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을 위한 개발이 아닌 대기업 위한 개발로 가는 경의선 공유지

마포를 따뜻하게 하는 늘장 풍경 

저녁 6시, 빌딩숲으로 둘러싸인 공덕동 경의선 유휴지에 있는 ‘늘장’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건물에 가려져 조각이 된 하늘에서 노을의 잔상들이 보일 때 빌딩에서도 하나 둘 불이 켜졌다.

부조화 같은 조화로움 안에 존재하는 ‘늘장’은 그제야 기지개를 펴듯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인형극이 열리는 비닐하우스집도, 소곤소곤콘서트를 준비하는 공간도, 중고물품을 파는 가게도, 손님을 기다리는 좌판도, 포차 어머니들도, 푸드트럭 주인장과 음식들도 ‘준비 다 됐으니, 어서 오세요’ 하는 기다림의 기운이 느껴졌다.

땅거미가 나무기린의 등허리에 내려앉으면서 ‘늘장’을 지키는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 회원들이 좌판마다 분주하게 전등을 이어주자 더 환해진 ‘늘장’에는 빌딩 속 불빛의 마을 하나가 뚝딱 만들어지는 듯 했다.

1시간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어디서 모여들었는지 좌판에서는 사람들이 물건을 고르거나 흥정하고 푸드트럭에서는 음식을 만드는 손놀림이 빠르게 돌아갔다. ‘늘장’ 중심인 마당의 야외 식탁에는 음식을 즐기며 담소를 나누는 시민들로 꽉 차 있었다.

토요일마다 작은 축제장이 되는 ‘늘장’은 그러나 낭만적인 풍경과는 달리 빌딩숲과 어둠에 짓눌려 불빛 하나로 버텨내는 또 하나의 상황이 깃들어 있었다. 10월 말까지는 불법시설물을 철거하라는 행정명령을 받아놓은 상태다. 철도청에 의해 사용권 낙찰을 받은 이랜드가 이곳에 호텔을 지으니 비워달라는 것이다.

공유지로 대기업 배불리는 철도청  

경의선이 지하화되면서 그야말로 유휴지가 된 이곳에 ‘늘장’ 생긴 건 2013년 8월의 일이다. 국가 공유지에 대한 활용을 고민하던 몇몇의 문화활동가들이 공덕동 공유지를 시민들의 문화공간이자 사회적경제장터로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했고 철도청으로부터 사용권 위탁을 받은 마포구청과 협약을 통해 플리마켓 등이 자유롭게 열리는 장터를 연 것이다.

인위적인 공원 조성이 아닌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해보자는 의견이 중심이 돼서 시작된 ‘늘장’은 2014년 12월 ‘늘장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사회적 경제조직을 포함해 약 15개 단체가 조합원으로 적극 참여했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서 도시농업박람회도 치렀고 마포 아기엄마들의 자발적인 플리마켓을 여는가 하면 ‘늘장’ 앞에 있는 디자인고등학교의 축제장으로도 활용됐다. 주민대표, 도시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자문위원단도 구성해서 다양한 사업방향과 활동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시민들의 자치문화공동체로서 좋은 모델이 됐고 많은 사람들이 입소문을 듣고 이곳을 찾았다. 하루 평균 천여 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그러나 불과 3년여 만에 ‘늘장’은 소위 말해서 ‘무작정 방 빼’라는 통보를 받았다. 폐선부지이니 소관인 철도청의 개발 계획에 따라 운명이 결정됐고 법대로 라면 '늘장'은 자리를 비켜줘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경의선 공유지는 총 6.3km에 걸쳐 개발되는데 공원화하는 구간을 빼고 그 나머지는 대형개발사업이 포함됐으며 일부는 입찰공고를 통해 낙찰 받은 기업에게 부지사용권이 주어진다. 결국 시민들로부터 공유지를 빼앗는 것이다.

국유지인 경의선공유지는 공원으로 개발된 50% 외에는 개발명목으로 대기업들에게 30년 사용권을 주고 임대료를 챙기는 게 목적이 돼버렸다. 30년 후에는 다시 재입찰을 통해 사용권을 넘기는 방식이긴 하나 결국 낙찰받은 기업이 영구히 국유지를 점유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게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의 말이다.

‘늘장’에 들어올 당시에는 언제 개발이 들어간다는 정확한 얘기는 없었고 다만 언젠가는 개발될 것이라는 말만 들었다는 시민행동의 박현진씨는 “공덕동 유휴지의 경우, 철도청에서 2010년 입찰공고를 냈고 2011년도에 이랜드가 낙찰받았다’며 평당 2천만 원의 땅 1천 평을(200억 정도) 몇 십억원의 사용권을 주고 30년 동안 무작정 불하한 것이고 이것은 국민들의 땅인 국유지를 상의도 없이 대기업들에게 넘겨버린 개발특혜”라고 말했다.

거기에다 낙찰 받은 이랜드가 이곳에 호텔을 만드는데 이곳은 주거지가 아니라 용도변경까지 해야 하는 등 낙제가 있음에도 굳이 사용권을 준 이유에 대한 의혹을 보였으며 또 다른 공유지에 건물을 짓는 효성의 경우는 건물에서 나오는 이윤이 년 간 약 1600억 원 정도로 국가재산이 기업이윤에 악용되는 점 등을 꼬집었다.

박씨는 “단지 ‘늘장’만의 문제만이 아니라”며 경의선 폐선부지인 6.3km 중 50%만 공원으로 개발하고 50%는 대형개발과 맞물려 주변 지가가 상승하고 이로 인한 임대료 인상으로 원주민이 내몰리고 중산층이 자리 잡는 일명 젠트리피케이션이 정부에 의해 유발되고 있다“고 성토했다.

또 친환경적인 공간조성을 위해 공원을 만든다면서도 정작 사용권을 주고 개발되는 대형 건물로 인해 도시의 바람길이 막혀 도시열섬현상까지 야기되는 주요인이 되기도 하는 등 공유지 개발은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늘장'은 열린다

지난해부터 ‘늘장’에서 잡화와 작은 소품을 판매하고 있는 이민영씨는 “다른 몇몇의 플리마켓은 상업성 위주여서 자칫 본질이 흐려지기 쉬운데 이곳은 플리마켓의 정서가 그대로 있는 곳이고 동네 놀이터 같은 느낌”이라며 거의 매일 오다보니 얼굴 아는 분들도 많고 주민들도 좋아하는데 없어지면 무척 서운할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인도에서 온 유학생으로 직접 만든 공예품을 주말마다 판매하는 사이망씨도 “이곳 사람들이 마음이 참 좋다, 인도에도 이런 곳이 많은데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며 없어지는 이유에 대해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늘장’은 활기찼던 지난해에 비해 다소 위축돼가고 있지만 문화활동가들과 시민행동 지킴이들이 다양한 행사 기획과 활동을 통해 ‘늘장’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10개 단체로 이루어진 늘장협동조합이 중심이 돼서 기존의 장터를 더 활성화시키고 소곤소곤콘서트와 아이들을 위한 인형극도 지속하는 등 도시 속 새로운 문화장터로 자리매김하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30여 개의 예술단체도 연대하기로 했다. 누구든지 와서 작업이나 마켓을 할 수 있으며 ‘늘장’ 안에 백 개의 작업실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작업 공간으로 충분히 활용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기득권을 가지고 머물지는 말자, 모든 공간을 공유하고 나누는 공간으로 사용하자‘는 문화공동체 개념으로 가자는 것이다.

아울러 시민들에게 공유지를 자연스럽게 돌려주고, 국가가 국민의 땅을 대기업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게 하면 안된다는 문제제기를 하기로 한 시민행동은 10월에 독립영화제도 준비 중이다. ‘늘장’은 하절기 4~9시, 동절기 11~7시까지 개장된다.

한편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은 ‘투명하지 않은 절차의 문제점과 몇몇의 전문가들에 의한 공원조성 과정, 서비스대상으로만 전락해버린 시민들의 소외 등 관주도적 개발태도에 대한 대외적인 문제제기를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한편 ‘늘장’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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