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만난 사람, 윤장혁

▲전태일을 닮은 사람으로 추천된 금속노조 울산지부 윤장혁 지부장을 전국노동자대회 현장에서 만났다.
▲전태일을 닮은 사람으로 추천된 금속노조 울산지부 윤장혁 지부장을 전국노동자대회 현장에서 만났다.

51년 전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11월 13일, 평화시장 인근 동대문 앞 도로에는 2만여 명의 노동자가 결집했다. 이들은 모두 청년 전태일을 닮고 싶어한다. 노동자 윤장혁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다.

“금속 울산지부 깃발 아래 있어요” 전화기 넘어 윤장혁 지부장의 목소리는 집회 대오가 외치는 구호 소리와 섞여 묘한 흥분을 자아냈다.

윤장혁에게 전태일이란? “헌신”이라고 답하는 그의 모습에선 3천여 금속노동자를 노조에 가입시켜 울산지부 조합원을 두 배로 늘린 조직가의 카리스마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푸근한 그의 인상에선 배를 곯고 잔업하는 여공들을 위해 풀빵을 사던 청년 전태일의 온기가 느껴졌다.

개량주의에 대해

노동운동 내에 침습한 조합주의, 노사협조주의 등 개량주의화 경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윤장혁 지부장은 “조합원들의 힘을 믿고 투쟁을 조직하는 데 중심을 두지 않고, 몇몇 노조 간부의 실력만 믿고 협상에 의존하면서 개량주의가 싹텄다.”면서 “전태일 열사도 자신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나 노조도 만들고, 단체행동에도 떨쳐나서 노동기본권을 쟁취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던질 수 있었지 않았겠냐”며 변혁성과 개량은 노동자에 대한 믿음 여부로 갈린다고 단언했다.

▲윤장혁 지부장이 금속노조 위원장 후보로 출마하자 고강알루미늄지회 조합원이 울산에서 올라와 노동자대회 현장에 “반격! 승리하는 금속노조” 현수막을 들고 선거를 돕고 있다.
▲윤장혁 지부장이 금속노조 위원장 후보로 출마하자 고강알루미늄지회 조합원이 울산에서 올라와 노동자대회 현장에 “반격! 승리하는 금속노조” 현수막을 들고 선거를 돕고 있다.

조직의 귀재

전태일 투쟁 51주년이 되는 오늘까지도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350만 노동자가 버젓이 존재한다. 윤장혁 지부장은 이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청년 전태일 때나 지금이나 우선 노조에 가입해야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자동차 부품사와 조선소 하청노동자 수가 가장 많은 울산에서 지부장을 하는 동안 이들을 노조에 가입시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다.”

실제로 윤장혁 지부장은 임기 2년 동안 노조 확대 사업을 전면적으로 벌여 3천 명도 안 되던 금속 울산지부 조합원을 6,164명까지 늘려놓는 신화적인 기록을 세웠다.

조직 확대의 비결을 묻자 그는 이번에도 ‘투쟁만능주의’를 설파했다.

노동자에게 노조 있는 사업장과 노조 없는 사업장 중 조건이 같다면 어디를 다니고 싶냐고 물으면 대부분 노조가 있는 쪽을 택한다. 문제는 이런 마음을 모아 노조를 만들 용기를 내지 못하는 데 있다. 울산지부는 부품사 단지를 돌며 노동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했다. 자신을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해주는 금속노조에 마음을 주게 되고 점차 노조를 결성할 용기가 자라났다. 결국 투쟁이 노동자에게 노조에 대한 믿음을 주고, 행동할 용기를 준 것이다.

윤장혁 지부장은 이렇게 투쟁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전혀 과격해 보이지 않는 희한한 능력을 가졌다.

그에게서 노조 확대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청년 전태일이 “나에게 대학생 친구 한 명만 있었어도”라는 바램을 가졌었다는 평전 속 글귀가 생각났다. 아마 지금 전태일이라면 “나에게 윤장혁 같은 친구 한명만 있었어도”라고 생각할 것 같다.

청년 전태일에게 진보정당이 있었다면

노조가 아무리 투쟁을 해도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국 정치권력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노동자의 최대 불행은 노동자 자신의 정당이 집권하지 못한 것 아닐까?

“백번 옳은 말”이라며 맞장구를 친 윤장혁 지부장은 "노동운동의 역사는 두 가지다. 하나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이고, 또 하나는 정치권력 쟁취 투쟁이다. 노동운동이 처음 일어나 영국에서도 그랬고, 3.8여성의날이 제정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도 당시 선거권 획득 투쟁이었다. 당연히 모든 노동자는 자기의 정당을 가져야 하고, 그 정당이 집권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새로운 노동운동은 당중심 노동운동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과거 한국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는 엄격하게 말해 실패했다. 노조 간부 중심의 상층 당활동과 진보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의결하는 방식으로는 노동자가 정치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노동자 직접정치시대를 열어야 하고, 노동자 당원이 확대되어 현장마다 당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 현장 당조직이 당의 집권전략을 노동자 자신의 것으로 되게 하는데 힘을 쏟으면, 자연히 기층에 튼튼히 뿌리를 내린 노동자의 당을 건설할 수 있다. 또한 노조를 먼저 꾸리고 당원을 조직하는 방식이 아닌 현장 당조직을 먼저 내오고 당조직이 주체가 되어 노조를 건설하는 방식도 시도할 수 있다. 이런 진보정당에 조합원의 10%는 당원으로 가입해야 하지 않겠나.

1970년 청년 전태일이 2021년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한다면, 아마 노동자 직접정치를 부르짖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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