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대만과의 무역투자기본협정(TIFA)협상을 5년 만에 재개했다. 협상에서 논의된 무역, 투자, 금융서비스 등 11개 의제 중 반도체 공급망 협의가 핵심이다.

반면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하며 미국과 대만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 “레드라인을 넘지 말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지난 1979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 단교했지만, 최근 미국 고위 관리들이 잇따라 대만을 방문하고 있으며, 지난달 7일에는 미연방 상원 의원단이 오산기지에서 수송기를 타고 날아가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을 만나기까지 했다.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대중국 군사 압박을 강화한 미국이 최근 중국에 기술·경제적인 봉쇄까지 추가하는 모양새다. 미국이 중국의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를 제재하는 것도 모자라 반도체 공급망에까지 손을 댄 것.

▲ 반도체 공급망 복원에 관한 최고경영자(CEO) 화상 회의에 참석해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삼성전자 등이 참석한 이번 회의에서 “우리는 어제의 인프라를 수리하는 게 아닌 오늘날의 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2021.04.13.
▲ 반도체 공급망 복원에 관한 최고경영자(CEO) 화상 회의에 참석해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삼성전자 등이 참석한 이번 회의에서 “우리는 어제의 인프라를 수리하는 게 아닌 오늘날의 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2021.04.13.

반도체 공급망이 중요한 이유

미 국방부는 최근 육군이나 해군이 공군 정찰기나 전투기 레이더를 통해 감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목표물을 타격하는 합동전영역지휘통제(JADC2)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성주 소성리 사드 기지에 무리한 장비 반입을 강행하는 이유도 사드 레이더를 업그레이드함으로써 합동전영역지휘통제를 원활하게 전개하기 위해서다.

이런 통합운용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통신 정보를 처리하는 반도체 기술과 공급망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기술 발전을 봉쇄해 관련 분야에서 퇴출함으로써 이런 통합운용에 필요한 장비를 중국에서 사 오지 못하게 차단한다는 계산이다.

미국이 대만을 선택한 이유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공급망 차단을 위해 왜 대만을 선택했을까? 대만에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파운드리인 TSMC가 있기 때문이다.

TSMC는 파운드리 시장의 55%를 점유한 부동의 1위 업체다.

합동지휘통제를 위해 TSMC와 합작해야 하는 미국으로선 대만이 중국과 갈등을 빚어야 유리하다. 이 때문에 소홀했던 대만과의 관계를 복구하고, 무기 수출과 백신 보급을 통해 중국을 자극한다.

미국과 대만의 반도체 동맹에 일본도 합세했다. 미국에 약 40조 원을 투자해 6곳에 공장을 짓기로 한 TSMC는 일본 구마모토현에도 신규 공장을 짓는다. 또한 일본 정부는 약 190억 엔(약 2천억 원)의 국고 보조금을 지원해 TSMC의 반도체 연구개발 시설을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지난달 한미정상회담 직전 삼성전자가 미국에 20조 원 투자 약속을 긴급하게 내린 것도 한국이 미일 반도체 동맹에서 소외될 것을 우려한 조치였다.

한편 중국은 미국의 이러한 공급망 재편에 대비해 기술자립을 추진하고 있다. 광저우시는 “정부 계획에 집중해 공급망의 안전과 안정을 확립하겠다”라며 최고위 간부들을 특정 산업의 총책임자로 임명했다. 선전시는 왕웨이중 당서기를 반도체 공급망의 책임자로 임명했다.

재밌는 것은 SK하이닉스의 중국 현지 공장이 있는 우시의 반도체 공급망 책임자가 SK하이닉스의 새로운 공장 건설 계획의 빠른 진행을 약속한 것이다. 한국 경제지들은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약진을 기대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국 봉쇄 정책을 외면할 수 없지만 중국으로부터 얻어내는 경제적 이익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는 데서 중국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 일본, 유럽 등 우방국에 가치동맹을 강조하며 대중국 봉쇄 동참을 강요한다. 중국도 미국의 봉쇄를 뚫기 위해 막강한 경제력을 이용, 자기편 만들기에 주력한다.

미국과 중국이 군사뿐만 아니라 경제 문제까지 이해관계가 첨예해지자 양국 모두 확실한 우방국이 절실해 졌다. 더 이상 ‘군사동맹은 미국, 경제동맹은 중국’이라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반도체 공급망 문제로 불거진 미중 충돌의 새로운 양상은 국익을 위한 우리의 선택에도 변화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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