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10월 20일 전국 14개 지역에서 총파업을 벌였다. 민주노총은 이후에도 11월 13일 전국노동자대회, 2022년 1월 민중총궐기로 불평등사회를 바꾸기 위한 투쟁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보수언론은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대해 “코로나 시국에 웬 파업이냐?”라며 “민주노총이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고 투쟁만 일삼는다”고 비난한다. ‘민주노총의 사회적 책임’이란 말을 듣고 있자면, 나라가 어려운데 노조가 파업하면 ‘민폐’이니 어지간하면 참아야 하고, 노사정 대화에 무조건 참여해야 하고, 정규직 노동자는 임금을 털어 비정규직 노동자를 도와야 하고, 노조는 주말에 사회봉사 활동을 해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

민주노총에 ‘사회적 책임’이란 프레임을 걸어 민주노총을 압박하는 것은 보수언론의 상투적 수법이며 단골 메뉴다. 총파업뿐만 아니라 민주노총이 노사정 대화 기구 참가를 논의할 때도, 제1 노총으로 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보수언론만 그러는 것도 아니다. 한때 진보언론으로 자타가 공인했던 한겨레신문도 2019년 사설에서 “제1 노총이 된 민주노총의 어깨가 더욱더 무겁다”며 “민주노총은 정부 내 위원회 위원 수 조정 등을 요구하고 나섰는데, 권리만큼 ‘사회적 책임’ 또한 크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민주노총에 ‘사회적 책임’을 주문했다.

▲ 10월20일 서울 서대문역 사거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총파업 대회 [사진 : 뉴시스]
▲ 10월20일 서울 서대문역 사거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총파업 대회 [사진 : 뉴시스]

한겨레신문의 지적대로라면 지금 민주노총이 제1 노총으로서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부가 2019년 민주노총을 제1 노총으로 공식 인정한 후에도 달라지는 게 없다.

정부위원회에 노동 참가는 아직도 한국노총을 우선 배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민주노총은 최저임금위원회 구성과 관련해 현재 ‘5(한국노총):4(민주노총)’로 되어 있는 위원 배정을 바꾸자고 정부에 제기했으나 무시하고 있고, 한 명이 참가하는 정부위원회는 보통 한국노총에 배정하고 있다.

민주노총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에서 ‘노조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국제표준화기구(ISO)는 2010년 11월 ISO26000 표준화 지침을 발표했다. ISO는 나라마다 다른 산업, 통상 표준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표준을 개발하고 보급한다. ISO26000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규정한 세계적인 표준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기업이 이윤 추구 활동 이외에 법령과 윤리를 준수하고, 이해관계자(노동자, 주주, 지역주민, 협력업체, 소비자 등)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서 기업이 성장하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활동을 할 책임을 말한다.

ISO26000 표준화 지침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규정하는 것이 목적인데 이명박 정부가 이것을 ‘노조의 사회적 책임’으로 둔갑시켰다. 국외에도 ‘노조의 사회적 책임’(USR; Union Social Responsibility)을 언급하는 일부 학자가 있지만, 이것을 국내에 본격적으로 도입, 왜곡, 적용한 것은 이명박 정부다.

이명박 정부는 2011년부터 발효하는 ISO26000 표준화 지침을 악용하여 공공기관 노조를 공격하는 무기로 써먹었다. 공공기관 상층 관료들의 부정부패, 무사안일, 무능력이 불러일으킨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인식을 지렛대로 삼아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구호는 공공기관의 선진화와 효율화였다. 공공기관의 방만한 경영 원인이 과다한 인력과 높은 인건비에 있다는 것을 구실로 대대적인 인력감축과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했고 여기에 협조하는 것이 ‘노조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강박했다. 당연하게도 언론이 이에 장단을 맞췄다. 이렇게 ‘노조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은 노조를 공격하고 노사협조주의를 부추기는 효과적 수사로, 하나의 프레임으로 변했다.

권리 없이 책임 없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권리에는 책임이 따르고 책임은 권리를 전제로 한다. ‘사회적 책임’을 따지자면 ‘사회적 권리’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노조 또는 민주노총은 어떤 사회적 권리를 가졌는가?

한겨레신문 사설에서 민주노총이 정부 내 위원회 위원 수 조정을 요구하는 것을 권리라고 했는데 그것은 민주노총이 조직사업을 펼친 성과로 보장받아 마땅한 일이지 민주노총이 요구하고 그 누가 검토하고 부여할 권리의 성질이 아니다. 그런데도 2년이 넘은 지금도 정부는 위원회 수 조정을 미루면서 제1 노총으로서 민주노총이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를 주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노조 또는 민주노총은 그 어떤 사회적 권리도 없다. 사회적 권리가 있다면 왜 민주노총이 청와대 국민청원이나 국회 국민동의 청원이라도 해서 노동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하겠나?

민주노총이 그간 달성한 국회 국민동의 청원만 하더라도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라는 개정안’,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을 위한 청원’, ‘교육 공무직, 돌봄교실 노동자들의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한 교육 관련법 개정안’ 그리고 민주노총과 시민사회가 함께 만들어낸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청원’ 등이 있다. 하지만 국회는 아무런 답변이 없다. 민주노총은 청원에 대한 답변을 받을 권리도 무시당하고 있다.

현 정부는 그들이 필요할 때는 50분 전에 전화로 민주노총 사무실 방문을 통보하고, 주인이 가능하지 않다고 해도 이를 무시하고 방문하는 ‘쇼(Show)’를 벌였다. 그런데 막상 민주노총이 노정 교섭을 요구할 때는 대화도 응답도 하지 않더니 총파업 집회는 일방적으로 봉쇄하고 탄압했다. 여기에 무슨 ‘민주노총의 사회적 권리’가 있나?

한국에서는 노조의 사회적 권리는 고사하고 노조 고유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다. 민주노총 소속 노조 중 노동삼권을 온전히 보장받고 있는 노조가 과연 얼마나 되겠나. 전교조, 공무원노조, 공기업노조(필수유지업무 제도로 인해 공기업노조의 파업권은 심각하게 제한되고 있다), 특수고용노조, 플랫폼노조 등이 노동삼권을 온전히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절대 많지 않다.

그 누구도 민주노총에 사회적 권리를 부여하지 않았다. 사회적 권리가 없으니 사회적 책임도 없다. 민주노총에 권리가 있다면 그 누가 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쟁취한 것이다. 민주노총이 힘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고립과 배제를 극복하기 위해 노동자가 오래 투쟁한 결과며 민주노총으로 뭉친 노동자들의 힘이다.

물론 민주노총에 책임과 의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외부에서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무슨 권리를 줘서 그 대가로 가지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짊어지는 책무다. 민주노총의 책무는 우선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의 운명을 책임지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천만 노동자의 노동과 삶을 책임지는 계급적 책임이다. 그리고 오천만 민중, 팔천만 겨레의 행복을 위해 나라와 민족의 가장(家長)으로서 걸머지는 국가적, 민족적 책임이다.

노동자와 민중, 시대가 부여한 책무를 다하기 위해 오늘도 민주노총은 전진한다. 민주노총은 10월 20일 역사적 총파업을 성사한 힘으로 11월 13일 전국노동자대회를 거쳐 2022년 1월 민중총궐기의 주역으로 나선다. 민주노총이 총대를 메고 불평등사회를 바꾸며 사회 대변혁의 길을 열어나간다. 이것이야말로 민주노총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길이다.

마지막으로 민주노총을 비난하기 위해 ‘사회적 책임’을 운운하는 일부 언론인과 식자(識者)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사회적 책임? 너나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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