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패권에 의한 금융팽창과 금융종속(10)

미국이 달러 체제를 통해 얻는 직접적인 이익은 크게 보면 두 가지이다. 하나는 달러를 발행하는 데에서 생기는 발행차익이고 다른 하는 미국의 금융·자본 시장을 중심으로 국제 자금순환이 이뤄지는 구조에서 얻는 이익이다.

*** 미국 연준 부의장을 지낸 피셔(Stanley Fisher)는 화폐 발행차익의 구성요소를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 바 있다. 하나는 경상수지에 나타나는 것으로, 달러의 외국 보유량이 증가함으로써 미국의 지출 증가를 가능하게 한다. 다른 하나는 자본수지에 나타나는 것으로, 달러가 이자가 붙는 청구권의 형태로 계속 유통되는 동안 생기는 순이자의 국내 유입(대외투자 수익)을 가능하게 한다. 여기에서 보듯, 피셔는 달러 발행과 유통에서 생기는 이익을 묶어서 화폐 발행차익이라고 표현하지만 이 글에서는 화폐 발행에서 생기는 이익만을 화폐 발행차익으로 규정한다.

달러 발행 이익

미국이 달러 발행을 통해 얻는 이익은 외국에서 유통되고 있는 달러 발행 규모를 통해 대략 추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미국이 발행한 달러 가운데 얼마만큼이 외국에서 유통되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1990년대 중반에 미국 연준 이사회의 스탭 이코노미스트들은 서로 다른 평가기법을 사용하여 계산한 결과, 1995년 말 기준, 달러의 미국 밖 사용 비율이 총 달러 발행량의 55~70%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Porter&Judson 1996). 그들은 또한 새로 발행하는 달러 발행액의 경우에는 약 75%가 외국에서 유통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 연준(FRB) 이사회의 또 다른 스탭이었던 알리슨은 1998년에 미국 의회에서 증언(Testimony to Congress)을 하면서, 미국 밖에서 유통되고 있는 달러 지폐의 규모가 전체 발행 지폐의 3분의 2가량 된다고 밝혔다(Theodore E. Allison 1998). 그는 미국 밖에서 유통되는 달러 지폐의 규모가, 증언 당시, 2,500~3,0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그로 인해 미국이 해마다 120~150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설명에 따른다면 미국은 미국 밖에서 유통되는 달러의 5%가량을 해마다 무상으로 얻고 있다. 알리슨은 미국 밖에서 유통되는 지폐량의 비율이 1960년대까지는 전체의 절반에 약간 못 미쳤지만 지난 40년 동안 증가했고, 특히 1990년대 들어 급속히 증가했다고 말한다. 1990년대의 미국 밖 달러 수요 급증 배경에 사회주의권의 자본주의 편입과 동아시아·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공기업 사유화가 놓여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중국의 세계시장 편입이나 여러 나라들의 공기업 사유화에서 거대한 달러 발행 이익을 얻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연구자 가운데 한 명인 저드슨(Ruth A. Judson)은 2017년에 국제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한 글에서 미국 밖에서 유통하고 있는 달러 규모가 2016년 말을 기준으로 전체 달러 발행량의 60%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또한 고액권인 100달러 지폐의 경우는 그 비율이 더 높아서 전체 발행량의 75%가 미국 밖으로 흘러나가는 것으로 그는 추산했다.

*** 암스트롱외(1993)는 또 다른 각도에서 100달러 지폐가 외국에서 많이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들에 따르면 외국에서 유통되는 달러 가운데 100달러 지폐가 차지하는 비중이 1965년에는 48.3%, 1975년에는 43.2%, 1985년에는 56.4%, 그리고 1990년대에 들어서는 70.1%로 대체로 증가세를 보였다(Amstrong P. et. 1993).

그에 따르면 미국 밖 달러의 수요는 1980년대 후반부터 급증하기 시작했으며, 2000년대 초반에 정점을 찍은 다음 2003년부터는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위기를 계기로 미국 밖 달러 수요가 다시 급증세로 돌아섰다. 화폐의 전자화로 실물 달러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최근의 전망에 대해, 저드슨은 앞으로도 달러 수요가 여전할 것이라고 보았다(Ruth A. Judson 2017). 그 근거 가운데 하나로 그는 금융위기 때에 생기는 달러의 가치저장 수단 기능을 들었다.

이제 미국의 화폐 발행량을 보면, 1965년에 유통 달러 지폐의 금액은 약 380억 달러였고, 1975년에는 776억 달러로 두 배가량 증가했다. 1985년에는 1,820억 달러로 다시 두 배가량 증가했고, 1995년에는 4,015억 달러로 또다시 두 배가량 증가했다. 2005년에는 7,766억 달러로 역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여기에서 보듯이 달러 발행량이 10년마다 거의 두 배씩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에는 이른바 양적 완화정책의 영향으로 달러 발행량이 급격하게 증가한다[그림 1]. 달러 발행량이 2010년에는 1조 9,700억 달러, 그리고 2015년에는 3조 6,100억 달러였다. 2020년에 미국 안팎에서 유통되는 화폐량은 5조 3,484억 달러에 이르렀다(한국은행(Ecos)).

미국이 발행한 달러의 3분의 2가량이 외국에서 유통되는 것으로 가정한다면 2020년 말 기준으로 3조 5,600억 달러가량이 외국에서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이 금액에서 해마다 미국이 얻는 이익은, 위의 알리슨(Theodore E. Allison)이 증언한 대로 5%에 이를 경우, 1,780억 달러가량이나 된다. 미국이 얻고 있는 화폐 발행 차익이 거대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수지 적자 메우기

미국은 자국의 금융·자본 시장을 중심으로 국제 자금순환이 이뤄지고 있는 구조에 의해서도 이익을 얻는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상품/서비스 거래가 발생하면 거기에는 대금의 결제가 뒤따르고, 이와 관련된 국제 금융시장이 함께 발전한다.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상품/서비스 대금 결제뿐만 아니라 단기·장기 자금 거래, 채권이나 주식과 같은 청구권 거래도 일어난다. 이러한 국제 금융시장에서 미국의 주변국 투자자들이 미국 달러로 표시된 금융자산에 투자하기를 원하기만 한다면, 미국 정부는 재정적자를 낼 수 있고 가계는 낮은 비용으로 돈을 빌릴 수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채무국이지만 다른 채무국에 긴축을 재촉하면서도 자기는 채무에 따른 금융 속박 없이 행동하는 것이 가능하며, 재정적자에 발목이 잡히지 않고서 확장 재정을 지속할 수도 있다.

한 나라가 국제 거래에서 적자를 내면 그 나라는 최종적으로는 그 나라가 가진 자산을 결제 대금으로 사용해야 한다. 과거 금이 화폐로 사용되던 때라면 그 나라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금으로 결제 대금을 지급해야 했다. 금이 세계 공통의 화폐로 사용될 때 금을 적자 대금의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이처럼 가치를 가진 화폐(이미 가지고 있는 화폐이거나 자산을 처분하여 마련한 화폐)로 적자 대금을 결제하는 것을 “자산 결제”라 한다.

이와는 달리 국제 거래에서 발생한 적자를 어음이나 채권을 발행하여 지급할 수도 있다. 이처럼 부채 증서를 발행하여 적자 대금을 지급하는 것을 “부채 결제”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부채에 의한 결제는 “원리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한 나라의 적자가 증가하여 부채가 계속 쌓인다면 그 나라가 부채를 상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채권국가들이 의문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미국은 국제 거래에서 대규모 적자를 내면서도 부채에 의한 결제를 지속하고 있다. 미국은 금과 달러의 연계를 끊은 1971년부터 이미 수지 적자에 대해 “부채 결제”를 하고 있다.

미국이 발행하는 달러의 “대부분”은 원래 어음에서 발전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달러는 일종의 부채 증서라 할 수 있다. 부채 증서에서 발전해 온 화폐를 신용화폐라고 하는데 그 본질이 부채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미국이 만약 달러를 발행하여 적자 대금을 지급한다면 미국은 부채에 의한 결제를 하고 있는 것이다. 부채는 나중에 갚아야 한다는 점에서 미국은 언젠가는 자국의 자산으로 이를 청산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부채 청산을 언제까지든 미룰 수 있다면, 미국은 사실상 부채를 안 갚아도 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 달러는 연준이 금이나 미국 국채를 담보로 발행한 것과 은행이 어음을 담보로, 또는 자기 신용을 바탕으로 발행한 것이 있다. 오늘날 국제적으로 유통되는 달러의 대부분은 은행 시스템을 통해 발행된다.

*** 부채에 의한 결제를 한다고 해서 이것이 미국이 적자대금을 지급하기 위해 실제로 달러를 발행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떤 나라가 미국에 대해 흑자를 내면 그것은 그저 미국 은행의 계좌에 그 금액만큼 예금으로 기록될 뿐이다. 미국의 은행들은 이 예금을 활용하여 대출을 늘려나갈 수 있다. 따라서 미국과 주변국 사이에서 수지 불균형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는 금융자산의 증가로 이어진다.

*** 판소리 흥보가에는 흥보가 박을 타는 대목이 나온다. 흥보가 박을 타자 그 안에는 돈 궤짝이 들어 있었는데, “궤짝을 떨어 붓고 나면 도로 수북, 톡톡 털고 돌아보면 도로 하나 가득하고, 부어 내고 부어 내고” 그치지 않고 돈이 계속 나온다. 미국이 부채에 의한 결제를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은 흥보가 돈 궤짝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안숙선 소리, 판소리 흥보가 가운데 “박 타는 대목”),
https://www.youtube.com/watch?v=xUyApDHOdXg, 2021.4.12 검색.

미국은 1980년대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상품/서비스 수지 적자를 내고 있다[그림 2]. 미국의 상품/서비스 수지 적자는 1980년대 들어서서 서서히 증가하다가 2000년대 들어서면 그 증가세가 급격해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기간에 적자 규모가 잠시 줄어들었지만 곧 바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미국이 상품/서비스 수지 적자를 내고 있다는 사실은 대외 지급을 위한 부채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상품/서비스 수지 적자가 생기면 이는 대체로 미국 재정적자로 연결된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Stephanie Kelton 2020). 돈의 흐름을 보면 주는 쪽이 있으면 받는 쪽이 있기 때문에 이를 장부에 기록하면 한쪽은 흑자로 나타나고 다른 쪽은 적자로 나타난다. 그런 면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표현한다. 한 나라 안의 돈의 흐름은 균형을 이룬다. 돈의 흐름은 크게 정부 부문, 민간 부문, 외국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는데, 정부 재정 수지와 민간 부문 재정 수지, 외국 부문 재정 수지는 균형을 이뤄야 한다. 균형을 이룬다는 의미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한 쪽이 흑자를 내면 다른 쪽에서 적자를 내는 방식으로 세 부문을 합하면 결국 0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부 부분이 재정 수지 적자를 내면 이를 메울 수 있을 정도로 민간 부문이나 외국 부문에서 재정 수지 흑자를 내야 한다. 민간 부문이 수지 적자를 내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대체로 흑자를 지속한다. 그렇다면 정부 부문의 재정 수지 적자는 대외 부문의 흑자에서 메워져야 한다.

대외 부문이 흑자를 낸다는 것은 자금이 미국 밖에서 미국으로 흘러들어 간다는 것을 뜻한다. 자금이 미국 밖에서 미국으로 흘러 들어가려면 주변국들이 상품/서비스 교역에서 흑자를 내야 한다. 이러한 연결고리를 통해서 미국의 재정 수지 적자는 주변국들의 상품/서비스 수지 흑자로 나타난다. 주변국들의 상품/서비스 수지 흑자는 곧 미국의 상품/서비스 수지 적자이다. 결국 미국은 정부가 재정 수지에서 적자를 내면 상품/서비스 수지에서도 적자를 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이른바 “쌍둥이 적자”).

이러한 메커니즘에 따라 미국의 상품/서비스 수지 적자가 증가하면서 재정수지 적자도 대체로 비슷한 모습으로 늘어났다. 1980년 이후 미국의 재정수지 추이를 보면 지속적으로 적자를 내는 모습이다[그림3]. 특히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 몇 년 동안은 재정적자 규모가 GDP 대비 10%를 넘을 정도로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미국이 지속적으로 나라 빚을 낼 수 있는 이유는 달러 중심으로 돌아가는 국제 금융시장 덕분이다. 미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민을 덜 하면서 더 많은 나라 빚을 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미국이 나라 빚을 내기 위해 발행하는 국채의 많은 부분을 외국의 중앙은행이나 민간 투자자들이 사주기 때문이다(사실은 어쩔 수 없이 보유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강하지만). 바수데반(Ramaa Vasudevan)은 이를 “고통 없는 적자의 경이로운 비밀”이라 표현한다(Ramaa Vasudevan 2008).

미국은 1970년대 경험을 통해서 상품수지와 재정수지 적자가 늘어나더라도 이것이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971년의 달러-금 교환 중지 선언 이후 달러의 유통이 과연 순조로울까에 대해 많은 비관적인 전망도 있었지만 그럭저럭 달러 중심의 국제 금융 체제가 유지되었던 것이다. 주변국에서 미국 금융시장으로 자본이 계속 유입된다면 상품수지와 재정수지의 적자가 큰 문제가 되지 않으며, 부채에 의한 결제를 늘려서 이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미국은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미국 바깥에서 미국으로 자본이 계속 흘러 들어가는 것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미국은 여러 금융제도를 바꿔나갔다. 1980년대 초에 미국은 미국 안에다 역외 금융시장(International Banking Facilities)을 설치하여 여러 혜택을 주었다. 또한 외국인들이 얻는 이자소득에 부과하던 30%의 원천징수를 폐지함으로써 외국인들이 미국 국채를 더 많이 보유하도록 장려했다. 미국은 외국인 대상 증권을 유럽과 일본 시장에서 발행하기도 했으며, 국제 투자자들을 유인하기 위해 익명을 보장하는 소지인 지급 채권(bearer bond)의 발행을 허용하기도 했다(Searbrooke L. 2001).

미국은 또한 주변국들로 하여금 금융시장을 개방하게 함으로써 서로 의존하는 여러 금융 통로를 만들고 이를 통해 자금이 흐르게 함으로써 자국의 적자를 좀 더 손쉽게 보전하고자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1980년대부터 미국 주도로 금융 개방과 자유화가 세계적으로 추진된다(Helleiner 1994). 실제로 미국은 이러한 금융의 통합 덕분에 수지 적자를 큰 긴장 없이 보전해나갈 수 있었다. 현재까지도 주변국들은 미국에서 흑자를 낸 자금을 도로 미국으로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다.

대외 부채가 대외 자산보다 많음에도 투자 수익 올리기

미국은 대외 자산보다 대외 부채가 더 많은 순부채 국가이다. 곧, 미국이 주변국들에 투자한 돈보다 주변국이 미국에 투자한 돈이 더 많다. [그림 4]에서 보듯, 미국의 대외 투자와 주변국의 미국에 대한 투자는 특히 2000년대 초반부터 더욱 급격하게 증가하는 모습이다. 이 국면은 미국이 9.11테러를 계기로 금리를 아주 낮은 수준에 유지하면서 달러 발행량을 늘렸던 시기이다.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에도 대외 투자와 대외 부채는, 잠깐 주춤한 기간을 제외하고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특히 양적 완화 정책이 시행된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에 대외 부채의 증가 속도가 대외 자산 증가 속도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에 미국의 순대외 부채는 더욱 급격하게 증가했다.

미국의 투자 수지 흐름이 바뀌게 된 것은 1980년대 들어서부터다. 1960~70년대에는 미국에서 미국 밖으로 나가는 자본이 더 많았다. 그러다가 1980년대 초부터 외국에서 국채 구입 자본이 대량으로 미국으로 흘러들어가면서 미국은 자본 수입국으로 바뀐다. 그리하여 미국은 1980년대에 순채무 국가가 되었지만 그렇더라도 이것이 미국의 대외 투자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대외 투자가 계속 늘어났지만 주변국의 미국에 대한 투자가 더 늘어났기 때문에 미국의 마이너스 대외 순자산(대외 순부채)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증가했다. 이는 순액으로만 보면 주변국들이 미국에 투자한 금액만 남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 19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금융자산이 팽창한 배경에는 이와 같은 대외 투자의 증가가 자리 잡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당연히 주변국들이 순 투자 수익을 내야 하지만 실제로는 거꾸로 미국이 투자 수익을 얻고 있다[그림 5]. 미국의 투자 소득 수입에서 투자 소득 지급을 뺀 순투자 소득의 흐름을 보면 그것이 2000년대 들어 큰 폭으로 증가하기 시작하다가 양적 완화 정책을 시행한 2008년부터는 더욱 급격하게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양적 완화가 미국에게는 거대한 대외 투자 수익을 남겨주는 정책이었던 셈이다. 달리 말하자면, 자산 가격을 끌어 올리는데 그 본질이 있는 양적 완화 정책의 목표가 실제로 실현되어 세계적인 자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면 이는 미국의 투자 수익 증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미국이 대외 자산보다 대외 부채가 더 많음에도 투자 수익을 올리는 주요한 이유는 주변국이 미국에서 보유하는 자산은 수익률이 낮은 국채 등으로 구성된 데 비해 미국이 주변국에서 보유하는 자산은 수익률이 높은 주식 등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외 채무가 갖는 특수성은 대외 자산의 수익률이 대외 부채 수익률보다 체계적으로 높다는 점에 있다. 구린차스와 레이(Gourinchas and Rey)가 1973년에서 2004년에 걸친 기간을 대상으로 연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이 외국에서 받아오는 대외 자산 수익률은 11.0%였고 미국이 외국에 지급하는 대외 부채의 수익률은 7.7%였다(Gourinchas and Rey, 2005).

미국의 대외 자산 수익률이 대외 부채 수익률보다 높다는 사실은 미국의 상품/서비스 수지 적자가 지속 가능하다는 중요한 논거 가운데 하나이다. 대외 투자 수익을 올리고 있는 미국은 그것을 밑천으로 삼아서 주변국에서 추가적으로 돈을 빌려올 수 있다는 것이다. 구린차스와 레이도 같은 주장을 한다. 미국의 대외 자산 수익률은 대외 부채 수익률보다 1.43배가 더 크다. 따라서 그들은 미국의 대외 부채가 대외 자산보다 1.43배가 더 많더라도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미국이 주변국에서 돈을 빌려오는 대가로 이자를 지급하더라도 그것이 미국이 대외 투자에서 올리는 수익보다 작다면 별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미국의 대외 부채가 많다는 사실이 미국에게는 생각보다 덜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주변국들이 미국에서 보유하는 자산은 대부분 달러로 표시되어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이 주변국에서 보유하는 자산은 그 나라 화폐로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미국은 환율을 유지해야 할 책임이 없기 때문에 달러의 화폐가치를 정책적으로 떨어트릴 수 있다. 이는 미국이 대외 부채의 실질적인 규모를 줄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만큼 대외 부채의 규모가 미국에 주는 부담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주변국들은 대외 자산(달러 표시 자산)의 실질적인 가치 하락에 따른 부담을 떠맡아야 한다.

[참고 문헌]

Eric Helleiner(1994), States and the Reemergence of Global Finance, 정재환 역(2010), 『누가 금융 세계화를 만들었나』, 후마니타스.
FRB(2006), “The Use and Counterfeiting of United States Currency Abroad”, Part 3.
Pierre-Olivier Gourinchas & Hélène Rey(2005), “From World Banker to World Venture Capitalist: US External Adjustment and the Exorbitant Privilege”, NBER working paper No 11563.
Pierre-Olivier Gourinchas & Hélène Rey(2007), “International Financial Adjustment”,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Vol. 115, No. 4 (August 2007).
Philip Amstrong, Andrew Glyn, John Harrison(1991), Capitalism since 1945, 김수행 역(1993),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 동아출판사.
Ramaa Vasudevan(2008), “The Borrower of Last Resort: International Adjustment and Liquidity in a Historical Perspective”, Journal of Economic Issues Vol 42. no4.
Richard D. Porter and Ruth A. Judson(1996), “The Location of U.S. Currency: How Much Is Abroad?”, FRB.
Stephanie Kelton(2020). The Deficit Myth, 이가영 옮김(2021), 적자의 본질, 비즈니스맵.
Theodore E. Allison(1998), “Overall Impact of euro banknotes on the demand for U.S. currency", Testimony to Congress.

미국 상무부 경제분석국(BDA).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FRED(Federal Reserve Econmic Data).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

원문 블로그 https://blog.naver.com/polec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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