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는 출발점이자 강력한 추동력이라는 뜻이다. 당연히 남북경협, 통일경제 추진 역시 이 원칙에 입각해야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뚫고 나갈 수 있는 힘을 만들 수 있다.
한미동맹을 우선하거나, 유엔의 제재원칙을 앞세우는 방식으로는 남북경협의 첫 관문조차도 시작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현실이다. 미국과 남측의 어떤 정권하에서도 지금처럼 남북관계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했던 시기는 없었다. 다른 한편, 민족자주의 길로 가자는 민중적 요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고, 국제정세 또한 자주화의 방향으로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추세이다. 민족자주의 원칙은 종이장의 공염불이 아니라 정권차원과 국민적 차원에서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실현할 수 있는 당면한 실천과제이다.

(2) 자립적 민주경제건설과 자립적 통일경제건설의 병행
남측 경제는 전형적인 예속과 불평등 경제이다. 이러한 모순구조를 해결하는 지향점은 자립적 민주경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출중심 경제, 자본주의 국제분업관계의 편입, 세계화에 대한 편승구조 속에서 일구어낸 경제성장의 경험이 너무나 강력하여, 자립적 민주경제로의 전환을 꿈도 꾸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IMF외환위기, 2008년 금융공황, 그 이후 장기침체와 저성장 구조, 최근의 코로나19위기 속에서 예속과 불평등의 모순이 격화되어 가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책은 수출경쟁력, 금융경쟁력 강화와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것밖에는 없다고 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 길은 세계화된 수출경제 속에서 배를 불려온 달러경제, 재벌경제, 수출대기업경제 말고는 다 죽는 길이다. 그 끝은 심각한 불평등, 빈부격차, 부채경제밖에 없다. 흡사 절벽으로 몰려가는 양떼들 같다.
자립적 민주경제의 길보다는 수출중심의 예속과 불평등의 길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첫째, 그동안의 양적 성장 경험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며, 둘째 남측 경제잠재력만으로는 자립적 민주경제로의 전환이 불가능하고 유지할 수 없을 거라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극복하려면 자립적 민주경제전략을 자립적 통일경제전략과 결합시켜야 한다. 남측만의 눈으로 보면, 기존의 수출주도경제전략을 계속 이어가자고 해도, 자립적 민주경제전략으로 전환하자고 해도 모두 딜레마에 빠지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중미대결시대가 도래함으로써 과거에는 수출과 국제분업에 유리했던 지정학적 조건이 이제는 딜레마적 상황으로 전환되었다. 자립적 민주경제를 추진하자고 해도 그 실현가능성 면에서 의문이 생기는 딜레마도 발생한다.
그러나 남북통일경제라는 전략, 동북아와 유라시아를 잇는 신흥경제 성장지대를 전망해 보면 대담한 선택지로서 손색이 없다. 남측의 시각으로만 보면 딜레마적인 상황이 남북통일경제라는 시야에서 보면 기회로 전환된다. 그야말로 위기가 기회로 바뀔 수 있는 전환기적 발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자립적 통일경제전략은 남측 자본진영도 상당 부분 동의할 수 있는 대안이다.
결론적으로 자립적 민주경제와 자립적 통일경제를 병행해서 추진해야 한다. 크게 보면 자립적 통일경제전략으로 포괄될 수 있다. 자립적 통일경제전략은 자립적 민주경제전략을 내포하고, 전제로 하며, 과정에서 병행하고, 결과로서 완성되는 관계에 있다.
민족자주의 원칙을 앞세우고 자립적 민주경제전략과 자립적 통일경제 전략을 동시에 밀고 나가면, 우리는 위기의 시대에 평화, 번영, 통일이라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3) 자립적 통일경제전략은 가장 뚜렷한 대안경제전략이다

자립적 민주경제, 자립적 통일경제는 진보민중진영의 대안 경제전략이다.
그 이유는 첫째로 가장 과학적인 대안이며, 둘째로 유일한 대안이며, 셋째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점에 있다.
첫째로 자립적 민주경제, 자립적 통일경제전략은 가장 과학적인 대안이다.
우리 사회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다양한 대안경제론이 존재한다. 신자유주의 경제를 지속하자는 주장에서부터,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과 선도경제론, 시민사회와 진보진영 내의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론이나 기본소득론, 사회적 경제론, 경제민주화론, 사회주의경제론 등 다양하다.
양적 성장 일변도의 신자유주의 경제론이나 한국판 뉴딜, 선도국가론 등은 결코 한국경제의 예속과 불평등이라는 기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심화시킬 뿐이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성장 그 자체도 담보할 수 없다.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론은 현재의 남측 경제력으로 볼 때 ‘중부담 중복지’ 수준에서 가능성이 있고 부분적인 기본소득 실행도 가능해 보인다는 판단에 입각해 있다. 이 점은 일정하게 의의가 있다. 그러나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는 제한적이다. 높은 수준의 복지국가나 기본소득은 어디까지나 자본주의적 성장을 전제로 한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폐해의 핵심인 불평등의 문제를 분배차원에서 해결하려고 하려는 것인데, 그 전제는 자본주의적 성장이다. 자본주의 성장이 있어야 분배가 가능하다는 원리에 입각해 있는데, 지금은 자본주의 성장이 무너지고 있는 경제시대이다. 경제침체기나 경제위기 시기에 사회민주주의나 복지국가론이 퇴색하고 정치적으로도 후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의 한국경제 역시 성장잠재력이 구조적으로 고갈되어 가고 있고, 상시적으로 경제위기, 금융위기에 노출되어 있으며, 과도한 대외의존경제로 인하여 미국자본과 재벌에 의한 막대한 이중적 과잉착취가 일반화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한미동맹에 따른 막대한 비용부담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이런 조건에서 사민주의적 복지국가는 부분적으로 분배를 개선할 수 있으나 불평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문제는 방법론에도 있다. 불평등을 해결하는 기본동력은 민중의 정치적 저항이다. 한국사회에서 소수정당이 의회활동만으로 높은 수준의 복지국가를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직 민중의 강력한 저항만이 불평등을 타파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도 사민주의는 방법론적 한계가 뚜렷하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마을 공동체 등 사회적 경제영역은 유의미한 경제분야이다. 이러한 경제형태들은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주의 부속경제로, 사회주의에서는 반사회주의적 형태로 그 기능과 역할을 달리한다는 특성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협동적 경제, 사회적 기업들의 발전은 경제의 민주화나 남북경협과 통일경제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의의가 과대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적 경제는 풀뿌리 경제나 지방경제 수준에서 의미를 갖기 때문에 OECD 10위 국가에 진입한 한국경제규모의 대안경제로까지 되기는 힘들다. 사회적 경제는 자립적 민주경제, 자립적 통일경제의 유의미한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경제민주화는 6월 항쟁 이후, 즉 민주화 이후 민주화를 위한 과제에서 핵심 화두로 등장한 사안이다. 그러나 매번 경제민주화는 좌절되어 왔다. 정치민주화는 검찰, 언론 등의 자유화로 귀결되었고, 경제민주화는 시장과 재벌의 자유화로 귀결되는 역설적 상황을 낳았다. 또한 날이 가면 갈수록 재벌들은 더 비대해지고, 글로벌하게 세계시장에서 초국적 자본과 종속적 계열관계로 진화해 가고 있기 때문에 통제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결국 정치자주화 없이는 정치민주화의 완성이 불가능한 것처럼, 경제 자주화 없이는 경제민주화도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역시 대안경제는 자립적 민주경제와 자립적 통일경제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자주적 민주경제론과 자립적 통일경제론은 보수진영의 성장론에서부터, 복지국가론, 기본소득론, 친환경경제론, 사회적 경제론, 경제민주화론의 긍정적 요소를 다 내포한다. 동시에 이들 경제론들이 외면해 온 분단경제, 예속경제에 대한 문제의식과 해법을 담고 있으며, 자본주의 경제와 사회주의 경제의 경제협력문제까지 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자립적 민주경제론, 자립적 통일경제론은 가장 과학적인 대안이다.

둘째로 자립적 민주경제론, 자립적 통일경제론은 유일한 대안이다.
세계화 시대에 한국경제의 양적 성장은 지정학적 요소가 강하게 작동하였다. 그러나 중미분리시대에는 그 지정학적 요소가 불리한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 같은 지정학적 딜레마 상황을 타개하고 불리한 상황을 유리하게 전변시키기 위해서는 민족적 힘을 만들어야 하며, 그 유일한 길은 자립적 통일경제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제도에 대한 선택이나 동맹관계를 중심으로 바라보는 것은 쇠퇴몰락의 길이다. 오직 통일경제만 중미분리시대의 지정학적 딜레마를 지정학적 축복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또한 탈세계화 시대의 유일한 대안이다. 세계화시대는 끝났다. 지구촌 모든 국가가 기간산업의 국유화, 핵심산업의 유턴, 식량자급의 길로 가고 있으며, 장기추세로 자리잡고 있고 불평등에 대한 대중적 저항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경제시스템의 격변기가 도래하고 있음을 말하며, 이 격변기에 대처하지 못한 정치경제적 리더십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경제의 자립화, 민주화, 통일경제로의 길은 한국경제의 유일한 선택지로 되고 있다.
셋째로 자립적 민주경제론, 자립적 통일경제론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이미 앞에서 구체적인 경협모델을 통해서 살펴보았듯이 자립적 통일경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실행할 수 있고, 그 효과 또한 즉각적이다. 자본주의 시장논리에 입각해 보아도 전망성이 좋은 한반도 경제라면, 자주적이고 민중적인 시각에서 시장논리보다 더 좋은 경제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국내 재벌세력이 되었든, 민중진영이 되었든, 미국 투자기관이나 투자자조차도 장밋빛으로 그리고 있는 통일경제를 당사자인 우리 민족과 민중이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자립적 민주경제, 자립적 통일경제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즉각 당장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여기에는 원칙과 신념, 용기와 실천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