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8.15 경축사라면 해방의 현재적 의미를 다시 새기고, 우리 민족과 국가가 나아갈 길을 밝히는 것이어야 한다.
이번 76주년 8.15 경축사를 들으며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날 한시 같은 장소에서 이렇게 서로 다른 경축사를 들을 수 있을까?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는 경축사와 이렇게 아무 역사의식 없는 경축사를 들을 수 있을까.
하나는 김원웅 광복회 회장의 경축사이고, 다른 하나는 문재인 현직 대통령의 경축사이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경축사에서 “독립투사들이 꿈꾼 나라는 어떤 나라였을까요”라는 물음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나라는 “일제에 빌붙은 자들이 입법, 사법, 행정을 장악하는 나라는 아니”었으며, “외세에 의해 분단되고 동족의 가슴에 충부리를 겨누는 나라는 아니”었다고 전제하곤, 우리나라의 모순은 “친일미청산과 분단”이라고 명확히 제기했다.
그리고 네덜란드 여성 25명을 위안부로 끌고 간 범죄에 대해 일본군 장교 7명이 반인륜죄로 처벌되었으나, 수많은 조선인 여성을 위안부로 끌고 간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며, “반인륜죄의 ‘인류’에는 백인 여성만 해당되고, 아시아 여성은 해당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미군정이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강제해체하고, 친일파를 등용한 점, 나치가 자행한 백인학살범죄는 처벌하면서 일제의 전쟁범죄는 처벌하지 않은 이중성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판했다.

특히 김원웅 회장은 “친일파들은 대대로 떵떵거리며 살며,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지금도 가난에 찌들어 살고”있다면서, “이보다 더 혹독한 불공정이 있을까요?”라고 묻고, “이 불공정을 비호하는 자들을 방관하면서 공정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라고 일갈했다.
우리 사회 치부의 속살을 정면으로 때리는 돌직구가 아닐 수 없다.

반면 대통령 경축사는 사실 “엉뚱한 이야기를 나열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통령은 경축사 첫머리에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 사실을 알렸다. 이국 땅에 있는 독립선열의 유해를 봉환하는 사업이야 응당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은 좀 살펴볼 지점이 있다. 홍범도 장군의 고향은 평양이고, 장군의 유언은 해방된 조국에 묻히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소련 땅으로 이주한 홍범도 장군의 생애는 쓸쓸한 말년이라기 보다는 소련 사회에서 고려인으로 살아가는 동포들의 삶의 구심이었다. 최근에 와서 한국 정부가 홍범도 장군에게 신경을 쓴건데, 이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고려인들은 홍범도 장군을 구심으로 정체성을 키워왔고, 직접 묘소를 정비하고, 참배하며 각종 기념사업을 벌여왔으며,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을 달가와 하지 않았다. 때문에 한국정부가 유해봉환에 급급하기 보다는 현지 고려인들의 추모사업을 지원하는 방식이 더 좋았겠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이다.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종합군사력 세계 6위에 오른 군사강국”에 올랐다는 자화자찬도 좀 엉뚱하다. 지금 남북관계는 한미연합훈련으로 어렵게 이어진 남북통신선도 다시 단절되고, 극도의 긴장상태가 예견되는 조건에서, 대통령이 국방력을 자화자찬하는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다니 답답하다. 군사작전권 하나 없고, 그 시작이 8.15 해방 이후 미국의 점령에서 나온 것인데, 군사력 과시를 해서 누구에게 뽐내자는 것인가? 그 의도까지 의심스럽다. 

“주52시간제와 최저임금 인상, 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노동기본권을 확대”하고 있다거나 “독일통일 모델”에 대한 언급같은 것은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노동기본권 확대는 문재인 정부가 촛불혁명 정신을 배신한 항목이지 잘했다고 할 일이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독일통일은 전형적인 자본주의 흡수통일인데,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특히 지금같은 시기에 언급한다는 것은 남북관계를 풀자는 것인지, 한 번 해보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게 만든다. 
그리고 이번 경축사에서 강조한  “남북이 공존하며,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통해 동북아시아 전체의 번영에 기여하는 ‘한반도 모델’”이라는 것도 비현실적인 것이다. 이미 비핵화 문제는 끝났다. 북은 이미 어떤 형태로든 비핵화 협상을 할 생각이 없다.

이러니, 대통령 경축사가 엉뚱한 주제로 가득찬 메시지 결핍의 경축사가 되고 말았다. 
지금은 중미전쟁과 동맹관계의 대전환기이고, 남북관계의 교착상태가 장기화되면서 심각한 갈등으로 번질 수 있는 위험한 정세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8.15경축사는 미사여구로 가득찼지만, 전환기, 격변기에 걸맞는 한미관계, 남북관계, 전환기적 민족사의 진로에 대한 명쾌한 언급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김원웅 광복회 회장이 일제 잔재를 규탄하고 있는 마당에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일본하고 잘 해보자는 소리나 하고 있었다.

한편, 김원웅 광복회장 경축사에 대해 국민의 힘은 ‘광복회장 사퇴’를, 원희룡 국민의 힘 대선 예비후보는 “지긋지긋한 친일팔이”이라며, 반발했다. 그리고 조중동은 이를 “논란”으로 보도했다. ‘논란’이란 ‘논쟁을 일으켜 소란을 피운다’는 뜻일텐데, 참으로 ‘지긋지긋한 친일파’의 무리들이다. 
대통령의 경축사가 한심하니, 친일의 잔당들이 김원웅 광복회장 경축사를 대통령이 단속하지 못하고 뭐했냐고 딴지를 건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백선엽이 홍커우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장거로 사망한 일본 장군 ‘시라카와 요시노리’에 대한 흠모가 지나처 창씨개명을 ‘시라카와 요시노리’로 했다고 까밝히며, 이러한 백선엽을 ‘국군의 아버지’로 모시는 세력과 행태에 대해 비판하였다. 그런데 이런 걸 발끈한다. 심지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서초구 양재동에 있는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선언을 하였다. 그리고 백선엽을 섬기는 국민의 힘에 최근 입당하였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대선 출마선언 직전인 7월 12일 대전 국립현충원을 방문하고 백선엽 묘소를 참배했다. 광복회장 발언 논란은 친일을 비호하는 세력들이 독립투사 후손들을 억누르는 불공정이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이미 경축사에서 미리 답했다.
“국민들은 친일에 뿌리를 둔 역대정권을 무너뜨리고 또 무너뜨리고, 다시 무너뜨리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룩하였다고 했다.
특히 촛불혁명으로 정권은 바뀌었지만, 친일에 뿌리를 둔 친일반민족 기득권 구조는 아직도 ‘철의 카르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기념사 마무리에서 “우리가 여기서 무릎 꿇으면, 다시 일어설 수 없다. 우리 운명은 우리 힘으로만 개척할 수 있다.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도울 때에만 세계도 우리를 도울 것이다.”라고 강조하고, “친일파 없는 대한민국, 이런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습니다”라는 말로 마쳤다.
76주년 광복절 경축사는 김원웅 광복회장 경축사로 대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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