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9일, 이명박이 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 우연히 옛 동창을 만났다. 전직 대통령 보좌관까지 했던 유력 인사다. 한다는 말이 “이제 전선이 명확해져서 좋잖아?”였다. 보수를 반대하는 대열에 모두 다시 뭉치게 됐으니 이제 서로 싸울 일이 없어서 좋지 않냐는 말이다. 몇 년간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있으면서 마음고생이 꽤 심했나 보다.

취임 초기의 기대가 무색하게 전직 대통령은 많은 실정을 했다. 파견법 개악, 기간제법 제정, 한미FTA, 이라크 파병, 대연정 등 노동자와 민중의 이익에 어긋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민중 진영과 갈등을 빚었다. 내 동창은 그게 힘들었던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 유력 대선후보 중 한 명인 이재명 경기지사 캠프에서 지난 8월 31일 ‘노동이 있는 대선,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전직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냈던 한 인사는 “민주·진보 진영에서 노동 없는 대선이 진행되는 반면 보수 야당에서는 노동 혐오가 판치는 대선이 진행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언뜻 생각하면 올바른 지적인 것 같다. 그러나 주체가 틀렸다. 그렇게 말하면 진보정당들이 섭섭하다. 노동 없는 대선을 하는 것은 민주·진보 진영이 아니라 집권당인 여당 후보들이다.

‘민주·진보 진영’? 예전에는 ‘진보·개혁 진영’이라는 말도 많이 썼다.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은 왜 진보가 내 편이라고, 한 묶음이라고 생각할까? 진보에 좀 묻어가 보려는 생각일까? 아니면 ‘너희가 어쩌겠냐?’하는 고약한 심보일까?

진보는 시대 발전에 발맞춰 나아간다는 뜻이다. 보수는 기득권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지 변화니, 발전이니 따위는 안중에 없다. 시대는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고 요구를 실현하려는 민중이 바꾸고 발전시킨다. 민중의 다수이며 핵심은 노동자다. 따라서 진보의 기준은 노동자를 대하는 관점과 입장이다.

20대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에서 후보 경선이 한창이다. 후보들의 노동관을 살펴보자. 화장하기 전 민얼굴을 보기에는 요즘이 딱 좋다.

언급할 가치도 없지만, 구색을 갖추기 위해 국민의힘 후보들의 노동관을 먼저 보자.

윤석열은 “주 120시간 노동”으로 노동 유연화를 시사했고,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으로 노동을 모독했다. 홍준표는 “경남지사 시절 강성 노조와 싸워본 경험을 바탕으로 대통령 긴급명령을 발동해서라도 강성, 귀족노조의 패악을 막고 노동 유연성을 높이겠다”라며 노동조합에 조선일보식 강성, 귀족노조 프레임을 덧칠하고 있다. 최재형은 “노조가 법 위에 군림하고 노조 활동이 치외법권으로 인식되던 관행을 뿌리 뽑겠다”,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노사 관계에서 공정한 심판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겠다”라며 노조가 파업하면 정부가 주문처럼 외우는 ‘법과 원칙’을 운운하고 있다. 노조를 척결 대상으로 여기는 이 자들이 집권한다면 노동조합들을 파시즘적으로 탄압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국민의힘 후보들이야 극우 보수들이니 그들의 노동관은 그럴 수밖에 없다. 오히려 솔직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의 노동관이다.

야당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노동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데 기세를 올리지만, 여당 후보들은 대선 경선이 한창인데도 이렇다 할 견해를 밝히지 않는다. 이게 문제다. 물론 어느 후보는 한국노총을 찾아가기도 하고, 어느 후보는 공약을 다듬고 있다고 하지만 이게 다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여당 후보들이 노동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는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이다. 신념은 내팽개치고 항상 표 계산만 하는 더불어민주당의 ‘기저질환’이 드러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중에는 오히려 노동문제에 대해 극우 보수들과 입장을 같이 하는 후보도 있다. 박용진은 “민주노총은 대화 테이블을 박차고 나가고 총파업만 부르짖으면서 스스로 정치적 영향력을 축소하는 일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라면서, “대공장·정규직·고임금 노동자만을 위한 노동운동이 아닌 노동조합조차 없는 90%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운동이 돼야”하고 “전태일의 풀빵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주제넘게 충고했다.

이 주장은 민주노총에서 비정규직 조합원 비중이 30%를 넘었고, 민주노총의 중심 사업방향이 비정규직과 5인 이하 중소사업장 노동자의 권리향상이라는 것을 모르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망언이다. 또한, 민주노총을 마녀사냥하는 언론지형에 편승해 자신의 지지율을 올려보려는 잔꾀에 불과하다. 결국, 민주노총을 고립·배제하려는 기득권층의 꼭두각시 노릇을 충실히 하는 셈이다. 한때 존경받던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의 한 인사도 박용진의 캠프에 들어갔는데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말 궁금하다.

더불어민주당이 노동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우선 회유와 포섭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강령 중에 “사회적 대화기구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여 노동의 실질적, 대등적 참여를 보장하고 대변 기능을 강화한다. 산업·업종·지역별로 상설대화 시스템을 구축한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노사정위원회 또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따위의 사회적 대화기구를 만들어 민주노총의 양보와 타협을 끌어내자는 그들의 욕구를 포장한 것이다. 사회적 대화기구란 대화와 교섭을 미끼로 노동계를 회유하자는 목적을 가진 기구이며, 역사적으로 보면 끝내 민주노총의 양보와 분열로 귀결됐고 이익을 가져다준 적이 없다. 또한, 전직 민주노총 위원장들의 행보에도 드러난 바와 같이 더불어민주당은 선거 때마다 정치적 이권을 구실로 출세에 눈먼 노동계 상층인사들을 끊임없이 포섭하고 있다.

회유와 포섭이 통하지 않으면 배제와 고립이다. 겉으로는 대화니, 참여니 하지만 민주노총의 영향력을 제한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한다. 민주노총의 대정부 교섭 제의나 대화 제의는 무시당하기 일쑤다. 민주노총이 노사정 대화기구 참여가 어려우면 민주노총을 배제하고 한국노총과 동반관계를 만든다. 전 민족적으로 힘을 모아 진행해야 할 남북관계 개선도 민주노총과 민중 진영은 배제한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이 통하지 않으면 탄압이다. 임기 중에 민주노총 위원장을 두 명이나 구속한 정권은 역사상 문재인 정부가 처음이다. 구속 사유도 예전 민주노총 위원장들처럼 총파업이나 민중총궐기가 아니라 두 건 모두 하찮은 집시법 위반이다. 집회 한번 했다고 민주노총 위원장을 잡아 가두는 일을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다. 더구나 경찰은 7월 3일 민주노총 집회 참가자에 대한 내사에 이어 9월 2일~6일까지 진행한 민주노총 위원장 석방 촉구 집회에 대한 내사에 들어갔다. 민주노총의 기를 완전히 꺾자는 만행이다.

이제 민주노총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총파업밖에 없다. 10월 20일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시작한다. 경찰은 민주노총의 집회에 대비해 ‘차세대 차벽’ 8대를 도입했다고 한다. ‘차세대 차벽’이란 차량으로 견인·이동이 가능한 펜스로, 집회 현장에서 유압실린더를 통해 펼치면 폭 12m, 높이 2.8m 장벽이 구축된다. 뼈대는 모두 강철 파이프로 만들었다. ‘명박산성’을 업그레이드한 최신형 ‘재인산성’의 등장이다.

문재인이 공약했던 ‘노동 존중 사회실현’은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의 구속과 삼성 이재용의 석방으로 결국 그 실체가 드러났다. 그것은 이명박의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꼭 같은 것이다. 임기 내에 추진한다던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마찬가지다. 노동자는 문재인의 동반자가 아니라 통치대상, 시혜대상으로 전락했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문재인의 고상한 구호는 결국 ‘삼성이 먼저다’로 끝났다. 그가 말하는 ‘사람’에 노동자는 없었다. 마치 고대 로마에서 노예가 사람이 아니었듯, 건국 초기 미국에서 흑인이 사람이 아니었듯.

대통령 한 사람의 생각이 그 정당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정파가 난립하고 세력다툼이 치열하고 당원들 사이에 동질감이 높지 않은 보수정당일수록 더욱더 그렇다. 그나마 인간적으로는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었던 문재인이 이 정도이니 더불어민주당이 진정으로 노동자를 위하길 바라는 것은 헛된 꿈이다.

더불어민주당식의 말뿐인 노동 존중은 이제 끝났다. 노동 존중이 아니라 노동 중심, 노동 우선이어야 한다. 한국은 이천 만 국민이 노동자인 나라다. 노동이 주변부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노동이 중심이다. 기득권층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려면 노동이 우선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문재인이 얘기하는 ’사람이 먼저’가 아니라 ‘노동자가 먼저’다.

더불어민주당과 노동자·민중은 근본이 다르다. 묻어가려고 하지도 말고, 생각해주는 척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언제 가도 호박은 호박이고 수박은 수박이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는 것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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